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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기획연재> 2017 대선, 한반도 평화를 말한다 (2)
강호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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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0  11: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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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제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연재 순서

분단과 혐북: 또 하나의 적폐 – 변학문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⓶ ‘혐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⓷ 우리가 보지 못한 북한의 변화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⓸ 북미 핵과 미사일 공방, 어디까지 왔는가 – 장창준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⓹ 대선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언 - 평화연구센터

 

사회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풀기 시작했다. 미움, 증오 등 속마음이 밖으로 표출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학교 안의 ‘왕따' 문제나 사회 전반적인 ‘혐오성 범죄'는 그 뿌리가 같다. 어떤 대상에 대한 미움, 증오로 인한 것인데 이유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가난한 집 아이라서, 못생겨서, 능력이 없어서, 사교성이 부족해서, 피부색이 달라서, 외국인이라서 등등 혐오의 대상은 다양하다. 요즘은 급기야 ‘여자라서 혐오한다’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보통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면 혐오의 대상을 조절하고 그런 요소들이 부각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조치가 취해진다. 외모로 판단하지 마라, 경제수준으로 차별하지 마라, 피부색으로 차별하지 마라 등등의 대책이 제시된다.

그런데 사실 '혐오'는 이성적으로 판단되는 ‘이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혐오'는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이다.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감정, 성찰되지 못한 감정의 일방적인 표출일 뿐이다. 따라서 혐오의 대상을 통제하고 조절한다고 해서 왕따나 혐오성 범죄는 해결되지 않는다. 못난 사람을 혐오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난 아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잘생긴 사람은 좋아만 할까? 부잣집에 태어난 아이를 좋아만 할까? 아마도 또 다른 혐오꺼리를 찾을 것이다. 결국은 혐오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 못생겨도 친구고, 가난해도 친구이지 않는가.

‘혐북’에 중독된 사회

과거 체제 대결 시기에 북한은 극복의 대상이었고 타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북한은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성적으로 대립하는 대상을 넘어 감정적으로 싫어하고 기피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공, 반북, 종북을 넘어 ‘혐북'이 되어버렸다.

북한에 대한 혐오의 근거를 찾아보면,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합당한 부분이 있다.

너무 가난해서, 정치권력의 형태가 너무 이상해서, 3대 세습이라는 전근대적 통치관습이 작동하는 나라라서, 인권의식이 희박해서, 사회주의를 지향해서, 우리와 전쟁했던 역사를 갖고 있어서, 호전적이라서, 핵을 개발해고 사용하려고 해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적으로 규정되어서 등등.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북한'만'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인해 북한을 혐오하게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반대로 북한을 혐오해야만 하기 때문에 애써 찾아낸 이유들이다. (국가보안법만 빼고)

태국이나 부탄, 혹은 아랍의 여러 나라들은 왕에 의해 통치되고 있지만 북한처럼 혐오의 대상은 아니다. 베트남이나 중국은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을 북한만큼 미워하지는 않는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의 나라는 핵을 개발하고 매우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고 심지어는 실전에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북한만큼 무시 당하지 않는다. 우리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일본을 미워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북한보다는 덜 미워하는 사람 또한 많다.

혐북은 해방과 함께 형성된 분단체제가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6.15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남북 교류협력이 활발해질 때에는 혐북 현상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다시 교류협력이 막히면서 급격히 심화된 것만봐도 알 수 있다. 분단체제가 적으로 규정한 북한이기에, 그 북한의 여러 특징들은 모두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혐북의 근거가 되었다.

물론, 북한을 미워하고 증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혐북에 중독되어 생긴 부작용의 심각성을 인지한다면 혐북은 하루빨리 치료해야 할 ‘병’이다. 우리 사회는 ‘북한’이라는 요소가 끼어들게 되면 ‘합리적 사고' 능력이 마비된다. 합리적 추론이 멈추는 지점에 북한이 있다. 또한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 정세 혹은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북한을 바로 알지 못하는 ‘북맹'이 되어 동북아를 비롯 우리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게 된 것이다.

