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남북 관계에 대한 다양한 구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새롭게 모색되는 남북관계는 단지 지난 시기 중단된 사업을 재개하는 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한반도 정세의 변화, 북한의 변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에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는 과학기술 중심의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을 제안합니다.

1.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구상해보자.
2.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어떤가?
3. 구체적인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 사업 제안

 

강호제(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남북 관계는 2007년 이후 파행의 연속이었다.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렸던 남북 교류협력의 흐름은 2007년까지 가속되었다. 교류협력의 폭과 수준이 점차 높아졌고 남북 상호 방문 인원도 점차 증가 추세였다. 하지만 2008년부터 들어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의 흐름은 급속히 잦아들었다. 급기야 실낱같이 이어지던 남북교류협력의 흐름은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완전히 막혀버렸다.

남북의 교류가 막힌 상태에서 한반도의 평화나 남북 한 쪽의 번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여전히 상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교류가 끊어진 동안 ‘혐북’ 인식이 팽배해진 것도 현실이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인식이 공존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는 것부터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을 구상하기 앞서 고려해야 할 기본 관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은 매우 많이 나왔다. 게다가 최근 민간 대북지원단체들의 방북 신청을 북한에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이전 시기와 같은 ‘인도적 지원’ 방식의 남북 교류협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사실,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꽤 오래 전이다. 2015년 방북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만난 북한 담당자도 ‘인도적 지원’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 어떤 형식, 어떤 지향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가능할까?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상황에 맞는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구상하기 앞서, 지켜야할 기본 관점부터 점검해보자.

1) 평화와 공동 번영은 교류협력의 궁극적인 목표

2000년대 초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만남’ 그 자체를 위한 것이 많았다. 워낙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늘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만남’ 그 자체만을 위한 교류협력이 위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류협력의 기본 목표는 ‘평화’와 ‘공동 번영’ 즉 평화롭게 서로 공존, 공영할 수 있는 교류협력이어야 한다.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도 이런 정신 위에서 진행되었고 10.4 선언에는 이 내용이 명확히 포함된 것이다.

이는 쉬운 듯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원칙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지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 상태에 있고(정전 상태이다) 전쟁의 위협이 상시화되어 있다. 그 결과 평화 감수성이 매우 낮기도 하다. 항상 적대적 인식의 대상이었던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세계관의 변화까지 요구할 수도 있다.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10여 년의 본격적인 남북 교류협력의 역사가 정권이 바뀌면서 곧바로 후퇴한 것만 보아도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2) 선의를 앞세워 자칫 잊기 쉬운 관점, 상호 존중과 호혜 평등

2000년대 초반 북한은 1990년대의 극심한 경제난을 겨우 벗어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외우내환을 겪으면서 북한 사회는 많이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당시의 교류협력 사업은 ‘북한으로 들어가서’, ‘채워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일단 방북하여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거나 물어보고, 지원해주어도 큰 문제 없는 품목들 중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을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이 대부분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었다.

남북 교류협력은 한쪽 방향의 흐름이 우세한 방향보다 양방향 소통이 원활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일방의 이익만이 우세하는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이익의 균형성이 보장된 동등한 수준의 교류협력이 되어야 한다. 남북 경제적 격차를 부각시켜 수준 차이를 논하거나 폄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도 안 된다. 각자의 처지에 적합한 지점을 찾아, 서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동등하게 교류협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남북 교류협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북한도 자신들의 치부를 인정하고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기는 하였지만 상당히 꺼려하였고 조심스럽게 지원을 받아들였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그만큼 북한 사회도 변했기 때문에 남북 교류협력 사업도 이 당시 방식과 달라져야할 시기가 되었다. “너희는 못 살고 가진 것이 없으니 우리가 주는 것을 잘 받아라”, “우리는 순수한 의도로 제안하는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받아라”고 하는 말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서로의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은 부정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선한 생각에서 나온 제안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자칫 상대방을 무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서로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상호 존중과 호혜 평등의 관점을 끊임없이 되새기지 않으면 일방적인, 시혜적인 사업으로 바뀔 수 있다. 새로운 교류협력 사업이 구상되는 지금 다시 한 번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는 남북이 서로 존중하면서 호혜 평등한 관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3)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미래를 위한 협력

최근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그 실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짐에 따라 상품 생산 시스템은 물론, 우리 삶과 관련한 전반적인 변화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북한도 이런 변화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북한은 ‘새 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발전전략을 상당히 꼼꼼하게 만들었고 이론적 탐구도 상당 수준에서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을 앞세워 경제강국,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높다. 최근 북한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는 이런 인식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앞으로 전개될 남북교류협력은 단순한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하고 새로운 생활을 만들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미청산 과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젊은 세대, 어린 세대가 중심에 설 수 있는 교류협력이어야 한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교류협력이어야 한다.

