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검색하면 쇠뜨기, 솔잎란, 은행나무, 금송, 메타세콰이어, 웰위치아, 고사리 등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광주 트라우마센터의 소장을 역임한 중년의 의사 강용주는 국가폭력의 상처와 DNA를 조밀하게 간직하고 있으므로 국가폭력계에서 피해자로서 살아있는 화석급이다.

그는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 위반으로 기소되어 4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보안관찰법의 문제가 젊은 세대의 기자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아서인지 강용주 사건을 보도하는 매체가 별로 없다는 점이 그저 놀랍다. 통제의 기술은 의구한데 필봉이 무디어가는 시대를 개탄하며, 동시대인에게 악몽같은 폐습을 함께 제거하자고 제안한다.

강용주가 14년간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 1999년 오키나와 국제학술회의에 제출한 강연원고는 그 때까지 자신의 삶과 생각을 보고하고 양심의 자유를 훌륭하게 옹호하고 있다. 현재의 강용주와 글 속의 강용주 간에 어느 정도 격차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원고는 교양 시간에 낭독 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수준 높다.

1962년생인 강용주의 사회적 생애는 고3이던 1980년 5.18광주학살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총을 들고 도청에 인접한 건물에서 사수대의 역할을 하다가 5월 27일 새벽 도청이 계엄군에 점령당하자 두려워 도피하였고 이 일로 죄책감에 빠져 휴학하고 방황하였다. 이듬해에 그는 복학하여 고등학교를 마치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남다른 사회적 생애는 이번에는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그 죄상은 광주학살의 진실에 관한 불온서적(황석영의 기념비적 저작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타자본)의 전달과 북한사회에 대해 선배와 나눈 대화였다. 당국은 불법적인 구금과 고문 속에서 그를 ‘뿔 달린 간첩’으로 둔갑시켰고, 법원은 고문과 조작이라는 강용주의 주장을 외면하고 기소장대로 복사기 판결을 내놓았다. 그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이른바 ‘최연소 장기수’라는 기이한 이름으로 영어의 시간을 견뎌왔다.

장기수라는 말은 언제나 완고한 사상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사람은 사상 때문에 스스로 사상범으로서 특별한 길을 가기도 하지만, 권력의 핍박으로 불가피하게 사상범이 되기도 한다. 전자가 필연적 사상범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우연적 사상범이다. 강용주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현재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자율적으로 형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인간이 사상에서의 자율성을 외부의 힘으로 침해당하는 국면에서 사상범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꺾여버린 인간과 꺾이지 않은 인간이 구별된다. 강용주는 이러한 맥락에서 사상범으로서 또 다른 생애를 시작하였다. 나는 길고도 깊은 대화와 성찰을 통해서 인간이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러한 면에서 자발적인 전향을 좋아한다. 그것이 깨달음이고 발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자신의 입장과 방향을 지속적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전향은 오로지 자발적이고 진지한 사유과정의 일부여야만 한다.

강제적인 전향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정신에 대해 기꺼이 폭력을 행사하는 체제에서 하두 오래 동안 살다보니 강제 전향의 관행도 자연법처럼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대로 우리는 관습의 독재 아래서 악습의 노예가 된 것이다.

사실 70년대 사회안전법 체제 아래서는 교정당국은 전향공작의 일환으로 장기수들을 고문하여 살해하기도 하였다. 준법서약서는 저강도 전향서라고 할 수 있다. 강용주는 옥중에서도 준법서약서 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미 같은 사건(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연루되었던 피해자들이 준법서약서를 쓰고 석방되었지만 강용주는 당국의 회유에 굴하지 않았다.

준법서약서가 과거의 사상을 버리라고 적극적으로 주문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준법서약서를 작성하여 개과천선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은 고문조작으로 얼룩진 거짓 범죄를 정당하다고 추인하는 짓이므로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강제 전향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준법서약서 거부는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성전이었다.