논쟁 종결자, 북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북한과 관련된 것이라면 우선 멀리 하고 본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국립도서관에서 북한 서적을 마음껏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발간된 문헌을 보고 있는 사람을 대부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북한 뉴스를 보는 통로는 정부에서 ‘친절하게도’ 차단시켜서 실수로 북한에서 만든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미리 막아준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나 배후를 추론, 추적하다가도 북한이 등장하게 되면 모든 논쟁이 허무하게도 거기가 그냥 멈추어버린다. 어떤 반론이나 합리적 의심도 못하게 된다.

지난 달 말에 발생한 ‘여기 어때’ 사이트 해킹 사건과 예전에 발생한 ‘농협’ 해킹 사건을 비교해보면 이런 지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숙박 시설을 검색, 추천해주는 어플인 ‘여기 어때'가 해킹 당했을 때, 그 범인으로 중국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해커들이 들어온 경로에 중국 IP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IP는 이미 공개된 여러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조작하기 매우 쉬운 것이라 이것만으로 중국 해커들이 범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비판이 곧바로 제기되었다. 이런 비판으로 인해 중국 해커 범인설은 곧바로 설득력을 잃고 사라졌다.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했던 것이다.

2011년 농협 해킹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논쟁이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당시 농협을 해킹한 배후로 북한이 거론되었는데, 그 근거는 ‘여기 어때' 해킹 사건과 같은 ‘IP 문제’였다. 농협 해킹 경로를 역추적하다가 중국 IP를 발견했는데, 이 IP는 이전부터 북한의 해킹부대가 자주 사용했던 IP라는 것이다. IP는 쉽게 조작된다는 점, 은행 전산망을 해킹할 정도의 높은 실력을 가진 해커가 IP를 조작하지 않고 장기간 사용했다는 점 등이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지만 ‘북한'이라는 존재가 부각되면서 논쟁은 여기서 끝났다. ‘여기 어때' 사건과 달리 북한이 범인이라는 결론이 기각되지 않았고 역으로 이의를 제기하던 의견들이 오히려 기각되었다.

두 사건 모두 북한이 해킹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두 사건과 관련된 논쟁이 정반대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없을 때는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평가되었던 것(IP문제)이 북한의 등장 이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급기야 관련 논쟁이 멈춰버렸던 것이다.

나로호와 은하호 발사 실패에 대한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2012년 즈음, 남과 북은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궤도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나로호는 2009년과 2010년 두 번의 발사가 실패한 뒤 2013년 1월에 겨우 성공하였다. 나로호가 두 번이나 실패했을 때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으면서 재발사를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빨리 재발사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2012년 4월 13일, 북한이 은하 3-1호를 발사하다가 실패하니 모두들 실패 사실만 부각하고 관련 과학자들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라는 걱정(?)만 내놓았다. 나로호의 실패에 대해서는 모두들 재발사를 당연시하던 언론에서 은하 3-1호 실패에 대해서는 재발사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로호의 발사로 인해 거둘 수 있는 부대효과(경제적, 사회적 효과)를 샅샅히 분석하던 언론들은 북한의 은하호 발사와 관련해서는 침묵하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담만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북한의 은하 3-1호는 나로호보다 한 달 빠른 2012년 12월에 3-2호라는 이름으로 발사성공했다. (이 당시 은하 3-2호 재발사를 예견하고 이를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차원에서 분석한 글은 필자의 글이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광명성 3호는 다시 발사된다" (프레시안, 2012.4.17))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위력을 떨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치, 사상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것은 쉽게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과 북한의 존재론적 특수성 때문에 과학기술 내적인 부분까지도 합리적 추론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북맹의 정당화 논리, 혐북

