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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부른 '오월의 열사들'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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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8  14: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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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새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며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 등 '오월의 열사'를 호명했다.

이들 열사들은 누구인가.

   
▲ 1980년 4월 전남대 대강당 앞 광장에서 열린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유세하는 박관현 열사. [사진출처-(재)관현장학재단]

박관현 열사는 1953년 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나 광주고를 졸업, 1978년 전남대 법대에 입학했다.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민족민주화 대성회'를 주도했다. 16일밤 옛 전남도청 앞 광장 분수대에서 연설로 광주시민의 가슴을 울렸다.

"제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이올시다. 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여러분의 함성이 전 국토와 민족에게 다 들릴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외쳐봅시다.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대행진을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 광주시민, 아니, 전남도민, 아니, 우리 민족 모두가 이 횃불을 온 누리에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5월 17일 계엄군의 일제 검거를 피해 은신했다. 은신기간 서울 삼양동, 공릉동 등지에서 노동자로 생활했다. 그러다 1982년 4월 5일 체포, 내란죄 등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박 열사는 광주교도소에서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40여 일간 옥중단식투쟁 끝에 그해 10월 12일 새벽 피를 토하며 전남대 병원에서 운명을 다했다. 그해 나이 29살.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 열사의 대학 후배이자 들불야학 동지였다. 현재 광주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 표정두 열사. [사진출처-추모연대]

표정두 열사는 1963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광주 대동고를 입학했다. 1980년 5.18당시 독서회 활동으로 정학을 당했으며, 1983년 호남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1986년 자퇴,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하남공단 신흥금속 노동자로 일한 표 열사는 미국과 군부독재가 광주에서 저지른 만행을 알리는 일에 주력했다.

그러던 중 1987년 3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 하적장에서 몸에 캐로신을 끼얹고 불을 붙인 후 주한미대사관 앞으로 내달렸다. "내각제 개헌 반대",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는 구호와 함께.

병원으로 후송된 열사는 "나는 광주사람이다. 광주 호남대학을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그만두고 하남공단에 있는 신흥급속에서 근무 중인 노동자"라며 집 전화번호와 유서를 인근 다방에 놓아두었다고 밝혔다. 분신 당시 가방에는 '내각제 반대', '장기집권반대'라는 쪽지가 발견됐다.

이틀뒤인 3월 8일 25살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현재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 조성만 열사. [사진출처-추모연대]

조성만 열사는 196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주 해성고를 졸업했다. 1983년 대학 재수당시 명동성당 청년연합회 소속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사회문제의식을 가졌다. 1984년 서울대 자연대에 입학했으나, 바로 군 입대했으며, 제대후 1987년 대선 당시 부정선거 규탄을 위한 '구로구청 농성'에 참가해 구류 10일을 받았다. 

1988년 5월 15일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이던 조 열사는 명동성당 구내 교육관 4층 옥상에서 할복, 투신했다. "양심수를 석방하라", "조국통일 가로막는 미국놈들 몰아내자"라고 구호를 외치며.

투신 후 백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이날 오후 7시 30분 운명했다. 현재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당시 나이 24살.

전주 중앙성당에 있을 때 조성만(세례명 요셉) 열사의 영세신부였던 문정현 신부는 1989년 동생 문규현 신부의 방북에 조성만 열사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 박래전 열사. [사진출처-추모연대]

박래전 열사. 1963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1982년 숭실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1987년 민중후보 선거대책위 선전국장, 1988년 민중정당결성 학생추진위 선전국장, 1988년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 등을 맡았다.

대학시절 박 열사는 광주학살 진상규명, 남북 분단올림픽 반대 및 공동올림픽 쟁취, 6.10남북학생회담 쟁취 투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88년 6월 4일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를 외치며 분신했다. 이틀 뒤인 6월 6일 25살의 나이로 운명했으며, 현재 경기도 마석 모라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 하며,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인권운동가 박래군 씨가 바로 박래전 열사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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