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츠비시 조선소에 강제징용 노동자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김한수 할아버지는 1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통한의 증언을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왜놈들에게 끌려가서 사람이 입으로 먹을 수 없는 음식, 썩은 콩깻묵을 먹어가면서 그들의 노예가 되어서 지냈던 그 과거를...우리 민족은 결코 다시는 그런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황해도 연백 출생으로 1945년 부산을 거쳐 나가사키의 미츠비시 조선소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던 김한수 할아버지(100살)는 1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통한의 강제 징용을 증언했다.

“먹을 거라고 주는 것이 콩깻묵을 갈아 안남미에 섞어서 도시락에 담아 주었는데, 끈기가 없으니까 뒤집으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중엔 그마저 먹을 것이 없으니까 싹싹 핥아 먹었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도 먹지 않았다.”

“발가락이 으스러져 안에서 빠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인데도 병원에서는 조금 있으면 낫는다며 충분히 일할 수 있으니까 나가보라고 하더라. 그때 몹시 울었다. 내 발가락 하나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은 왜 이렇게 쓰라린 고통 속에서 말없이 당해야만 하는가 원망도 있었다.”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강제징용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780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시 전체 조선인구의 1/3에 달하는 규모였다.

일제의 만행으로 죽어나간 영혼들은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일본의 바다와 땅에 스러졌다. 식민지에서 제국의 노동자로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은 해방 72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골이 되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해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숙연한 분위기속에 진행된 이날 발족식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지난해 8월 23일 일본 교토의 단가망간기념관에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상’을 건립한 이후 오는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인천, 경남, 제주도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확산하기 위한 첫 걸음을 뗀 행사이다.

서울에서는 3월 1일 용산역 광장에 설치할 예정이며, 보다 폭넓은 각계의 참여를 위해 3월에도 계속 추진위원을 모집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평양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로 북측과 합의한 상태이다.

박석민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평화의 소녀상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몸으로 알게 했다면,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연대의 상징이 되도록 하겠다”며, “압제와 노예적 삶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상징이자 새나라를 세우는 역사에 노동자들이 앞장서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월 24일 제26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조국이 해방된 지 72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제의 범죄적 행위를 청산하고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소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라는 미명하에 일제 침략 역사에 침묵하고 있지만 잘못된 과거는 사죄와 반성으로 마침표를 찍을 때 청산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청산의 힘으로 올바른 미래지향적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을 시작으로 2018년 평양건립을 마무리할 때까지 강제징용의 역사가 제대로 밝혀지고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함께 해 달라”고 당부했다.

▲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일제 잔재 세력들이 국정농단과 헌법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반역의 시기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또 “천만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정교과서와 위안부 졸속합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중단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다”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투쟁에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직무대행은 지난해 일본 당국의 입국거부로 인해 단가망간기념관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에 참석하지 못한 일을 ‘평생 잊지 못할 일제 만행’이라고 언급하고는 “올해 서울, 내년 평양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립하는 일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 윤경로 한성대 전 총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윤경로 한성대 전 총장은 격려사를 통해 “양대 노총이 마음과 뜻을 모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치하했다.

윤 전 총장은 “엄혹한 일제시기를 기억하면서 조각상으로 많은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에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으며,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남북·민족·통일문제를 함께 한 것도 큰 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늘 외국군대의 주둔지였고 1939년 본격적인 강제징용이 시작되면서는 첫 출발지였던 용산역 광장을 설치 장소로 정해 갇혀진 기념관이 아니라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읽도록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이 큰 반향을 일으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노동자상 건립은 과거를 되새기는 일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내년 평양 건립을 통해 남북관계 소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한수산 소설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소설 ‘군함도’를 쓴 한수산 소설가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소식을 접한 저의 첫 소회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라며, “과거사는 그 피해 당사자가 살아있을 때는 피 흐르는 현실이며 오늘이지만, 하나 둘 피해 당사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것은 화석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제를 기억하는 자들에게만 내일은 희망이다”라는 믿음으로, 또 “시작은 언제나 새롭다”는 격려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지지의 뜻을 보탰다.

