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국정원) 개혁은 가능한가? 국정원의 개혁을 기대하면서 총론적인 쟁점을 거론해보겠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지난 정권 하에서 국정원의 터무니없는 짓거리들을 5대 범죄로 규정하였다. 당선 직후 문대통령은 국정원 출신의 개혁인사를 국정원장에 임명하였고 최근에는 국정원의 범죄를 조사할 발전위원회를 설치하여 일정을 바짝 조이고 있다.

나는 국정원의 발전보다는 대개혁을 원한다. 그들이 발전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아래서 국정원진실위원회가 국정원의 범죄를 조사하고 화려한 명칭(‘과거와의 대화, 미래의 성찰’-이 명칭은 범죄기록에 대한 백서보다는 노철학자나 대정치인의 회고록에 더 어울린다)의 보고서를 통해 범죄의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수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듭 범죄를 반복하였다. 과거의 개혁과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현명한 제1 대책은 공직자와 조직에 대한 엄정한 책임추궁이다.

냉정한 제도적 대안을 수립하여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국정원발전위원회도 국정원의 정상화와 권한강화에 기여할 뿐이다. 개혁정권 아래서 살아남기 위한 설거지와 미래지향적 꿈꾸기와 수사학적 약속으로 이루어진 국정원의 필살기에 개혁의지가 실종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행히 촛불항쟁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구상의 실현은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을 근본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므로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 구상은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개혁정부들이 내건 국정원개혁의 큰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구상들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성찰해야 한다.

나는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과 관련하여 국정원의 역량에 의문을 품는다. 조직 내에 근원적인 무능력이 존재하지 않는가이다. 국정원이 얼마 전에 해외에서 RCS 해킹 프로그램을 직접 구입하면서 기관의 주소까지 판매처에 친절하게 남겨두었던 사건을 볼 때 이 조직이 해외안보정보를 과연 비밀스럽게 수집하고 처리할 역량을 갖춘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조작간첩사건에서 중국의 공문서까지 위조하여 중국의 주권을 침해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명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실추시키는 것을 볼 때 국제적으로 품위있는 정보기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동시에 동맹국가의 정보기구들이 흘려주는 떡고물 이외에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능력을 갖춘 것인지, 즉 정보의 자주성을 추구하는 조직인지는 참으로 궁금하다. 이러한 국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국정원이 국내파트에서 도감청, 정치개입, 심리전, 간첩조작에 열정적으로 몰입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이제 더 큰 걱정은 지금까지 스스로 적대정치의 한 축으로서 국내정치에 개입하고, 필요하면 스스로 적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적대성 발전소의 궤적을 벗어나 국익지향적이고 초정당적인 정보기구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른바 부르디외의 용어로 말하면 조직의 아비투스가 바뀔지 의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해외안보정보만을 추구한다면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고, 기존의 조직을 영구히 잠재워버리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이러한 건전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지금부터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방향을 잡고 자기정화와 연마를 통해 환골탈퇴하겠다고 한다면 일단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정원 개혁 노력이 물거품으로 끝나지 않기 위한 방책이 철저하게 마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해외파트와 국내파트를 위장분할하여 소나기나 피하자는 요령이라면 시민은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두 가지 국가기관을 상대하는 더 나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국내파트를 국정원의 권한에서 제거한다면 이를 보완하는 기구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 또한 동일한 정보수집권을 경찰정보과에 이양한다면 국정원의 개혁을 달성한 것이 아니다. 시민의 자유와 안전이 증대될 때 국정원 개혁이 이루어진 것이다. 동일한 권한이 국정원에 있느냐 경찰에 있느냐와 상관없이 시민의 자유는 심각한 침해를 겪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개혁적인 인물이 국정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는 들킬 정도로 어리석은 정보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개혁정권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국가정보원의 활동을 비교하면 곧 알 수 있다.

그러나 발본적인 제도개혁이 없다면, 다시 나쁜 습성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제도개혁 없는 사람의 교체는 보수적인 개혁으로서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 뿐이며, 국정원발전위원회도 이러한 그림 아래서라면 설거지기계로 그칠 것이다. 노무현 정부 하의 국정원 개혁이 근본적인 제도적 개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권을 넘어서 개혁은 장기적 개선효과를 유발하지 못했다. 어떤 조직의 권한을 줄이는 것보다 그 조직을 없애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는 말도 있다. 바로 이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나쁜 제도는 누구의 손에 있어도 나쁘게 기능한다. 국정원의 국내정보파트를 영구히 폐지하고, 수사기관은 범죄수사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 정보활동은 국가의 정치적 관음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사실상 통제받지 않고 이루어진 정보수집활동을 형사소송법의 틀 안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통제해야 한다. 즉 경찰과 검찰이 범죄수사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법원의 승인이나 영장제도를 통해서만 감청을 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법이 허용하는 방식을 넘어가서 수집된 정보를 엄격하게 배제하고, 범죄수사에 탈법적인 정보수집활동을 벌인 공직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정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통신비밀보호법상 실행된 감청은 대부분 국정원에 의한 것이고, 그 대부분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법원의 영장이나 승인 없이 이루어졌다. 물론 통신비밀보호법은 이러한 감청에 대통령의 승인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기구의 활동에 대통령이 일일이 보고받고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제라인의 형식적 승인 아래 정보기관이 자율적으로 감청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감청내용에 대한 정보공개요청에 대해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공개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국정원이 왜, 누구를, 어떻게, 어디서, 무슨 내용을 감청했는지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국민은 전혀 알지 못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뒷방에서 이어지는 국가안의 국가가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원법상 국정원의 수사권폐지뿐만 아니라 통신비밀보호법의 느슨한 통제방식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국가보안법의 치명적인 규정들을 폐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나쁜 사람들은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법을 무시하고 죄와 불법을 자행한다. 그런 사람들은 또 그 때 법의 이름으로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나쁜 제도는 보통사람들을 모조리 악인의 음모와 꾐에 빠지도록 만든다.

정치는 오로지 제도의 개혁을 통해서만 공공선에 봉사할 수 있다. 단지 정부와 국정원 지휘부의 선의를 믿고 국정의 자체개혁을 바라보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구체적인 범죄의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법학박사

전 국민대, 전남대 교수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1년 <국가범죄>로 임종국상 수상

로베르토 웅거 <주체의 각성(2012)> 야스퍼스 <죄의 문제(2014)> 번역
국가폭력 및 인권문제에 관한 논문을 민주법학에 규칙적으로 투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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