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힘 있는 자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이 타령이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와 낙하산

  낙하산이란 것이 있것다
  낙하산이라 하면 비행기 등에서 사람이나 사물을
  안전하게 지상에 내릴 때 쓰는 것을 말하는데
  때로는 사람을 쓸 때 힘 있는 사람이 내려 꽂는 것
  다시 말해서 아무짝에도 관련 없는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을 일컫는 말이렷다.
  공주는 낙하산을 무척 좋아했는데
  어떤 낙하산을 좋아했는지
  오늘은 한 번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지금은 여왕이면서도 왕권이 정지된 공주
  공주 시절부터 하늘을 날고 싶어했다는데
  나는 새만 봐도 가슴이 뛰었단다
  지금이야 당연히 궁중에 갇힌 신세라 느낄 테니
  하늘을 날고 싶기도 하겠지만
  공주 때부터 그랬으니 유별나긴 유별난 성격이라
  하루는 하늘에서 새까많게 쏟아져 내리는 것이 있어
  옆에 있는 궁녀에게 무엇이냐 물은즉
  마마 저것은 병사들이 훈련하는 낙하산이옵니다
  낙하산? 그때부터 공주는 낙하산을 타고 싶어했는데
  무장 출신인 부왕에게 그 말을 했다가
  지집아가 무슨 낙하산 타령인고 차라
  그래서 공주는 꿈으로만 간직하고 살았다는데
  그 뒤로도 공주는 낙하산을 타보지는 못한 채
  낙하산 타는 병사들을 보고 박수를 치기만 해봤다지
  한편 또 다른 낙하산은 공주의 지휘 아래 내려 꽃혔으니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여왕이 된 공주 고민이 있었것다
  자기가 왕이 될 때 온몸을 바치면서 애쓴 사람들에게
  정승 판서 참판 승지 등 다 주면서 논공행상을 하고 있는데
  관찰사를 주려고 하니 모두 백성들이 직접 뽑는다고 하지
  하다 못해 고을 현감까지 백성이 뽑는다니
  아직 줄 사람은 많이 남았는데 자리가 없는지라
  승지에게 물으니 그저 황송하옵니다만 연발하는데
  점점 상황은 공주에게 안 좋게 되가는 거라
  먼 남쪽 바다에서 배가 빠진 뒤
  배 한 번 타보지도 못한 자가 해경 책임자를 했다는 등
  그런데 그가 누구 연줄이었다는 등
  낙하산이 문제였다는 말이 나왔것다
  공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낙하산을 근절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아뿔싸 아직 보은을 못한 사람이 많이 남았는데도
  덜컥 그리 발표해 버리니 어찌해야 할꼬
  그 중 한 사람이 있었으니
  8순이 된 광대 하나가 공주 임금 되라고
  이른바 공주 캠프에서 열심히 뛰었다는데 
  공주가 이 사람만큼은 꼭 한 자리 주겠다고 했것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 이리저리 살피다가
  예조가 관리하는 관광공사라는 데 감사 자리가 있어
  거기에 앉히기로 작정을 했는데
  이건 또 뭔가 예조 판서란 자가 반대하고 나서는 거라
  이 자는 그런대로 능력이 있어 데려다 쓴 건데
  너무 눈치없이 나대는 것이 흠이라면 흠
  공주가 지시내린 광대들 살생부 만들 때도
  협조적이지 않은 벼슬아치들 모가지 날리라 했더니
  그러시면 안 된다고 반대하고 나선 적도 있었것다
  늙은 도승지를 시켜 쓸데없는 짓 한다고 질책을 했더니
  그만 사표를 내고 판서 자리를 그만두었던 거라
  또 하나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공주를 꾸준히 도와온 고향 선비가 하나 있었것다
  이번에는 도승지가 기막힌 안이 있다면서
  요즘은 피아르 시대라 나라도 피아르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는 기구의 대장이 비어 있다는 거라
  그래서 그 자리에 앉히기로 했는데
  인사 검증 담당 승지에게 물으니
  그 자는 의금부의 세작으로 움직였다는 말이 있다는 거라
  이 말을 듣자마자 늙은 도승지가 나서서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부왕께서도 그런 경력이 있으셨다면서
  역적을 소탕하려면 그런 일도 해야 한다는 거라
  이 대목에서 공주의 눈썹이 치켜 세워졌다
  부왕이 어째요? 부왕이 세작이었단 말이요?
  도승지 잠시 주춤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말하길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부왕께서는
  목표를 위해서는 어떠한 것도 서슴지 않으시고
  안 되면 되게 하라를 좌우명으로 삼고 사셨사온 바
  오늘날 만백성이 우러르는 성군으로 기억되는 것이옵니다
  이럴 때면 도승지가 무섭기도 하다.
