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彈劾)!

사전적 의미로는 잘못을 물어 꾸짖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번의 탄핵은 대통령으로서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고, 국민의 신임을 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고, 국가의 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땅히 더 일찍 탄핵이 되어야 했지만, 최소한의 법적 절차 때문에 장장 13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 우리는 대선정국을 맞이함과 동시에 그간의 잘못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청산과 변화’를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제 중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과 입장을 가지고 출발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서 있다.

이미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보복과 갈등의 복판에 던져지고 있다. 탄핵 정권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대북통일정책이 중단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면서 더 큰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박근혜 정권은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 ‘통일준비위원회’ 등으로 말로만 거창한 통일을 외쳤지, 실질적인 남북관계의 개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원칙을 세우지도 못했고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국내정치에 활용하기 위한 슬로건만 존재하는 정책이었다. 이제야 밝혀졌지만,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등이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정책결정 과정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사적 네트워크’에 의한 농단의 작품이었고, 이러한 정책결정이 결국은 최악의 남북관계라는 결과를 남겨놓았고, 더욱이 지금 당장에는 중국으로부터의 보복이라는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탄핵이 이루어진 지금에도 우려스러운 바는 잘못된 정책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현재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경우, 일부는 사드 배치에 대한 차기 정부에서의 해결을 주장하기도 하고,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한편 대다수는 이미 합의된 한미간의 합의에 따라 되돌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더욱이 이러한 주장이 평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의 입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남북의 최고지도자 사이에서 합의된 – 다시 말하지만 이미 합의된 – 내용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국방장관들 사이에서 합의된 내용은 국가간 신뢰 등을 들먹이며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면, 남북 사이에 합의된 내용도 되돌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상적이지 않을까? 더구나 그 합의가 최고지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장관급 약속이 꼬~옥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면, 최고지도자들 사이의 약속은?

사드배치 등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권력과 정권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존권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오만하고 부정한 권력과 정권에 의해 결정된 잘못된 정책은 언제든지 바로 잡아야 한다.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가 그렇고, 지금의 사드배치 문제가 그러하다. 특히,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있고, 한‧중관계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졸속적으로 결정된 사안들에 대해 되짚어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힘에 의해 국내정치를 바로 잡았다면, 외교-안보-통일의 문제도 민주주의의 힘에 의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국민의 힘’을 보았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곧바로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없다면 평화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수많은 국민들이 부정과 부패에 대해 정당한 저항권을 행사하고 있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지금, 잘못된 평화와 통일의 정책에 대해서도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탄핵의 여정이 일단락되었다. 이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탄핵의 여정이 시급히 요구된다. 지금 당장 사드 배치의 과정을 중단시키고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성주와 김천의 주민들이 탄핵 결정에 두 손을 높이 들고, 이제는 사드도 탄핵해야겠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의 비극이 탄핵의 요건에 들지 않았다고, 그 범죄행위와 책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박근헤 정권의 탄핵이 헌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 정책이 정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고, ‘평화와 통일’을 위험에 빠뜨린 책임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는 미-중간의 갈등과 대립, 미국에 종속된 한-미, 한-일 동맹의 구조 속에서 외교적 참사라 일컬을 정도의 처지에 놓여있다. 남북관계 역시 말로만 한반도의 당사자일 뿐, 아무런 의미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함정이자 동시에 국정 농단의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행동으로 만들어진 ‘소녀상’을 일본 정부의 요구에 따라 이전을 요구하는 외교부의 행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는가? 내부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바깥으로는 스스로가 자존심을 팽개친 굴종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더 중요하게는 국가-국민의 위신이 아니라 특정 개인의 사적 이익을 앞세운 국정 농단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적폐(積幣).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deep-rooted evil이라 한다. 우리말로 하면 오랫동안 뿌리깊게 쌓인 폐단을 의미한다. 이처럼 뿌리깊게 쌓인 폐단은 시간이 흐를수록 청산하기 쉽지 않다. 잘못은 신속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는 이를 바로잡을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한반도 차원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바깥으로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외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의 탄핵 촛불을 통해서 충분히 그럴 힘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민적인 역량은 충분한데, 정치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제 국민의 힘을 믿고 지난 ‘남북관계의 적폐’도 청산하는 길에 나서야 한다. 지금 당장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방적 조치부터 중단시키자.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중국의 일방적 보복에 말로만 떠드는 무능한 현재의 권력이 바로 지금 당장 청산되어야 할 ‘적폐’일 것이다. 이 또한 박근혜 탄핵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한 권력 아닌가!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분야에서의 이러한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힘겨운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힘겨워질 뿐이다.

여기에 한 마디만 덧붙인다면, 탄핵 이후, 국론 분열의 종식을 명분으로, 어설픈 통합에 붙들려 청산해야 할 적폐와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통합은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닌 바로 국민들과 함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적폐와의 통합은 없다. 과거,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와의 통합이 이 땅에 어떤 역사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잠시만이라도 돌아보길 바란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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