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에는 단 하나의 신전이 있는데 바로 인간의 몸이다(노발리스)


 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을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 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자들의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할 뿐이다.

 고대의 많은 왕국에서는 왕이 노쇠하여 병이 들면 그를 죽이고 새로운 젊은 왕을 세웠다고 한다.

 ‘죽음과 부활의 의례’를 통해 노쇠한 세상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현대의 선거도 이런 의례 행위라고 한다.

 우리는 ‘노쇠한 왕’은 죽였는데 ‘새로운 젊은 왕’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늙은 왕’들 중에서 ‘덜 늙은 왕’을 뽑는 선거에서 우리는 신명을 느끼지 못한다.

 고대인들은 성스러운 시간과 속된 시간이 있었다.

 그들은 속된 시간에 살면서도 의례 행위를 통해 다시 성스러움을 회복했다.

 우리는 성스러운 시간을 잃어버렸다.

 그날이 그날이다. 

 (그날은 분명히 특별한 날일 텐데 신성함을 잃은 우리에게 모든 그날은 그날일 뿐이다)

 늙은 왕들이 지배하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다 병들어 버렸다.

 노쇠한 시대에서는 누구나 병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아프지 않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야말로 얼마나 무서운가!
 
 왜 우리는 ‘새로운 젊은 왕’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가?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