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그 해답은 이미 공개됐다. 그것은 ‘사드에 대한 기존의 한미 결정은 유효하다. 그 배치 과정 논란에 대한 한국 안보국방 당국자에 조사가 이뤄질 것이고 사드 배치 추진에 적용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준수될 것이다’라고 요약된다.

이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한 문재인 정부의 사드에 대한 입장에 잘 나와 있다. 한 장관은 “현재 진행 중인 사드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조치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다. 기존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며 모든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을 최우선적으로 중시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연합뉴스 6월 4일).

한 장관의 이런 발언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딕 더빈 미 민주당 상원의원을 청와대에서 만나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에 대한 국방부의 보고가 누락된 데 대해 진상 조사를 지시한 것은 전적으로 국내 조치로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는 게 아니며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보내려는 게 아니’라고 말한 것과 흡사하다.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 발언은 자신이 사드 추가 배치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에 대해 미 국방부가 “사드 배치는 완전히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반박한 뒤 나왔다. 이는 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행한 공약을 외면하고 외세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문 대통령, 한 장관이 내놓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입장은 사실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사드 배치 결정 직후부터 취해왔다. 즉 국방부는 지난달 25일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열린 국방부의 외교·안보 분과위원회 상대 업무보고에서 “사드 배치는 이미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배치 합의가 조약이 아닌 만큼 국회 비준 사항도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언론이 외면하면서 사회적인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대선 과정에서 사드에 대한 논란이 격심해졌을 때에도 국방부는 침묵했고 언론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국방부가 국민의 알 권리 등을 위해 정확하게 설명했더라면 하는 모든 것이 투명해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국방부가 사드에 대한 국민적 알 권리를 외면하는 태도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지속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최근 보인 태도는 사드에 대한 반대 여론을 더욱 부추겼다.

예를 들면 더불어민주당의 우원식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사드 배치는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적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철회까지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지난 12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불법적 사드배치를 중단시키고, 청문회 개최 및 국회비준동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드 배치를 놓고 논란이 격심해진 이유의 하나는 사드의 배치에 적용된 핵심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소관 부처인 국방부와 정치권과 시민운동단체가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 이 조약은 정전협정이후 한미군사관계의 근간이 되었고 현재도 그렇지만 이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가 묵살당한 것이다. 이 조약에 따르면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동등한 주권국가가 아니다. 미국은 슈퍼 갑이고 한국은 반대가 거의 불가능한 을에 불과하다. 심각한 군사적 종속관계다.

지구촌이 주시하는 사드 배치가 추진된 근거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 방위에 필요할 경우 자국 무기나 병력을 한국에 배치할 ‘권리’를 수용하고 한국은 양허하게 되어 있다. 군사적으로 수십 년 묵은 대미 종속은 1953년 10월 체결된 이 조약의 4조에 따른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4 조는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국의 육군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영문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로 되어 있다.

제 4조의 영문 표기를 보면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미군의 한반도 방위에 필요한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하면서 미국은 이 권리를 수용(accept)하고 한국은 수락(grant)하도록 되어 있다. accept와 grant 단어는 대가없이 받거나 주는 것을 나타낸다. 이 외교적 단어에 의해 한국의 군사주권에 대해 미국이 사전에 협의하나거나 동의를 구하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 4조의 한국어 표기를 보면 맨 앞에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라고 되어 있어 한미 두 나라가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협의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는 이 4조의 이행을 규정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가리킨다. SOFA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 내에서의 미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및 동 부속문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SOFA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권리가 한국에서 잘 집행되도록 한국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적 편의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한미 정부 당국은 항상 한미 동맹 준수를 강조하는데 이는 바로 이 조약의 준수를 의미한다.

사드와 관련해 헌법에 따른 국회 비준, 환경영향 평가 등 여러 법규가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이고 강력한 법규는 이 조약이다. 이 조약은 6.25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총성을 멈춘 직후 만들어져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과 함께 미국이 한국군에 대해 누리는 특수한 관계다. 이는 한국이 자청한 것이기는 하지만 미군에 한국군사주권이 예속되어 있다는 부정적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1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사드배치와 관련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서 한국과 상의할 필요가 없는 문제”, “지금 사드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미국이 한국 정부에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언급한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은 1950년대에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했다가 철수하는 등 미군이 한반도 방위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군사력을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다. 세계 최강인 미국이 북한을 빌미 삼아 동북아에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이 수행되는 과정에서도 이 조약이 이용된다. 최근 군산비행장에 배치한 최첨단 무인 폭격기도 마찬가지다. 미군의 순환배치 원칙에 따라 주한미군에 각종 신무기가 반입되는 것도 이 조약에 근거한 것이다.

이 조약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경우 사드 논란에 대한 해법은 진즉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불평등 조약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거나 폐기하는 방안을 공론화 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국내 정치권과 시민사회운동 단체, 언론 등은 박근혜 파면으로 가능해진 조기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사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제시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미국,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과 남북한 평화 공존과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 결정을 기정사실화 하겠다고 밝힌 뒤 국내외의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성주 현지 주민은 물론 사드 반대를 외친 시민사회 등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과 러시아 정부는 이미 반발하고 있다. 두 나라는 ‘사드 절대 불가’를 거듭 강조하면서 방관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표정관리를 하는 모양새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이 심각해질 우려가 크다.

사드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에 대해 한국 정부나 여야는 물론 전문가, 시민사회단체등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높아지고 중국과의 관계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할 때 미국과의 현재와 같은 동맹 관계가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치권 등이 핵심적인 것은 제켜두고 주변만 건드리는 식은 적절치 않다.

미국과 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국치스런 일이다.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하거나 미국이 두려워 말을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해도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은 이 문제를 적극 거론해 정치권을 추동했어야 했다.

남북한 평화 공존이나 교류협력 등과 같은 중장기적 민족적 과제를 상정할 경우 한미 군사동맹 관계를 21세기에 맞게 조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외면할 수 없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입하는 한국의 위상을 고려하고 중국이 급부상하는 동북아 정세 변화 등에 비춰 이 조약을 수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중장기적인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매우 적절하고 필요하다.

사드 논란은 이 조약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로 부각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는 창피하고 분통터지는 일로 자주적으로 지정학적 변화를 주도하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복잡할수록 원칙이 최선이다. 이제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공론화 시켜 사드는 물론 한미군사 불평등관계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국방을 포함한 전반적인 자주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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