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는 외로워

  공주는 요즘 부쩍 외롭다.
  할 일 없이 구중궁궐에 갇혀서 하루를 보내야 하니
  외로울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위에서 추어주는 사람에 둘러싸여
  우리 공주님 우리 공주님 들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 멀리 갔으니 외롭다고 느낄 수밖에
  사실 공주는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
  아주 짧은 기간만 빼고는 그랬다.
  부왕이 무장이던 시절 부왕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때 모후는 부왕을 따라가지 않고 공주와 지냈는데
  모후가 부왕을 따라가지 않은 까닭이
  워낙 여자를 밝히는 부왕이 보기 싫어 그랬다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이다.
  아무튼 그래서 공주는 모후와 함께 지냈는데
  그때가 외롭지 않게 보낸 유일한 때인 듯하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된 부왕 왕비가 된 모후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바삐 생활을 하고
  공주는 늘 외로운 마음으로 지냈것다.
  평생을 외롭게 지내다 보니 사실 외로운 게 뭔지 잘 모른다
  혼밥 혼술 혼놀 하고 다른 사람이 있어도 혼자가 편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꿈같이 마법사가 찾아왔다
  모후가 돌아가신 뒤에 공주가 마법사를 안 걸로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공주는 학창시절부터 마법사를 알았다
  마법사가 건네준 거울을 보며 공주는 혼자 놀기 좋아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리 물으면 거울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야 공주님이지요 공주님은 정말 완벽해요
  그럴수록 공주는 점점 더 거울에 빠져 들었다
  모후가 돌아가신 뒤 공주는 마법사를 더욱 찾았다
  어느 날 마법사가 공주에게 속삭였다
  공주마마는 여왕이 되실 것이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부정을 타니까
  모두 다 끊고 소인의 말만 들으시옵소서
  공주 좀 꺼림칙했지만 그 말대로 하면서
  더욱 거울 속의 세계만 들여다 보았것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보다 어린 여자와 술 마시다
  부왕마저 의금부 대장 칼에 맞아 돌아가시고
  궁궐 밖으로 내쳐진 공주 마법사만 만나고
  여동생 남동생도 다 멀리 하며 살았는데
  마법사가 죽은 뒤에는 마법사 딸과 그 남편
  두 새끼 마법사가 공주 옆에 늘 있었다
  이렇게 살아왔어도 외롭다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공주
  요즘은 정말 외로워서 견디기 어렵구나
  순살이 뒹굴던 침대에 가서 만져도 보다가
  거기 누구 없느냐 순살을 들라고 일러라
  궁녀와 내관이 따끈따끈한 순살을 준비해서 올렸다
  일단 순살을 허겁지겁 먹고 입가를 싹 닦은 공주
  누가 이걸 들이랬냐 내 아바타 순살을 들라 했지
  공주가 아바타인지 순살이 아바타인지
  아무튼 공주는 순살이 자기 아바타라 믿는 모양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하면서 바들바들 떠는 내관
  순살마마는 감옥에 가 계시온즉 드실 수가 없나이다
  아차 그렇지 순살은 감옥에 가 있구나
  순살이 국정을 농담했다고 했지 맞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문고리 잡고 있던 승지들은 어디 갔느냐
  내관이 다시 바들바들 떨다가 아뢰옵기 황송하다고 하고는
  전하 다 집으로 보내시지 않았사옵니까
  그 중 하나는 감옥에 갇혀 있고
  둘은 어디 갔는지 의금부에서도 못 찾는다 하옵니다
  그랬던가 그러면 병든 소인지 소가 병들었는지 하던 승지는
  그 분도 집으로 보냈고 곧 감옥에 가야 한답니다
  그러면 당장 벌어질 일들을 누구와 의논해야 하느냐
  내관은 속으로 누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느냐겠지요
  이리 생각했지만 차마 그리 말할 수는 없는 일
  늙은 도승지는 어디 갔느냐
  늙은 도승지를 당장 들어오라 일러라
  공주 사실 늙은 도승지는 별로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해서 무섭기도 하고
  그런데 내시가 말하기를 그도 감옥에 갔단다
  한편으로는 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막막한데
  쓸쓸해진 공주 다시 순살을 먹는데
  어린 궁녀 하나이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
  그런데 전하 요즘 이상한 말이 돌고 있사옵니다
  이 궁녀는 하도 뜬금없는 소리를 잘해서
  내명부에서 쫓겨 날 뻔도 했는데
  공주가 심심풀이로 있으라고 붙잡아 두었던 터
  마마가 파면되는데 숫자가 그렇게 되었다고
  공주 아무리 어린 것이지만 말이 좀 괘씸하여
  레이저를 쏠까 하다가 그래도 한 번 들어보자 했는데
  일하면 탄핵 표결 불참자가 일명이요
  이, 삼, 사 하면 탄핵 표결 찬성자가 234명이요
  오, 륙 하면 탄핵 표결 반대자가 56명이요
  칠 하면 무효표가 7표이고,
  팔 하면 탄핵안 보고일이 8일이고
  구 하면 가결된 날이 9일이며
  이제 선고하는 날이 10일이고
  선고하는 시간이 11시랍니다
  12일에는 전하가 순살마마를 만날 것이라 하옵니다.
  내가 순살을 만난다고?
  네 의금부 가셔서 만나신다네요
  온 우주의 기운이 숫자로 모여서
  전하가 그리 된다는 것이라네요
  이런 괘씸한 것들이 있나
  그래 내가 탄핵되면 도로를 피로 물들인다던
  재판관 의금부 다 가만두지 않겠다던
  수많은 친공파들은 어디 갔더냐
  이때 내시가 나서면서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어린 것이 떠도는 말을 듣고 온 모양인즉
  너무 괘념치 마시옵소서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그래 내일 바로 삼수갑산 가더라도 옥체는 보존해야지
  우울하다 이럴 때는 운동 한 판하고 땀을 흘려야지
  공주 옛날 같으면 할머니가 다 된 나이지만
  여전히 군살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성형수술 덕이지만
  우울해질 때마다 한 판 뛰는 습관도 한 몫 했기 때문
  이럴 때 뛰려고 1억냥이 넘는 헬스 기구를 사들였고
  트레이너를 당상관으로 채용하기까지 했는데
  오늘처럼 우울한 때는 내시 시녀도 물린 채 혼자 뛰고는 했다.
  몇 분쯤 뛰었을까 이상하게 러닝머신이 흔들린다
  게 아무도 없느냐 내시가 달려오고 궁녀가 달려왔다.
  전하 무슨 일이시옵니까 왜 땅이 흔들리냐 지진이 아니냐
  전하 그건 러닝머신을 너무 빠르게 하셔서 그런 것인즉
  오늘은 쉬시는 것이 어떠하온지
  하긴 요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좀 그런 것도 같다
  그렇다면 와인 한 잔 하면서 쉬어 볼까
  거 뭐시냐 송로버섯이냐 뭐냐 하는 것 있느냐
  예 전하 드시라고 주방 냉장고에 잘 쟁여 놓고 있사옵니다
  송로버섯, 전하의 내시라도 되겠다는 자가 붕당 대표가 되어
  너무 기뻐서 샥스핀 등과 함께 오찬을 했던 요리
  서쪽 어느 나라에서는 900그램에 1억 냥 넘은 적도 있고
  지금도 500그램만 되어도 150만 냥이 넘는다는 것
  이 맛은 아무도 모른다 이거 먹었다고 떠들어 쌓는 놈들 땜시
  몰래 몰래 감춰 놓고 먹지만 그러니까 더 맛있다.
  이걸 먹으며 공주는 흘러간 노래를 부른다
  공주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