개성공단 사업계획이 1단계에서는 노동집약적 산업 중심이었지만 2단계, 3단계에서는 전자 산업이나 기계산업과 같은 첨단 산업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멈춰선 개성공단이 재개될 때 여전히 1단계에 머물면 안 되고 2단계, 3단계로 확장해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남북교류협력도 첨단 산업으로 중심축을 이동하여야 한다.

인도적 지원 방식과 개발 협력 방식의 비판적 검토

1) 인도적 지원은 여전히 유효한가?

과거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중심은 인도적 지원 방식이었다. 생필품을 비롯한 각종 지원물품을 일방적으로 공급해주는 이 방식은 당시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을 벗어난 직후였기에 유효한 방식으로 채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북미 대결이 극심해지고 있던 상황이라 강고해지던 국제 제재 국면에서 겨우 찾은 지점이 인도적 지원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지원을 받는 당사자인 북한이 당시에는 인도적 지원을 요구했고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지금은 거부한다고 명백한 의사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대되는 지원이란 있을 수 없다.

인도적 지원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입장에서 숨기고 싶은 부분을 드러내게 한다는 점이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못 먹고 못 입고 못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드러난 ‘가난의 증명’ 문제와 비슷하다.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데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받게 될 상처와 그 가난함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행정적 비용이 과도하다는 점에서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 복지 차원의 무상급식이 대안으로 부각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 북한도 많이 변했다. 특히 남북 교류협력이 막혀 있었던 지난 10년간 북한의 변화 속도는 예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무기 수준이나 능력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비례하여 북한의 경제수준이나 규모도 커졌다. 예전에는 비어있었던 많은 부분들이 채워졌고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추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도 많이 바뀌었다. 게다가 최고 지도자도 바뀌었다. 모든 것이 변한 시대를 맞아 어려움은 여전히 있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도적 지원을 받지 않을 수준까지 올라왔고 올라서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남북 교류협력의 방향은 북한으로 들어가는 방향이 아니라 북한을 ‘밖으로 데려나오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또한 부족한 곳을 채워주는 형식이 아니라 그들이 잘하는 혹은 많이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나누는 형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개발 협력 방식은 최선의 대안일까?

인도적 지원 방식이 막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급부상하고 있는 방식은 저개발(혹은 미개발) 국가들에 대한 지원 방식인 개별 협력 방식이다.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사회기반 시설 확충과 각종 시스템 개발을 지원한다는 방식이다.

그 중에서도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 규모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대신 개발해준다’는 방식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 방식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건설 방식과 유사함을 모르는지 북한의 입장에서 크게 반길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신있게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대안으로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처럼 자존심(?) 강한 나라가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공급해주고 만들어진 비싼 공산품을 소비해줄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반길까?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에 대한 정확한 규모나 수준을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다. 북한에서 정확한 자료를 공개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직접 탐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접적인 자료와 부정확한 자료를 최대한 모아서 북한의 지하자원이 몇 천조, 몇 경 수준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아마도 남북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즉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1950년대부터 소련과 충돌을 불사하면서도 자원공급국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북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했던 이유도 자원공급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대국(소련이나 중국 등)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또한 김일성은 지하자원을 ‘망탕’ 개발하지 말라는 원칙을 유훈으로 남겼다. 잘 보존하여 필요한 만큼만 개발하여 쓰고 나머지는 후대에 남겨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북한의 지하자원을 ‘개발해 준다’는 입장은 너무 순진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개발하고 싶은 지하자원을 북한 스스로 개발할 수 없어 남북 합작으로 개발하자는 흐름이 10년 전에 있었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고 북한도 많이 변했다. 그래서 단순한 자원 개발이 아니라 자원 가공과 결합되어 좀 더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10년 전에 가능했다고 여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세월의 흐름을 무시하는 것이며,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원개발 방식과 더불어 많이 거론되는 새로운 남북교류협력사업에는 철도, 도로, 가스관, 석유관 등을 개설하는 사업이다. 즉 남한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 석유 등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북한을 가로지르는 가스관을 개설하고 통과비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한의 철도를 러시아나 중국과 연결시키기 위한 철로 개설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당연히 북한과 함께 활용할 방안을 합의하면서 진행해야할 부분인데 지금은 북한을 ‘대상화’한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남북 대화가 막혀서 북한의 의사를 들을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통과비를 비롯 일부 비용을 지불하면 북한은 모두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제에서 이런 사업이 구상되는 것은 우려할만한 지점이다.

북한에서 멈추지 않고 북한에서 활용하지 않는 철도나 가스관 등은 북한을 소외시키고 북한의 개발을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만 지불하면 북한이 거부할 리가 없다는 식의 논의는 새로운 남북교류협력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을 대상화하지 말고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자

끊어진 남북교류협력의 끈을 잇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어떤 곳에서든 어떤 방식이든 만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서로의 변화를 무시하고 10년 전 기억만으로 서로 만나려다 보면 어긋나는 점이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새로 준비하는 지금, 기본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도적 지원 방식이나 개발협력 방식이 좋은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도 북한을 ‘대상화’해서는 안 된다.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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