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한나 아렌트)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중립)의 초례청 앞에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2017년 3월 10일 11시 30분경.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쏟아지려했다.

 ‘아, 이렇게 한 시대가 가는구나!’

 1979년 10월 27일 아침.

 어렴풋이 잠이 깼는데, ‘박정희 대통령 서거’라는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아...... .’

 내 가슴은 얼마나 뛰었던가!

 ‘이제 좋은 세상이 오겠구나!’

 하지만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다.

 흉흉한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더니 혹한의 세월이 왔다.

 1987년 6월.

 다시 세상은 요동을 쳤다.

 ‘자유를 향한 절대 정신’이 거리를 뒤덮었다.

 1987년 겨울, 나는 산사(山寺)에 갔다.

 뒷걸음치는 역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울 산을 헤매며 꺼억 꺼억 울었다.

 우리는 다시 2017년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박근혜 부녀의 시대’가 역사 속으로 잠겨가고 있다.

 껍데기들의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박근혜 부녀의 시대’는 너무나 길었다.

 우리의 몸에 그 시대가 깊이 배어 있다.

 우리는 얼마나 그들을 닮았는가!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

 우리는 온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우리의 몸과 생각은 얼마나 쇠붙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는가!

 생명은 ‘간난아이처럼 부드러워(노자)’야 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그 많던 ‘명망가들’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나왔을 텐데도 우리 눈에 띄지 않았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언제나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이뤄간다.

 ‘조금이라도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역사의 강물에서 비켜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강물이 제대로 길을 찾아갈 것이다. 

 곳곳에서 축제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축제는 웃고 떠드는 게 아니다.

 한 시대를 죽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의례인 것이다.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계속 이 시대의 껍데기들을 비춰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새살이 돋고 껍데기들이 사라지는 긴 세월을 감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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