  백성은 개 돼지 개 돼지들이다
  잘난 사람 잘 난 대로 살고
  못 난 사람 못 난 대로 산다
  야야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개 저기도 돼지 개 돼지 판이다

  공주는 어느새 흥에 겨워 일어나 춤까지 춘다
  그러다가 술이 좀 과했나 가물가물해졌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창 밖에
  남부여대 하고 사람들이 떼지어 가더라
  창문을 열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공주를 봐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데
  그러다가 한참만에 쳐다 보는 이 있어
  어디를 그렇게 가냐고 물으니
  이 땅을 떠나고 싶단다
  취직도 안 되고 장사도 안 되는데
  어떤 년놈은 수백억씩 뇌물로 쳐먹고
  그 대가로 대대손손 부자로 이어 가고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대궐을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다 해쳐먹는 나라
  곳간은 비었는데 세금만 올리고
  정승 판서 부자들만 배불리고
  왕이라고 지 얼굴만 예쁘게 하겠다고
  수백 명이 죽어도 나 몰라라 하고
  끝까지 잘 했다고 헛소리만 해대는 나라에서
  늙을 날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 떠난단다
  그들의 딱한 처지보다 자기의 딱한 처지가
  더욱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구르던 공주
  저를 모르세요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라고
  소리쳐 부르니 가다가 멈춘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 공주님 아니세요 거기서 뭐하세요 하는 거라
  여왕님이 아니라 공주님이라고 한 말에 빈정은 상했지만
  그래도 그 중 나은 반응이라 대꾸를 했것다
  그래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으니
  공주님은 우리들의 자애로우신 어머님이시라던데
  말끝이 조금 삐딱해서 거시기하기는 했어도
  어쨌든 좋은 말이라 여긴 공주 내친 김에 한마디 더
  무엇을 원하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하니
  ....
  ....
  ....
  한참 침묵이 흐른 뒤에
  ....
  ....
  ....
  그래도 떠나기 전에 이 나라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어 간단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될 거란다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공주 화가 나서 그만 창문을 확 닫아 버렸는데
  창 밖에는 휘영청 달만 떠 있고
  지나가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
  공주는 외로워 공주는 외로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가락 하나만이
  외로운 공주를 휘감고 돌더라는데
  공주 없는 나라가 되었을까
  백성 없는 공주가 되었을까
  아주 먼 옛날의 머나먼 나라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