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에서 4.19인민봉기, 6월 인민항쟁과 같이 대중적 항쟁들이 벌어졌지만 이번처럼 수백만대중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지펴 올린 정의의 촛불로 반동 통치의 괴수를 탄핵시키고 친미보수세력의 명줄을 끊어놓은 사변은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1일 ‘남조선 인민투쟁사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전민항쟁에 관한 조선중앙통신사 상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지난 3월 11일까지 주말 20회에 걸쳐 진행된 ‘대중적 촛불투쟁’에 대한 장문의 글을 게재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통신은 “남조선 인민들이 대중적 투쟁으로 희세의 악녀, 극악무도한 매국노, 민족반역자에게 철추를 내리고 친미파쇼 독재기반을 밑뿌리 채 뒤흔들어놓은 전민항쟁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 위하여 이 상보를 낸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상보는 A4 용지 6장 분량으로 촛불항쟁의 배경과 주요 특징, 본질에 대해 서술하고 평가했다.

상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전대미문의 권력형 부정부패, 국정농락 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불붙기 시작한 민중의 분노에 10월 25일 박근혜 대국민사과는 오히려 전민항쟁 발발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10월 29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주최 하에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 지역에서 일제히 범국민행동이 시작되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국선언을 계기로 대학의 시국선언운동이 개시되고 이를 필두로 문화예술인들과 종교인들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 16개 지역과 각 부문에서 대책기구가 구성되었다.

새누리당 내 소위 비박계를 비롯해 전통적인 보수지지층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들까지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면서 촛불항쟁은 전국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11월 9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전국 1,550여개 단체들이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을 결성해 촛불투쟁을 조직적이고 대중적인 항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퇴진행동은 단순히 박근혜 탄핵에 그치지 않고 선거제도 개선과 재벌위주의 경제정책 폐지, 남북관계 회복 등 10대 과제를 내세우면서 2,300여 단체를 망라하는 등 확대 강화되었다.

지난해 10월 29일 1차 촛불부터 지난 3월 11일까지 20차에 걸쳐 연인원 1,70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이 촛불항쟁에 참가했으며, 특히 지난해 12월 3일에는 232만 명이 참가해 과거 4.19와 6월 항쟁의 기록을 훨씬 뛰어넘기도 했다.

또 투쟁이 장기화하는데 따라 대규모 촛불투쟁과 함께 스마트폰을 통한 탄핵 청원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을 적극 결합했으며, 언론도 유례없이 촛불 투쟁을 신속하고 상세하게 다루었다.

농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서울로 진격했으며, 한 스님이 광화문에서 소신 항거에 나서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현수막은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갈기갈기 찟기기도 했으며, 해외에서도 연대의 촛불투쟁과 시국선언, 시위행진이 벌어졌다.

상보는 “자주,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오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전민항쟁은 사대매국 보수세력과의 첨예한 대결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 박근혜 탄핵을 위해 무려 13차례에 걸쳐 대규모 촛불투쟁이 전개된 것은 “불의를 용서치 않으려는 항쟁 참가자들의 드팀없는 의지의 과시”였으며, “이 나날 항쟁 참가자들은 새해 첫날과 정월대보름, 설 명절에도 그리고 온몸이 얼어드는 강추위와 눈비속에서도 낮과 밤을 이어가며 싸웠다”고 소개했다.

또 지난 6일과 10일 특검과 헌법재판소가 각각 박근혜의 범죄혐의를 확정하고 탄핵을 최종결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각성된 인민들의 힘찬 투쟁’에 의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상보는 “남조선 인민투쟁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전민항쟁은 박근혜와 같이 인민의 머리위에 군림하여 민중의 지향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부정의의 세력은 반드시 멸망하며 정의와 진리로 뭉친 인민의 힘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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