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행하는 바를 즐거워하고 천명을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공자)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 프로스트

 이 숲 주인을 알듯하다.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내가 여기 멈추어 자기 숲에
 눈 가득 쌓이는 모습 지켜보는 걸 그는 모르리라.

 일 년 중 제일 어두운 저녁
 근처에 농가 한 채 없는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춘 걸
 내 조랑말은 이상하다 생각하겠지.

 뭔가 잘못된 게 없느냐고
 그는 마구(馬具)의 종들을 한번 흔든다.
 그 밖에 다른 소리라곤
 차가운 바람과 보드라운 눈송이가 스쳐가는 소리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토요일 늦은 오후 종로의 좁은 골목을 태극기를 든 한 떼의 아줌마들이 지나간다.

 노란 리본을 가방 끈에 단 한 아저씨, 그녀들에게 뭐라고 소리친다.

 한바탕 소란이 일고 각자 길을 가며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 아저씨는 왜 일면식도 없는 그녀들에게 험한 말을 했을까?

 그 아저씨는 ‘어떤 의무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늘의 명령(天命)’같은 것,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 아저씨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대로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선지자(先知者)들’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듯이.

 ‘눈 내리는 저녁 숲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산 밑에 살아서 눈이 내리는 날은 이 시가 생각난다.

 창문을 열고 눈 내리는 숲을 바라본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 창문을 닫는다.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아름다움’에 빠져 살 것인가? ‘나의 의무’를 다할 것인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도덕(道德)의 도(道)는 이 세상의 이치이고 덕(德)은 이 이치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도(道)’를 알고 나면 얼마나 즐거울까?

 ‘눈 내리는 숲’은 도(道)의 아름다움을 언뜻 보여줄 것이다.

 그 아름다움에 안주할 것인가?

 진정으로 도(道)를 안 사람은 도에 따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 내리는 숲’처럼 눈송이 하나가 되어, 나뭇잎 하나가 되어, 흙 한 알갱이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올해의 봄은 유난히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의 소망과 의무가 이 땅에 가득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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