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무상명령이다(레비나스)


 파장
 -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 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도시의 삶에 지쳐 무작정 시골에 내려가 산 적이 있다.

 외딴 곳에서 중년의 내외가 운영하시는 농장에 세 들어 살았다.

 주인 내외는 닭, 칠면조, 오리, 토끼 들을 길러 시장에 내다 팔았다.

 주인 내외를 따라 오일장에 자주 갔다.

 주인 내외가 시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환하게 웃는 모습은 지금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지금은 그렇게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다.

 잘난 사람들만 사는 세상에선 아무도 그렇게 환하게 웃지 않는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인류사회의 아름다운 원형인 ‘원시부족사회’에서는 잘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잘난 부자들은 이웃들을 초대하여 잔뜩 선물을 안겨주기 때문에 다시 ‘못난 가난뱅이’가 된다고 한다.  

 추장, 부족장들은 항상 부족원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하기에 잘난 체할 수도 없다고 한다.  

 어떤 원시인들은 사냥을 잘하는 부족원을 왕따 시킨다고 한다.

 잘난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끼치는 폐해는 얼마나 큰가?

 나머지 사람들은 한 순간에 루저(패배자)가 되어 버린다.

 전교 1등이 없다면 왕따가 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우리의 얼굴은 ‘무상명령(無上命令)’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그때 우리의 얼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단다.

 ‘서로 사랑하라!’

 그런데 잘난 사람이 되면 얼굴에 가면들이 덕지덕지 씌워져 맨얼굴이 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서로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

 ‘못난 놈들’은 금방 이 명령을 알아듣고 환하게 웃는다. 

 어릴 적 부모님은 오일장에서 좌판을 하셨다.

 해가 저물고 파장이 되면 부모님은 고등어 한 손을 손에 들고 다리를 절뚝이시며 달이 환한 긴 신작로를 걸어 오셨다.

 좌판하시는 시장에 가면 부모님은 내게 환하게 웃으시며 중국집에 데리고 가셨다.

 그때 먹었던 우동 맛은 내 혀와 입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릴 적 보았던 시장의 왁자했던 분위기가 그립다.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웠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간절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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