북한과 험하게 싸우던 옛날에도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를 따라 북한을 연구하였다. 비록 적이지만 북한의 행동을 명확히 예측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일을 수행하긴 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북한을 미워하는 혐북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북한을 연구하는 행위 전체가 점차 줄어들었다. 북한을 연구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연구하기보다 혐북의 심리를 전제한 연구가 유행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북한 인식은 남북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2007~8년 즈음에 멈추어 있거나 그 이전 시기로 후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던 1990년대 북한만 남아있고 CNC를 비롯한 각종 자동화 설비를 갖춘 공장들이 가동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은 없다. 남북 교류협력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만 인정하지 북한의 과학기술이 나름 발달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사일이나 핵 등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군수산업이 민수로 이전되어 북한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과 유사한 북한의 ‘새세기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을 앞세운 경제발전전략을 김정은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북한 연구자 중에도 몇 명 없을 것이다. 북한의 교육이 이데올로기 주입과 우상화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최근 북한 교육이 수학, 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지식 주입보다 탐구력, 추론 능력을 기르기 위해 ‘열린 문제(정해진 답이 없고 다양한 해답이 가능한 문제)’ 중심으로, ‘실험, 관찰, 토론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북한을 미워하고 조롱하면서, 북한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 전체는 ‘북맹’이라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들어서고 있다. 역으로 북맹으로 빠져드는 우리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혐북의 논리로 반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북한은 지금 현재의 북한이 아니라 최소 10년에서 20년, 심하면 30~40년 전 북한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가상의 북한일 때도 있다. 그만큼 우리는 북한을 모르고 있다.

혐북을 극복하는 방법

혐오 감정이 극한에 이르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진다. 묻지마 폭행, 여혐 폭행,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무차별 폭행 등은 이런 혐오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표출된 범죄행위이다. 문제는 혐오 감정때문에 발생한 이런 행위가 혐오 감정을 푸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그런 행위를 한 사람들도 이런 혐오 행위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을 혐오하는 감정도 똑같다. 북한을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 삶을 바꾸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논리적 추론 능력이 떨어지는 부작용과 북맹이 되어 우리 주변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다. 분단 체제에 뿌리박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적폐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북한을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인 특수한 관계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을 어떻게 보건 간에 북한이 우리와 딱붙어 있는 이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한 해 태어나는 40만명도 안 되는 아이들에게 탄생축하금으로 1억씩 나눠줄 수 있는 막대한 돈(40조)을 국방비로 소비하는 이유가 이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싸우지만 않으면 우리 사회의 20대 청년들이 20대의 절반(76개월, 군복무 기간과 군대 가기전 대기시간, 군제대 후 사회에 복귀할 때까지 걸린 시간을 모두 합한 것)을 군복무로 인해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우리와 평화공존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면 혐북 문제는 많은 부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 북한은 우리와 싸우고 있는 존재이었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평화공존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또한 분단국가의 대통령 선거에서 ‘분단구조의 철폐', 혹은 ‘통일'과 관련한 정책이 사라졌음을 걱정하고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북한을 관리대상으로, 전쟁만 일삼는 국가로 바라보는 정책은 폐기해야 한다. 저렴하고 수준 높은 노동력과 지하자원을 공급해줄 수 있는 북한이 아니라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당사자로, 그 결과 서로에게 경제적 번영으로 가져다줄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정책을 준비해야만 한다.

최근 미국이 대북 정책을 정비한다고 하면서 대북 군사 옵션 또한 고려하고 있다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마치 우리를 대신해서 북한을 혼내달라는 ‘혐북'의 극치 상태에 도달한 듯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에게 좋을까? 적어도 우리에게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만은 명확하다. 전쟁은 그저 ‘재앙'이다. 이미 겪어보지 않았나.

중국과 미국 정상이 북한 관련 정책을 우리를 배제한 상태에서 서로 논의한다는데 이것 또한 매우 위험하고 주제 넘는 짓이다. 혐북에 빠져 있는 사이 우리의 운명을 강대국에 내맡기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못 느끼고 있는 듯하다. 혐북은 ‘북맹’을 낳고, ‘북맹’은 ‘외교적 패착’을 낳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지게 된다. 결국 혐북은 북한을 혼내주기는커녕 우리의 목숨줄을 다른 사람들 손에 넘겨준 결과를 가져왔다. 평화보다 우선한 가치는 없다. 평화는 ‘혐북과 북맹 탈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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