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향 장기수 최공식 선생이 24일 타계했다. 사진은 법성포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모습. [사진제공 - 통일광장]

영광지역에 거주해 온 비전향 장기수 최공식 선생이 24일 오후 10시 10분 타계했다. 향년 92세. 유족으로는 병춘, 병선 두 아들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법성포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26일 오전 10시 발인할 예정이다.

전남 영광군 흥농면 칠곡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법성보통중학교(5년제)를 졸업했고, 한국전쟁 당시 면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하다 인민군에 입대했다.

1951년 지하 활동 중 경찰에 체포돼 광주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무기수로 확정돼 4.19직후인 1960년 10월 20년으로 감형됐고, 1971년 대전형무소에서 만기출소했다.

▲ 영광지역 비전향 장기수 최공식 선생이 24일 타계했다. [사진제공 - 통일광장]

출소후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77년 사회안전법으로 청주보안감호소에 구금돼 다시 복역했고, 사회안전법이 폐지된 1989년 출소했지만 보안관찰법 대상자로 분류돼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고인은 영광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에 소속돼 활동했으며, 불편한 다리로 여러 차례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다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청주보안감호소에서 같이 복역한 적이 있는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최공식 선생은 전형적인 농민의 아들로, 지식인나 간부 출신들이 많이 전향했지만 생활 속에서 계급성과 분노, 통일에 대한 바람이 간절했다”며 “토박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모든 사람들한테 웃음을 많이 줬다”고 회고했다.

권 대표는 “최공식 선생에게 ‘평생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 사람’이라고 이름을 가지고 놀리면 ‘공짜로 밥을 얻어먹었으니까 민중들에게 댓가를 치르기 위해 전향을 안한다’고 말하곤 했다”며 “영광에 계시면서도 통일광장 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모범적으로 활동했다”고 기렸다.

(수정,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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