▲ 김복동 할머니.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올해 92살이 되는 김복동 할머니는 15살 되던 해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간다는 말에 속아 일본 패망 때까지 끌려 다니다가 싱가포르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조선인임을 밝히고 조선으로 들어온 일생에 대해 설명한 후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위해 써 달라며 양대 노총에 직접 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김서경 작가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새를 노동자의 어깨에 앉히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간 억울한 죽음을 위해 비석 모양으로 다리 아래를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상 주변의 네 기둥에는 함께 기억하겠다는 500~700명 정도의 명판을 별도로 새길 예정이다.

이날 발족식에서 가수 이지상 씨는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던 조선청년 이우석의 이야기를 담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지난 2010년 충남 당진의 한 공장에서 용광로에 빠져 생을 마감한 29살 청년노동자를 기리며 지어진 시 '그 쇳물 쓰지마라'를 창작곡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 선언문(전문)

오늘 우리는 강제징용으 비롯한 과거 일제의 죄행을 밝혀내고, 그로 인한 수많은 고통과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 대에 이 모든 비극의 역사를 청산하자는 결심으로 이 자리에 섰다.

그것이 가해자이던 피해자이던, 역사를 제대로 ‘정의’하고 ‘반성’하며 ‘기억’하는 것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다. 비극이 치유될 때, 비로소 새로운 내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931년 만주침략, 1937년 중국침략, 1941년 태평양 도발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쟁속에서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수탈과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다. 특히 1939년부터 시작된 강제동원으로 인해 일제의 노동력 수탈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진행되었다.

일본은 물론 사할린, 쿠릴열도, 저 멀리 남양군도까지 끌려갔다.

그렇게 글려간 조선인들은 광산, 농장, 군수공장, 토목공사 현장과 같이,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그들은 하루 15시간 가량의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각종 명목으로 임금조차 제대로 지불받지 못했다. 하루 두 끼의 식사 역시 제대로 된 밥이 아니었고 숙소를 비롯한 모든 환경은 열악하여 영양실조와 질병이 창궐했으나, 치료조차 못 받은 채 사망자는 속출했다.

살인적인 기아와 노동환경에 탈출을 시도한 노동자 역시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뿐인가, 원폭 피폭과 공습, 함포 사격 등에 희생된 노동자 역시 셀 수 없다.

그러나 더욱 끔직한 사실은, 그 엄청난 고통과 희생의 역사가 가해자인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있음이요, 피해 당사자인 한국 정부 역시 암묵적 동조를 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회피는 비단 피해 당사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회피의 이면에는 군사대국화라는 목적이 도사리고 있고, 이는 다시금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더욱 심각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피해 당사자인 우리의 문제이다. 지난 9년동안 한국 정부의 입장은 매우 모호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부터 한일 위안부합의, 나아가 역사교과서 문제까지, 소위 ‘미래지향적 관계’라는 이유로 한국 정부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회피에 동조해왔다.

그 뿐인가, 소위 ‘북핵’에 대한 대처라는 이유로 한미일 군사동맹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했다.

지난해 11월 전국 곳곳에서 밝혀진 촛불은 비단 박근혜정권의 퇴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어둠을 밝힌 수백만의 촛불은 박근혜 정권 퇴진과 함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적폐청산’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적폐란 무엇인가. 더 이상 감춰지지도 않고 감춰서도 안된느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다. 올바른 과거사 청산이야말로 정상적이며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는 3월 1일 서울에 두 번째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할 것이다. 2016년 일본 교토 단바망간기념관에 건립한 첫 번째 노동자사항에 이어, 2017년 서울, 2018년 평양까지 우리의 노력과 실천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억울하게 고통받고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죄를 촉구하며, 올바른 과거사 청산을 이루어나가자. 다시는 이 땅에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아내고 평화로운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만들어나가자.

2017년 2월 14일(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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