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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위기’가 말해주는 것<칼럼>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정영철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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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8  0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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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위기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 미 항공모함 칼빈슨 호의 한반도 출항, 북한에 대한 고강도 압박 등등으로 한반도 위기 지수가 증폭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요동치던 4월 위기의 끝자락에서는 오히려 ‘적절한 환경’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김정은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하면서 정반대의 발언이 튀어나오고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미국의 진정일까? 사실 ‘4월 위기’의 본질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발언, 그리고 이 때문에 어떤 것이 그의 진심이며, 어떤 것이 미국의 대북정책의 알맹이를 담고 있는지조차 불확실했던 것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4월 위기설’의 또 하나의 전선은 중국이었다. 중국의 매체들이 쏟아 부었던 북한 관련 기사들이었다. <환구시보>나 <글로벌 타임스>, 혹은 <인민일보>까지 북한과의 기존 관계를 재정립한다거나 ‘핵실험을 강행할 시에는’ 중국도 전례없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등의 중국발 한반도 위기의 증폭이 ‘4월 위기’의 다른 한쪽 면을 장식했다. 이에 북한 역시 공식 매체를 통해 중국에 거칠게 대응함으로써 양국간의 매체를 사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또 하나의 ‘4월 위기’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소위 말했던 ‘4월 위기’는 결국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중국의 주고받기 식의 ‘말의 잔치’가 만들어낸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듯 하다. 여기에 미국의 사드 배치 비용 문제, 한미 FTA 재협상 발언 등으로 한미관계에서의 쟁점까지 부각되었고, 또 이와는 반대 방향에서 중국의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의 지속과 더 거칠어진 성명이 또 하나의 위기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의 더 큰 원인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던 우리의 상황이었다. 긴박하게 움직이는 국제적인 움직임에 우리 정부는 사실상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욱이 ‘안보’와 관련되어서는 한미동맹, 사드배치, 북한 압박이라는 기존 테두리에 안주한 채로 그저 미-중간의 흘러가는 움직임에 몸을 맡기는 식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의 문제에 ‘우리’가 빠져있었다.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토록 떠들썩했던 4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갔다. 곧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사람들의 불안감, 언론을 통해 연일 지면이 장식되었던 미국 첨단 무기, 중국의 대북한 압박 등에 맞서 북한의 몇 차례에 걸친 미사일 발사 이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 그래서 ‘4월의 위기’는 어쩌면 강대국 정치의 논리 속에서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감만 증폭시켰던 것으로 기억될 듯 하다.

그런데 이처럼 잔인했던 4월에 정작 한반도를 책임져야 하고,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사드 배치의 현장에서도, 미-중의 주고받기 식의 위기 증폭에서 정작 이 위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버텨야 했던 한반도 주권자들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로지 미-중이 주도하는 ‘위기의 구조’ 속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그들의 처분에 일희일비하는 모습만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모습이 한반도 현실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해법도, 정책도, 최소한의 우리의 요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지금이 대선 국면이어서 그러는 것일까? 오히려 정책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심판받는 지금이 더 목소리를 높여 우리의 주장과 요구를 밝히는 것이 정상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4월의 위기’를 보내면서 두 가지의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된다. 하나는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우리의 의도와 희망과 달리 위기는 언제든 외부의 세력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정작 위기를 온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마땅히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적어도 10년 전에는 강대국의 강경한 요구와 주장에도 최소한 한반도 문제에서는 우리의 목소리가 담겨있었고, 그래서 부당한 요구에는 이를 거부하거나 협상을 통해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남과 북이다. 가장 평범하지만 정작 잊어버리고 있는 단순한 사실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과거를 거울로 삼아 지금의 상황을 평가하자면,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서 최소한의 주도권이라고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실행할 때 뿐이었다.

이는 북도 마찬가지였다. 북도 남과의 화해와 협력이 진척될수록 더 많은 나라들과 더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심지어는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더욱 중요하게는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실행할 때에는 외부의 세력이 한반도 문제에 근거없는 위기를 조성하기도 힘들었고, 설사 그러한 위기가 조성되더라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 마치 먼 과거의 일처럼 기억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당연하게 논의되던 이야기였다. 단지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이다.

‘4월의 위기’가 지났지만, 이 위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남북이 지금처럼 갈등과 대립을 반복한다면 위기는 언제든지 닥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주고받기 식의 ‘말의 잔치’가 난무할 것이며, 우리 내부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또 갈등과 반복을 지속할 것이다. 강대국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남북의 관계는 그 만큼 더 멀찍이 물러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요란했던 ‘4월의 위기’가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남의 장단에 춤추는 꼭두각시가 될 것인가?, 우리가 주도할 것인가? 외부의 세력이 주도하는 데로 끌려갈 것인가?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서만큼은 우리가 최소한의 주도권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 ‘4월의 위기’가 던져주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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