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용산역 광장에 건립하려던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는 28일 정부의 불허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더 많은 노동자상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 박정희의 창씨명)를 비롯한 친일 인물 50여명의 동상이 대한민국 곳곳에 세워져 있는데,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우리 땅에 세울 수 없다는 현실에 새삼 분노가 치민다. 비탄을 금할 수 없다.”

김욱동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28일 오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를 거부한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해방 70년이 지나도록 친일의 역사는 더욱 더 강고하게 이 땅을 휘감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자주 독립 만세를 외쳤던 3월 1일, 강제로 끌려간 노동자들의 집결지였던 용산역 광장에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하던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상임대표 단체 : 민주노총·한국노총)는 지난 24일 국토교통부가 부지협조 불가 입장을 알려옴에 따라 28일 제막식이 아니라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왼쪽부터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 김동욱 민조노총 부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에 따르면, 최근 국토교통부는 노동자상을 세우려는 용산역 광장 부지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양대 노총에 전해왔다. 그 이유는 이곳이 국가소유의 부지이고 한일관계를 고려한 외교부의 반대가 있어서라고 했다.

노동자상 건립추진위는 “‘국가부지라서 안 된다’는 말은 강제징용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한일관계를 고려해 노동자상 건립을 반대한다’는 발언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역사와 당시 조선민중들의 참혹했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민족의 주권을 지켜나가야 할 정부 당국의 당연한 의무”이며, “정부가 할 일을 민간이 먼저 추진한다면 먼저 감사할 일이고 그 어떤 경우에도 협조와 지원을 약속해야 할 일” 아니냐는 것이다.

또 올바른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일제 40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실규명과 사죄, 배상이 이행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주권국가의 행정부라면 과거사를 부정하고 미화하려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국유지에 사유재산을 그대로 반입할 수는 없으나 기부 방식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사례도 여럿 있다”며,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검토와 조정이 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의 상임대표 단체인 양대 노총은 “1,800만 노동자들이 역사를 기억하려는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난 14일 노동자상 건립추진위 발족식을 통해 첫걸음을 내딛었다”며, 서울을 포함해 앞으로 전국에 더 많은 노동자상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2015년 평양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서 후속작업으로 합의한 ‘강제징용 관련 남북노동자 대토론회’ 평양 개최를 올해 8.15~10.4기간 내에 성사시키고 내년에는 노동자상 평양 설립도 빠르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김한수 할아버지는 100살의 연세에도 마츠시다 조선소에서 당한 강제 징용의 체험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에 나와 떨리는 음성으로 강제 징용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했던 김한수 할아버지(100살)는 이날도 정정한 목소리로 당시의 체험을 전하면서 “나라를 잃은 민족은 돛대 없는 배 신세이니 젊은 세대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대표는 “용산역 인근에 강제 징용을 위해 전국에서 끌고 온 젊은이들을 수용한 창고가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용산역과 부산항, 일본 시모노세키 항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징용된 경로와 흔적을 잊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창복 6.15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우리 선조들이 일제에 의해 이곳 용산역에서 강제로 끌려가던 그때를 생각해보자. 처절하고 비통한 노예의 삶을 살았던 선배 노동자들이 인권을 무시당하고 자존심이 무너진 상태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곳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겠다는 걸 어떻게 반대할 수 있는가”라고 분개했다.

이 의장은 “정부의 땅에 민족의 일을 하는 것은 당연히 권장해야 할 일이지 방해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외교부가 대일 굴욕외교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질타냈다.

나아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용산역에 노동자상을 세워야 하며, 각처 여러 곳에 노동자상을 세워서 후손들이 일제의 만행에 대해 생각하고 나라의 자존을 높이는 일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왼쪽부터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대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박한영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지금도 여전히 나라 잃은 세상에서 떠돌이 생활하는 것 같다”는 김복동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면서 “강제징용에 줄지어 끌려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 왜 우리가 설치하려는 노동자상을 국토부가 나서서 막느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박한영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일제는 식민지시대 조선에서 긇어갈 것은 다 긁어가고 마지막으로 노동자, 농민, 여성의 몸뚱아리를 내놓으라고 강요했다”며, “조선 농민의 자식들이 일제에 의해 장시간 저임금 노예 노동자로 재탄생한 것이 우리나라 노동계급의 탄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일본 아소 탄광 등에서 지하활동과 파업을 전개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박 실장은 강제징용 노동자의 아픔은 분단 이전 민족이 겪었던 상처이고 따라서 남과 북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며, “일제의 책임을 준열히 묻고 과거사를 청산하며, 남북의 협력을 꾀할 수 있는 작은 출발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가-22:23)

▲ 주권잃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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