1998년 강용주는 UN자유권위원회에 전향제도와 관련하여 개인통보를 제출하였고, 자유권위원회로부터 2003년 7월 인권이사회로부터 “한국의 사상전향제도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6조(평등권)와 제18조 제1항(사상·양심의 자유), 제19조 제1항(표현의 자유)을 침해한 것”이라는 결정을 통보받았다.

최근에 시국사건이나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 다수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는 국면에서도 강용주는 자신의 사건에 대해서 재심을 청구하지도 않았다. 재판과정에서 고문조작이라는 주장을 수없이 되뇌었는데도 무시했던 사법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이제 와서 사법부를 다시 정의의 법정으로 만들고 자신을 들러리로 낮추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아가 정치적 위기 때마다 사람을 잡아다 마사지해서 흉칙한 범죄자를 가공해내는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현실에서 제 한 몸 빠져 나가 무죄를 받는다하여 사회정의가 구현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무죄를 받는 자라면 정의와 변혁을 원하는 인간으로서도 결격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재심은 국보법 폐지로만 완결될 일인지 모르겠다.

국보법 위반자는 출소함으로써 대가를 모두 치른 것이 아니다. 출소자에게 보안관찰법이 기다리고 있다.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및 기타 형법상 중대한 죄목(내란, 군사반란)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보안관찰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재 보안관찰대상자는 대략 2300여명이고, 그중에 실제로 신고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보안관찰 피처분자는 43명이다.

보안관찰법은 과거 불령선인이나 요시찰인물에 대한 일본제국의 보안법제나 사회안전법의 유제라고 할 수 있다. 보안관찰법은 ‘재범의 위험성’을 이유로 국보법 위반 출소자에게 보안관찰처분을 내리고 신고의무를 부과한다. 당국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죽을 때까지 부과할 수도 있다.

당국은 강용주에게 출소시점부터 보안관찰처분을 내렸고 그는 그때부터 신고의무를 거부하였다. 2001년 신고의무 위반으로 기소되어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2002년 보안관찰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고, 헌법소원에서도 패소하였다. 2017년 현재 신고의무 위반으로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비판적인 형법학자들은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 부과와 처벌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변형된 이중처벌이라고 규정한다. 막말로 국보법 위반 출소자들이 또 다른 범죄행위를 한다면 그에 상응하게 처벌하면 될 일이지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불이행시 처벌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법으로서 합당치 않다.

나는 사상범과 관련한 범죄를 확신범, 양심범, 심정범 세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확신범은 자신의 윤리적, 정치적, 종교적 확신으로 일반형법을 위반한 사람이다. 다른 종교를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다른 종교인을 살륙하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 이들을 특별히 유리하게 처우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광신과 테러의 문제로서 형사정책적으로 심각하게 취급해야할 사안이다.

둘째로, 양심범은 일반형법을 위반한 확신범 중에서 그 행위동기가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옹호할만하고 행위수행방식이나 결과도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경우이다. 부당한 정부정책에 대한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들을 정당화해주거나 책임을 감경시켜주자는 것이 정의의 요구이다.

셋째로, 심정범은 일반형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특별한 정치형법에 의해 비로소 범죄자가 되는 경우이다. 전체주의적 심정형법은 개인의 심정을 범죄로, 그러한 심정을 추지할 수 있는 행태를 특별법에 의해서 범죄로 규정한다. 과거에 유럽에서 종교재판의 형태로 존속했으며, 국가보안법사건의 대다수가 이러한 심정범의 문제이다.

국가보안법은 법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폭력적으로 법의 영역을 개척한 실례들이다. 이제 국보법 위반자의 정신과 신체에 악령처럼 들러붙은 종교재판관의 눈을 제거해야 한다. 폭정과 폐습의 노예로 사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대법학박사

전 국민대, 전남대 교수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1년 <국가범죄>로 임종국상 수상

로베르토 웅거 <주체의 각성(2012)> 야스퍼스 <죄의 문제(2014)> 번역
국가폭력 및 인권문제에 관한 논문을 민주법학에 규칙적으로 투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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