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애국심은 미덕의 한 부분이지만 그것을 강요한다는 것은 추악함 그 자체이다(다나카 요시키)


 조국(祖國)
 - 신동엽

 화창한
 가을, 코스모스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눈먼 깃발 흔든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금강 연변
 무를 다듬고 있지 않은가.

 신록 피는 오월
 서부사람들의 은행(銀行)소리에 홀려
 조국의 이름 들고 진주코거리 얻으러 다닌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꿋꿋한 설악(雪嶽)처럼 하늘을 보며 누워 있지 않은가.

 무더운 여름
 불쌍한 원주민에게 총쏘러 간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비통(悲痛) 삼키고 있지 않은가

 그 멀고 어두운 겨울날
 이방인들이 대포 끌고 와
 강산의 이마 금그어 놓았을 때도
 그 벽(壁) 핑계삼아 딴 나라 차렸던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꽃 피는 남북평야에서
 주림 참으며 말없이
 밭을 갈고 있지 않은가.

 조국아
 한번도 우리는 우리의 심장
 남의 발톱에 주어본 적
 없었나니
 슬기로운 심장이여,
 돌 속 흐르는 맑은 강물이여.
 한번도 우리는 저 높은 탑 위 왕래하는
 아우성 소리에 휩쓸려본 적
 없었나니.

 껍질은,
 껍질끼리 싸우다 저희끼리
 춤추며 흘러간다.

 비 오는 오후
 뻐스 속서 마주쳤던
 서러운 눈동자여, 우리들의 가슴 깊은 자리 흐르고 있는
 맑은 강물, 조국이여.
 돌 속의 하늘이여.
 우리는 역사의 그늘
 소리없이 뜨개질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나니.

 조국아,
 강산의 돌 속 쪼개고 흐르는 깊은 강물, 조국아.
 우리는 임진강변에서도 기다리고 있나니, 말없이
 총기로 더럽혀진 땅을 빨래질하며
 샘물 같은 동방의 눈빛을 키우고 있나니.


 태극기를 보면 봄날에 진달래를 보는 듯, 한복 입은 소녀를 보는 듯,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머니께서는 9살 때 나를 ‘국민학교’에 보내셨다. 중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하니 초등학교에서 많이 배우라고 한 살 늦게 보내신 것이다. 

 기성회비를 제대로 내지 못해 수업하다 수없이 쫓겨나면서도 무사히 학교를 졸업해 ‘국민’이 될 수 있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병원비가 싼 ‘국립병원’부터 찾았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의지할 곳이라고는 ‘국가’밖에 없었기에 태극기가 내 가슴에 그렇게 가슴 아리게 각인된 것 같다.

 ‘태극기 집회’에 나온 나이 드신 분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태극기를 흔들며 오로지 국가를 믿으며 살고 싶을 지도 모른다.

 6.25를 겪고 보릿고개를 지나며 항상 절박했던 게 ‘국가’일 것이다.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납세고지서/징집영장밖에 없는(김남주 시 -그러나 나는- 중에서)’ 삶을 살았을지라도.

 ‘국가’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 국기까지 흔들고 테러까지 서슴지 않으려는 분들의 절박함이 얼마나 애절한가!

 ‘좋은 국가’를 만들고 싶은 꿈은 같은 데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른 구호를 외치고 모습이 처절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대한민국’을 이만큼 만들어 왔고, 위기가 닥치면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은 

 ‘여기 이렇게 금강 연변/무를 다듬고’ 있거나 ‘여기 이렇게/꿋꿋한 설악(雪嶽)처럼 하늘을 보며 누워’ 있거나 ‘여기 이렇게/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비통(悲痛) 삼키고’ 있거나 ‘주림 참으며 말없이/밭을 갈고’ 있는 우리들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자라는 아이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믿을 거라곤 부모밖에 없기에.

 부모를 아름답게 미화하며 아이는 견딘다.

 우리는 우리 안의 ‘아이’를 벗어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가슴 깊은 자리 흐르고 있는/맑은 강물’로 우리의 조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역사의 그늘/소리 없이 뜨개질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말없이/총기로 더럽혀진 땅을 빨래질하며/샘물 같은 동방의 눈빛을 키우고’ 있어야 한다.

 나의 아버지도 살아계셨더라면 아마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셨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살아오신 아버지의 처절한 삶을 잘 알기에 아버지의 생각이 너무나 슬프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 가족을 굳건히 지켜오셨다.

 ‘가족을 지켜 오신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의 후손까지 확산될 순 없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들의 사랑'은 껍질이 되어 ‘껍질끼리 싸우다 저희끼리/춤추며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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