  부왕을 들먹여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그렇지. 안 되면 되게 하라
  문득 낙하산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부터 그려 오던 낙하산
  그런데 앞에 두 사람은 스몰 낙하산에 불과한지라
  진짜 빅 낙하산이 있었으니
  이건 역시 순살이 물고 왔것다
  순살 마마 입시오 하고 내시가 알리는 소리
  순살은 궁궐 문도 검문 없이 통과하는데
  뿐만 아니라 주사 아줌마, 기 치료 아줌마
  푸닥거리 하는 아줌마 아니 무당 
  먼 나라에서 말장수 하는 이방인까지 데리고
  수문장의 검문 없이 통과하는 인물
  이 날도 당당하게 공주 앞에 나타나
  폐하 순살 문안드리옵니다
  기체후 일향 만강하시옵니까 하고
  일단 인사를 드렸것다
  주위 내시 궁녀를 물린 뒤
  언냐 언냐가 할 일이 하나 있쩌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갑자기 언니로 변하는데
  그리고 혀 짧은 소리가 나오면
  뭔가 쩐과 관련되는 일을 말할 때렷다
  공주 그걸 다 알고 있지만
  주머닛돈이 쌈짓돈이요
  순살돈이 공주돈이라
  뭔가 궁금하여 어서 빨리 말하라 재촉했것다
  이번에는 빅 낙하산 하나 떨어뜨려봐
  무슨 낙하산인고
  저기 멀리 뱃길 따라 죽 가면 따뜻한 나라가 있어요
  혹시 미안미안이라는 나라 들어봤어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기는 한데
  맞다 그 나라에 여성 지도자가 있다고 했다
  공주가 왕이 되려고 하자 그 사람과 비교되었지
  그런데 그 사람 아버지는 독립투사였다지
  공주의 부왕은 점령국인 섬나라 오랑캐 군대 장교였고
  그런 말들을 씨부리는 놈들 바람에 김샌 기억이 있다
  그 나라가 어쨌단 말이냐
  그 나라가 예전에는 그런대로 살았는데
  지금은 어지간히 못 살거든
  그 나라에 원조를 해주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다음은 다 아시잖아
  그런데 그게 낙하산과 무슨 관계냐
  아 거기 대사라는 자가 있는데
  이 사업이 수익성이 없다는 등 하면서
  영 트릿하게 나오는 거예요
  그 자를 잘라내고 다른 사람을 꽂읍시다
  꽂을 사람은 누군데
  덕국에서 거상 밑에 일하던 사람인데
  나하고 아주 아삼육이에요
  외교관 경력은 있나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장사 잘 하고 말 잘 들으면 되지
  그 나라에는 좀 살아봤고?
  그것도 무슨 소용이에요
  공주도 이쯤 되면 약간 우려스러운지라
  인사 담당 승지에게 물어 보니
  순살과 벌써 이야기가 다 되었던 모양
  그런데 그 나라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거라
  내시가 슬쩍 쪽지를 건네주는데 보니
  아마 국내외에서 낙하산이라고 비난이 많을 거라고 한다
  그것도 낙하산인가 공주는 갑자기 황홀해졌다
  낙하산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얼마나 좋은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낙하산
  그런데 내시가 또 쪽지를 주어서 초를 친다
  멀쩡한 대사를 내쫓고 내리 꽂아야 하니
  이건 단순한 낙하산이 아니라
  요인 제거하고 낙하산을 내려 꽂는 것이란다
  전하가 그런 것을 코드 인사라고 비판했다면서
  유생들이 말이 많을 거라고 한다
  순살 코드 인사라고 비판하는 놈들 없을까 
  그러자 순살이 무서운 눈빛으로 공주를 쏘아 보며
  폐하 심기를 굳건히 하시옵소서
  그런 놈들을 무서워해서야 어찌 이 험난한 시국을 헤쳐나가시겠사옵니까
  네가 하면 코드 인사 내가 하면 국정 철학 공유자란 말도 있사옵니다.
  폐하의 숭고하신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자라면
  전문성이든 도덕성이든 다 소용없는 것이옵니다
  역시 순살은 보통 아줌마는 아니렷다
  그런데 멀쩡한 대사를 쫓아내야 하니 그것도 좀
  언니야 왜 그리 소심해졌어 병든 소 승지는 뭐에 쓰려고
  사실 그랬다 병든 소 승지가 하나 둘 쫓아낸 게 아닌데
  언제나 그랬듯 순살의 말에 따라 낙하산을 꽂은 공주
  멀쩡한 대사를 이리저리 엮어서
  다른 나라 대사들까지 한꺼번에 갈아치웠것다
  영문도 모른 채 그만두게 된 대사도 여럿 되었는데
  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채 넘어가는 듯하여서
  오랜 숙제를 해결한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상에 올랐는데
  저게 무엇인가 창밖을 보라
  대궐 뜨락에 새까맣게 떨어지는 낙하산
  그런데 검은 베레가 아니라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배가 침몰해 바다에 빠져 죽은 애들의 애미, 애비들 아닌가
  대궐 앞 길가에 천막 치고 죽치던 자들 아닌가
  주말이면 촛불 든 개 돼지에 앞장서서 쳐들어 오는 자들 아닌가
  꿈에 볼까 두려운 그들이 낙하산 타고 대궐로 들어오다니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소리쳐도 소리가 나지를 않는데
  이번에는 또 촛불을 든 개 돼지들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이것들이 이제는 걸어서 못 들어오니까 낙하산 타고 들어온단 말이더냐
  내시 내시는 어디 갔느냐
  도승지는 어디 갔소
  어영대장은 무엇 하는 거요
  순살 순살은 어디 갔느냐
  아무리 불러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아무도 대답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창 밖만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데
  이건 또 웬일인가 마침내 용상까지 낙하산 타고 누군가 내려온다.
  이건 아닌데 이건 진짜 아닌데
  역모다 모반이다 반역이다 안 나오는 목소리로 외치다가
  다급한 김에 베개를 낙하산 삼아 등에 지고 뛰어내렸는데
  쿵 하는 소리에 침상 밑으로 떨어지면서 소리를 질렀다지
  부왕을 불렀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내를 불렀다고도 하던데
  그야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눈을 떠보니 머리가 찧어서 아프기는 해도 아직 궁궐에 있구나
  살을 꼬집어 꿈인지 생신지 봤다는데
  옛날에 옛날에 아주 먼 나라에 있었던 일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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