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문(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촛불 항쟁의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한국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자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적폐 청산을 강조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적폐라 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한국 사회 적폐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분단 체제를 극복하자는 주장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한 진단, 평화에 대한 해법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마저 후퇴하는 퇴행적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구세력의 ‘종북 공세’논란 그리고 그에 따른 대중 여론의 악화를 우려하는 야권 대선 주자들의 심정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야권 대선 주자들의 안일한 인식과 대응은 심각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에 ‘혐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모든 행위는 혐오나 조롱 혹은 냉소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혐북’은 수구세력 뿐 진보개혁적인 정치세력 내에서도 존재합니다. ‘혐북’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 접근을 차단합니다. ‘혐북’은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전쟁구조에 대한 무지와 몽매를 초래합니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는 기획 연재를 통해 ‘혐북’에 가로막혀 가려져 있던 2017년의 한반도 상황을 진단합니다. 북한의 변화와 그것이 갖는 합의,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2017년 한반도 상황, 동북아시아의 질서와 한반도의 미래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2017년 5월 대선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은 남과 북의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떼놓고 상상할 수 없습니다. 2017년 대선과 대선 이후, 한반도 평화의 길을 모색합니다. 이 연재는 5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주

 

연재 순서

⓵ 분단과 혐북: 또 하나의 적폐 – 변학문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⓶ ‘혐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⓷ 우리가 보지 못한 북한의 변화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⓸ 북미 핵과 미사일 공방, 어디까지 왔는가 – 장창준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⓹ 대선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언 - 평화연구센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 가을 이후 ‘‘적폐 청산’의 요구는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야당과 야권의 대선 주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를 4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또 하나의 적폐는 여전히 성역이다. 이명박근혜 세력은 분단을 명분으로 한 ‘종북’공세로 비판적인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권력을 맘껏 누려왔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 남북교류의 상징이자 최후 보루마저 막힐 정도로 남북관계는 단절되었고 한반도 긴장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북한 위협에 대처’를 구실로 한 사드 배치 결정은 중국의 반발과 경제 보복을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와 평화 정착, 경제와 민생의 정상화를 우리 뜻대로 이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과 중국의 과잉 반응에 대한 비판과 비난만 넘쳐날 뿐, 이를 초래한 분단 구조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는 감옥으로, 그러나 여전한 긴장 상황
 
분단이 유지되는 한 전쟁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지난 9년 동안 더욱 첨예해졌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악화될지 완화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취임 두 달이 지난 트럼프 행정부도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하면서도 “대화부터 무력 사용까지 모든 대북 옵션을 검토 중”이라면서 대북정책 기조를 정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과 북한은 서로 ‘험악한’말과 행동을 주고받고 있으며, 특히 최근 몇 년간 그랬듯이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독수리훈련‧키리졸브 연습이 시작된 이후 더욱 심해졌다. 예컨대 미국은 핵 항공모함 칼빈슨호‧B-1B 폭격기‧F-35B 전투기 등 전략무기는 물론이고 오사마 빈 라덴 암살 부대까지 훈련에 투입하여 ‘참수작전’, ‘평양 점령’등의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북한도 네 발의 미사일을 일본 해역 쪽으로 발사했고, 새로운 대출력 로켓 엔진 분출 시험을 진행했으며, 이를 이용한 장거리 로켓을 조만간 발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과정에서 양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태세 강화”, “임의의 시각에 섬멸적 타격 가할 것”등의 말도 계속 주고받았다.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는 정책을 추진했던 박근혜가 탄핵되었고, 이제는 “박근혜는 감옥으로”라는 구호까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사드는 애초 계획보다 빠르게 추진되고 있고,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국, 북한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검토 중

그럼에도 최근 흐름 속에서 중요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의 우선순위가 분명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백악관 대변인에 따르면 트럼프는 3월 6일 미사일 발사, 18일 신형 대출력 엔진 시험 등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곧바로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과 함께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미 국방부 부장관과 국무부 대변인도 북한 문제를 미국 대외 정책의 “최우선 이슈”(top priority issue)로 다루고 있음을 확인했다.

미 국방부 부장관은 대북 정책 수립 과정을 실무진에서부터 성안해 위로 올라가는 기존 ‘상향식’이 아니라,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장관 그룹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한 뒤 실무진이 방안을 구체화하게 하는 ‘하향식’으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예상보다 빨리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크리스토퍼 포드 백악관 선임국장은 새로운 대북 정책 검토를 “매우 빠르게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무언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이 바라던 바이며, 북한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시사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세 번의 핵 시험, SLBM 및 이를 응용한 신형 IRBM(북극성-2형) 개발, 수십 차례의 미사일 발사 시험과 신형 장거리 로켓 엔진 개발 등을 진행해왔다.

