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 작가

지난 2월 14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양대노총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조선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강제징용 노동자像(상)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지난 28년 전 탄광섬 군함도에 최초로 들어간 이후 강제징용의 참상을 르포로, 소설로 복원한 한수산 작가는 이날 늦었지만 이제라도 잊지 않고 그 시대의 비극을 오늘에 되살리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나선데 대해 감사와 격려의 뜻을 표시했다.

한 작가의 격려사 전문을 소개한다.

한 작가가 소설로 펴낸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현에 위치한 하시마(端島)의 별칭으로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군함도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노동착취, 군함도 탈출과 노동쟁의, 일제의 잔인한 강제진압 등 강제징용이 참상은 올해 초 영화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 편집자 주

 

▲ 일제하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참상을 그린 소설 ‘군함도’의 한수산 작가가 지난 14일 국회도서관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양대노총 관계자 등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사진제공-민주노총]

너무 늦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맞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소회는 ‘늦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사는 그 피해 당사자가 살아있을 때는 피 흐르는 현실이며 오늘입니다. 그러나 하나 둘 피해당사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것은 화석이 됩니다. 눈물도 마르고, 분노도 힘을 잃어갑니다. 진실은 망각의 땅에 묻힙니다. 한 시대의 진실도 어둠에 갇히고 청산되지 못한 역사도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이제 좀 그만하라’는 순응주의자들의 집단 저항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하나 둘 잊어갑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망각 속으로 매몰된 진실들이 수많이 있습니다.

한일과거사의 비극적 역사를 되돌아보며 묻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는 과연 할 바를 다했던가.

그리고 묻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과연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이 몇 편이나 있었는가. 그 시대의 슬픔을 일깨우는 노래는 몇 곡이며 그 시대의 진혼과 해원을 위한 춤은 몇 개나 되는가. 영화는 지금도 만들어지는가. 연극이나 뮤지컬은 있기나 한가.

문화가 나서고, 문화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화석처럼 굳어져 가는 그 때를, 어둠 속에 묻혀 가는 그 비극을, 망각의 이끼에 뒤덮여가는 그 진실을 문화가 기억하고 파헤쳐서 살아있는 오늘로 되돌려야 합니다.

소설이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오늘 우리의 가슴을 쳐야 합니다.

영화가 그 비극을 재현하면서 우리의 가슴을 분노로 들끓게 해야 합니다.

춤이, 노래가 그 해원을 위해 우리의 가슴을 흔들어야 합니다.

문화가 나서서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잊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망각을 거두고 그 비극과 과거를 살아있는 오늘의 것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문화적 기억이 해야 할 의무이며 몫인 것입니다.

저는 소설 <군함도>의 작가입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탄광섬 군함도와 강제징용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제가 최초로 그 섬에 들어간 것이 까마득한 28년 전입니다.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채 캄캄한 어둠 속에 묻혀있던 탄광섬 ‘군함도’의 진실, 강제징용으로 가혹한 노동 속에 처박혀서 죽고, 다치고, 병들어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뼈저린 과거를 저는 소설 <군함도>로 담아냈습니다. 망각 속에 묻혀있는 과거를 현실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 르포를 쓰고 소설로 복원해 세상에 알림으로써 오늘의 기억으로 되살리는데 긴 세월을 바쳤습니다.

과거를 오늘의 문제로 되살리는 것 - 이것이 문화적 기억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라고 믿어왔습니다.

우리가 세우는 ‘강제징용 노동자상’도 바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문화적 기억’의 하나입니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잊지 않고 있다는 오늘 우리의 약속입니다.

오래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오래 잊지 않으리라는 오늘 우리의 결의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역사와 고난의 세월을 후대에 전하고, 결코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깨우쳐야 합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역사의 비극만이 아니라 노동의 진실, 연대의 절실함이 담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이라는 그 참혹함에 매몰되어 가혹한 노동에 처해졌던 그들 노동자의 진실이 함께 우러나와 역사를 되새겨 주기를 기대합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작에도 늦은 것은 없습니다. 시작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이제라도 잊지 않고 양대노총이 그 시대의 비극을 오늘에 되살리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나서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일에 뜻을 함께 하신 역사를 기억하고자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께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일제치하에서 미쓰비시 조선소에 강제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김한수 할아버지가 통한의 증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제징용노동자상 축소모형. [사진제공-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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