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해 본 사드 배치에 대한 단상

‘나랏 말미 듕귁에 달아(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서문을 고등학교 다닐 때 한번쯤은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는 자주정신, 주체의식을 표현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그런데 아마 필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우리나라 말이 중국 말과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정신이니 주체의식이니까지 말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리라. 사실 그렇다.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지금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임금이 나서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대국인 중국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최만리를 비롯한 많은 벼슬아치들이 한글 창제를 반대하고 나섰고, 세종은 상당히 곤혹스런 처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세종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글 창제를 감행하였다.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말은 중국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세종이 성군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사드 때문에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드는 이데올로기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북의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을 반대하면 마치 매국노나 되는 듯이 공격을 한다. 대선 과정에서도 사드의 찬성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후보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드가 배치되기로 결정되는 과정이나 이후 도입 과정을 보면 그렇게 당당하지만은 않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이건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사드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배치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을 이데올로기 차원으로 다루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은 언제나 일치하는가?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600년 전에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 말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 화들짝 놀라면서 아니라고 하는 생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익은 미국의 이익과 일치할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우리나라의 수구언론이나 수구세력의 놀라는 모습은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에 외신과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과 우리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제는 그렇게 놀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여전히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다시 사드로 돌아가 보자. 사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배치되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않는 한 그것은 미국이 중국, 러시아 등을 겨냥해서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는 것의 일환으로 배치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것이 북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보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고, 그렇게 실효성이 없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화약고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주변 지역의 환경에 심대한 해악을 낳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들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없이 사드는 전격적으로 정말 도둑질 하듯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최근에 밝혀진 일이지만 사드 발사대 2기가 지난 4월 26일 도둑질처럼 새벽에 기습적으로 성주 부지에 들어갔는데 나머지 4기가 추가 반입되어 현재 부근의 미군기지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새로운 정부의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초에 제출하려던 보고서에 있던 것이 누락되기까지 하였다. 그것을 누락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국방부 정책실장이라는 발표가 있었는데, 그는 미군과 비공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의 행위를 비공개한다는 것은 언론이나 민간에 비공개한다는 것이지 보고 의무가 있는 상급자, 국군통수권자에게도 비공개로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정작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의 권한대행에게는 보고했다는 것을 보면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외국 군대와 합의하에 그렇게 했다니 이건 자기 나라의 안보를 위한 군인이 맞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정도 되면 촛불 시위 기간 중 그렇게 많이 회자된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사드 배치는 지금 이 문제만이 황당한 것이 아니다. 결정될 때부터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을 밟았다. 2015년까지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사드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청도 없었고, 논의도 없었으며, 그래서 결정된 바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2016년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말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그해 7월에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이것 때문에 사드 역시 국정농단 세력인 최순실 등에 의해 결정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 뒤 다들 알다시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렇다면 졸속하게 결정된 사드 배치는 당연히 중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 총리가 밀어붙이고 결국 발사대 2기가 도둑질 하듯이 배치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도 없었고, 국회의 동의도 없었으며, 반경 3.6km안 전자파 위험지역의 피해자가 될 주민들에게 한마디의 설명회나 동의도 없었다. 결국 법을 수호해야할 정부가 불법적인 일을 벌인 것이다. 더욱이 사드배치와 관련한 미국과의 공식적인 협정문서도 있는지 없는지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 결정은 국정 농단의 하나로 처리되어야 하고, 그 과정이 철저하게 조사된 뒤 그에 맞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다행스럽게 문재인 대통령은 보고 누락에 ‘충격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환경 평가를 원칙대로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전 정부가 결정한 일을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일단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발언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발언은 미국이 우리나라의 대외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국내 여러 정치세력의 역관계,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할 때 고뇌의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드 배치의 결정과 무리한 반입, 그리고 도둑질 같은 배치 등은 국정 농단의 한 과정으로 조사되고 처리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새 정부가 청산해야 할 적폐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과정은 좀더 철저해야 한다.

먼저 불법적으로 성주 부지에 들어간 발사대는 철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수가 벌어지게 된 과정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고 책임자들이 처벌되어야 한다. 국방부 정책실장이 그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를 스스로 우스운 나라로 만들어 버리는 꼴이 되고 말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아가서 사드 배치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 가운데 찬반 양론이 좀더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국회에 이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것은 촛불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국회에만 맡겼다면 탄핵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 정부는 출범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혔듯이 현 정부는 피플 파워 즉 국민의 힘에 의해 탄생한 정부이다. 그러한 정부답게 국민의 힘이 이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사드 배치가 적폐의 하나일 수 있다고 하여도 다른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미국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도 조심스러운 것 같고, 여론도 다른 적폐와는 달리 얼마간 소극적인 면도 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새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 시대정신을 관철해 나가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다르다면 우리의 이익에 따라 정책이 결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드가 배치되는 2017년은 1970년대, 1980년대와 같은 냉전시대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장 중국의 경제적 보복이 중국측의 졸렬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사드 배치는 우리가 동북아에서 주도적은 아니더라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심대한 장애를 주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사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이라는 전략의 일환이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거부 대상이 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왜 강대국의 전쟁터를 스스로 자처하고 나서야 하는가?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난 겨울 내내 촛불이 타오르던 광화문에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촛불 정신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맹목적인 종미 사조에 대한 청산 역시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600년 전에 대국의 간섭과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창제하였고, 우리나라의 말은 중국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한 세종대왕의 고뇌와 결단을 문재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는 왕조시대와 달리 지금은 국민의 힘이 지도자의 결단을 뒷받침해 주어야 함을 깨닫고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우리의 이익은 다를 수도 있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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