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본질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통해 완성해가는 것이다(사르트르)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 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그림책 ‘108번 째 아기양(아야노 이마이 글, 그림)’에서 주인공 여자 아이 수아는 잠을 자려고 양을 센다.

 양 1 마리, 양 2 마리, 양 3 마리...... .

 양들이 차례대로 침대를 넘어가는데, 쿵 소리가 나더니 이마에 커다란 혹이 볼록 솟은 108번째 양이 침대를 넘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있다.

 108번째 양이 울먹이며 말했다.

 “흑흑, 역시 난 안 되겠어요.”
 그래서 수아는 톱으로 침대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108번째 양이 후닥닥 달려와 몸을 날려 구멍으로 쏙 들어가 멋지게 발을 착 내디뎠다.

 마침내 양들이 몸을 둘둘 말고 수아는 다리를 쭉 뻗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무의식이 도와주고 무의식과 연결된 온 우주가 도와준다)

 문제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을 때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이다(키에르케고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촛불이 세상을 다 밝힐 듯 했는데, 온갖 흉흉한 바람이 곳곳에서 불어오고 있다.

 삶을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괴테)’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은 한평생 자유를 향한 간절한 꿈을 꾸었기에 수많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느 날 김수영 시인은 팽이를 돌리는 아이를 본다.
 
 ‘팽이가 돈다/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내 앞에서 돈다’

 김수영 시인은 팽이에게서 깊은 가르침을 듣는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다.

 우리가 2017년의 봄에 틔운 싹들이 어떻게 자라고 열매를 맺을 것인가?

 순전히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가 간절히 피워 올렸던 ‘촛불’을 각자의 가슴에 고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스스로 제 길을 찾아 굴러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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