북한은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미국이 자신들과 대화에 나서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국방을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일련의 행동을 취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다루는 현 상황은 지난 수 년 북한이 행했던 일련의 행위에 담긴 그들의 의도가 상당히 관철된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분단 문제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가로막는 ‘혐북’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만들어지는 데 최소 6개월~1년이 걸릴 거라 예측했다. 즉, 국내에서 현재와 같은 빠른 상황 전개를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미국이 북한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다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상황 변화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북한의 모든 행위를 ‘혐북’프레임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북한을 혐오와 조롱, 냉소와 적대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태도를 혐북이라 부르고자 한다. 혐북의 시각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새파랗게 젊은 독재자의 치기 어린 도발’이거나 ‘호전성의 발로’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는 얼마 받고 미사일 쐈냐?”는 식의 국내 수구세력과의 ‘적대적 공생’의 결과물일 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정당과 정치인들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하기보다는 사안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대북 강경 발언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북한이 왜 핵과 미사일을 쏘는지, 그러한 행위가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과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합리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

물론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잣대로 권력의 3대 세습,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 사망, 체포 3일 만에 고모부 장성택 처형 등을 납득하기 힘들다. 여기에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의 긴장을 높일 뿐 아니라 국내 수구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일련의 행위들도 계속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 인식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보다 훨씬 악화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혐오‧조롱‧냉소 등 북한에 대한 감정은 말 그대로 개인의 자유다.

다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북이 북한과 분단 문제에 대한 이성적‧합리적 사고를 가로막아 엄청난 후과를 가져오고 있음은 짚어볼 만하다. 미국과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동북아 질서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에 대한 혐오와 조롱, 냉소에 머물러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핵심 당사자이면서도 말이다. 심지어 중국의 중-미-북 3자회담 제안에서 드러난 대로 자칫 당사국 대접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4월 6-7일 미국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북정책의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강경에는 강경으로, 선의에는 선의로’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신임 국무장관이 전략적 인내 정책의 종언을 명시적으로 선언했음을 감안하면, 북미관계는 지금보다 더한 초긴장 상태로 가거나 반대로 대타협 분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과연 혐북이 만연한 한국 사회, 특히 정치권은 그 같은 상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나?
 
사드 배치, 분단과 혐북이 낳은 치명적 후과

현안인 사드 배치 논란을 보자. 익히 알려진 대로 사드는 안보적‧경제적으로 우리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미 국방부 보고서에 “좋은 날씨에만 작동 가능”이라 적혀 있을 정도로 기술적 완성도도 매우 낮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작년 여름 박근혜 정권의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지금까지 철회를 주장해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31일에도 성주에서는 지역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롯데 골프장에 진입하려는 사드 차량과 대치중이다.

그러나 야당들은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몇 달 째 보여왔다. “사드는 전적으로 북 핵 때문”, “적어도 북한 핵을 막는 데는 도움”등 혐북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사드 문제를 바라본 데 따른 결과이다. 이러한 인식과 태도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은 합의하면서도, 정작 미국을 향해서는 사드 배치 연기나 재검토를 촉구하지 못하는 국회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사드 배치는 분단과 혐북이 지배하는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표상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원인은 ‘북한’이 제공한다. 따라서 기술적 완성도가 낮더라도 사드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북한이 위협하는 현실에서 한중 경제 마찰을 우려하는 것은 한가한 일이다. 미국에게 우리 안보를 의탁하고, 사드를 도입해야만 북한의 위협에서 ‘조금이라도’안전해 질 수 있다. 결국 원인은 ‘기승전-북한’이고, 대책은 ‘기승전-사드’이다. 이 같은 논리는 적폐 청산의 대상인 수구세력만이 아니라 소위 진보개혁 세력 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분단 적폐 청산을 위해 혐북을 극복할 때

만약 야당들이 위와 같은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집권한다면 20여 년 전 김영삼 정권이 범했던 잘못을 다시 저지를 수 있다. 김영삼 정권은 “핵을 가진 상대와 악수할 수 없다”며 남북대화를 완강하게 거부했을 뿐 아니라 북미 협상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 결과 1994년 6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 위기에 내몰려야 했고, 협상 과정에는 참여하지도 못한 채 북미 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북 보상을 일방적으로 부담하기만 했다.

현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지난 수 년 미국과 북한은 무력을 동원해 서로를 위협하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계속 시도해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중국도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안하면서 미국, 북한과 계속 접촉 중이다. 그러나 혐북의 눈에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집중하는 혐오스러운 북한만 두드러질 뿐, 북한을 포함한 우리 주변국들의 대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혐북이 아닌 냉정하고 합리적인 눈으로 북한과 분단 문제를 바라보자.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에 백해무익한 사드 배치를 철회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대북 대화와 협상을 추진하자. 그래야만 국민의 힘으로 힘겹게 만들어낸 적폐 청산의 기회를 온전히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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