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
하늘이 행하는 바를 즐거워하고 천명을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공자) |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 프로스트
이 숲 주인을 알듯하다.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내가 여기 멈추어 자기 숲에
눈 가득 쌓이는 모습 지켜보는 걸 그는 모르리라.
일 년 중 제일 어두운 저녁
근처에 농가 한 채 없는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춘 걸
내 조랑말은 이상하다 생각하겠지.
뭔가 잘못된 게 없느냐고
그는 마구(馬具)의 종들을 한번 흔든다.
그 밖에 다른 소리라곤
차가운 바람과 보드라운 눈송이가 스쳐가는 소리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토요일 늦은 오후 종로의 좁은 골목을 태극기를 든 한 떼의 아줌마들이 지나간다.
노란 리본을 가방 끈에 단 한 아저씨, 그녀들에게 뭐라고 소리친다.
한바탕 소란이 일고 각자 길을 가며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 아저씨는 왜 일면식도 없는 그녀들에게 험한 말을 했을까?
그 아저씨는 ‘어떤 의무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늘의 명령(天命)’같은 것,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 아저씨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대로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선지자(先知者)들’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듯이.
‘눈 내리는 저녁 숲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산 밑에 살아서 눈이 내리는 날은 이 시가 생각난다.
창문을 열고 눈 내리는 숲을 바라본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 창문을 닫는다.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아름다움’에 빠져 살 것인가? ‘나의 의무’를 다할 것인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도덕(道德)의 도(道)는 이 세상의 이치이고 덕(德)은 이 이치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도(道)’를 알고 나면 얼마나 즐거울까?
‘눈 내리는 숲’은 도(道)의 아름다움을 언뜻 보여줄 것이다.
그 아름다움에 안주할 것인가?
진정으로 도(道)를 안 사람은 도에 따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 내리는 숲’처럼 눈송이 하나가 되어, 나뭇잎 하나가 되어, 흙 한 알갱이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올해의 봄은 유난히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의 소망과 의무가 이 땅에 가득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