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힘 있는 자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이 타령이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공주는 요즘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한다.
왕권이 정지된 상황에서 잠이 올 리가 있겠냐마는
사실 이전에도 공주는 밤에 제대로 못 자고는
한낮이 다 되어서야 일어난 일도 많았다.
그래서 승지들이나 내시들, 궁녀들이 말하기를
지진이 나도 공주를 깨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데
지금은 진짜 생각할 것도 많고 화 나는 일도 많으니
공주 어찌 잠을 이루겠는가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공주가 잠을 못 이루며 나랏일을 고민한다고
승지 중 누군가가 유생들에게 슬쩍 흘렸것다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까지 흘리며 꺽꺽 울어대는 자가 있었으니
그런 사람을 일컬어 간신이라는 사람도 있고
만고충신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허긴 간신과 충신은 자고로 보기 나름이라.
근데 공주는 그때 왜 잠을 못 이루었던 걸까
누군가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공주라고 그런 사람이 없겠는가마는
그렇다고 잠을 못 이룰 성격은 아닐 터
그리고 공주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이 아닌 저 영계에 가 있다는 분
그러니 잠못 이룬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 당시 찜통더위 열대야가 연일 지속되었는데
그래서 잠 못 이룬 것이었을까
사람 몸집보다 더 큰 부채 들고 시녀가 서 있고
에어컨까지 빵빵 틀어대는 구중궁궐에서
더워서 잠 못 자다니 누구 죽일 소리인가
그렇다고 누진제를 적용해서 전기요금 더 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잠 못 이룰까
공주는 자랄 때부터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
부왕만 빼고는 아무의 말도 듣지 않았단다
부왕조차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공주의 뜻을 꺾지 못했다는데
궁중에 드나들던 마법사 일이 바로 그것
그런데 요즘 공주는 뭔가 이상하다고 여긴다
공주가 왕좌에 오를 때 부정이니 뭐니 하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지리라 생각했고
먼 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아그들이 죽을 때도
가서 슬픈 표정만 지어도 감지덕지일 줄 알았는데
이건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드세지는 백성들
누구 말을 듣고 아라비아의 테러를 핑계로
테러방지법인지 뭔지를 만들었는데
고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고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공주
총선만 치르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 이런 일이 있는가 공주네 붕당이 지고 만 것이다
정말 잠이 안 올 수밖에 없는 일
그런 와중에 공주네 붕당 대표를 뽑는다고 해서
공주가 나서서 힘 좀 썼것다
공주를 위한다지만 사실은 반대를 하는 놈들이
하나로 뭉쳐서 떠들어 쌓는데
공주의 내시를 자처하고 나선 인물이 있었것다
공주님 잠못 이루신다고 꺽꺽대던 바로 그 인간
사실 근본이 천하다 하여 공주는 이 인간을 별로 안 좋아했지만
이 인간이 공주 맘에 드는 일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닌 거라
이 인간 왈 보잘것없는 자기를 공주가 선택해 줘서
여기까지 왔단다 지가 보잘것없는지 알기는 아는 모양
이 인간이 승지를 한 적도 있는데
남쪽 바다에서 배가 빠져서 아그들이 죽었을 때
이 인간 나서서 방송국에 전화해서 조용히 해달라고
그것 때문에 한창 난리가 났지만 공주 마음에 들어선지
이 인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떠들고 다니더니
공주 덕을 보았는지 어떤지 대표가 되었것다
공주 아직도 자기 힘이 있다 여겨 정말 기뻤는데
그 날도 역시 잠을 못 이뤘다 너무 너무 좋아서
그런데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주의 승지 하나이 입길에 오른 거라
소가 병 들었는지 병든 소인지 하는 승지라
이 승지로 말할 것 같으면 보통 승지와는 다른데
이전에 늙은 도승지가 있었고 문고리 잡은 승지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공주의 남자라면 단연 이 승지인데
그가 하는 일이 의금부, 포도청 등을 관리하는 일
지 아들이 포졸로 군역을 하는데 좋은 자리를 주라고 했것다
그게 아니면 포도청에서 알아서 긴 것인지도 모르는데
이 승지 처가가 아흔 아홉칸도 넘는 재산을 가진 부자라
처가가 하는 장사를 이용해서 땅도 사고 팔고
자동차도 굴리고 돈도 이리저리 빼돌렸다는데
이런 말들이 떠돌아다니자 특별 감찰이라는 게 시작됐것다
이 특별 감찰이라는 것이 바로 공주가 만든 것
종실 사람들이나 왕의 측근들 비리를 조사한다는데
공주는 자기 주변에는 조사받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공주 특유의 황당한 착각을 하고는
이것을 왕이 될 때 내걸기도 했것다
사실 공주가 착각을 한 것은 자기 주변이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연관된 것을 감히 조사하겠는가
눈치껏 변죽만 울리리라 여겼던 것
이 승지의 처가와 순살이 깊은 연관이 있는데
순살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는 터
그래서 의금부, 포도청 관리하는 막강한 자리를 준 것
병든 소 승지의 힘이 너무 막강했다 여겼는지
특별 감찰을 했다는 벼슬아치가 슬그머니
조사 내용을 삐딱한 신문에 알렸다고 하니
공주 분노가 이만 저만이 아닐 판
당장 그 놈을 잡아들여서 물고를 내라고 했는데
승지 내시들이 그건 안 된다고 하면서
일단 엄포만 놓자고 하니 공주 간신히 참았것다
이래 저래 잠 안 오는 일만 생기는구나
잠 안 오는 김에 텔레비전이란 걸 틀어 보니
지구 반대편에서 올림픽이란 것을 한다는데
금메달이라도 많이 따면 공주 그걸로 폼 좀 잡으려 했는데
웬걸 그 성적조차 좋지 않구나
그러고는 가을이 되더니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
공주가 상왕이 되어 길이 누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것다
순살이 잡혀가고 공주의 왕권이 정지되고
공주네 붕당에서 비공주파라는 놈들이 탈당을 하더니
드디어 늙은 도승지와 공주가 예뻐하는 여자 판서가 잡혀갔다
늙은 도승지야 만천하가 아는 사람
부왕 때문에 충성을 바쳤다고 하지만 누릴 것도 다 누린 노회한 인간
그 인간만 보면 흐뭇하다가도 무서워졌는데
이제 공주가 예뻐하는 여자 판서 야그를 해보자
공주는 조금 예뻐 보이는 여자를 무지무지 싫어한다
이 세상에 자기보다 예쁜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라
한번은 거부의 마눌과 먼 나라에 갔는데
그곳 귀족들이 그 거부의 마눌에게만 관심을 쏟아서
너무 열 받아서 돌아와 손 좀 봐준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 판서는 공주 앞에 오면서
어쩌면 그리 고우십니까 전하 이러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대가 더 고우네 난 이젠 늙었어
하긴 공주야 이제 할머니가 되도 한참 될 나이
아니옵니다 전하의 미모에 비하면 저는 호박꽃에 지나지 않지요
공주 그 말에 그냥 흐뭇해져서 침도 맞고 약도 먹고
야매란 야매 다 불러서 얼굴을 주물러 터뜨렸것다
그리고는 가끔씩 그 여자 판서를 불러서 얼굴을 보이면
깜짝 놀란 듯이 웃으며 공주더러 양귀비가 현신한 거라나
아니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를 합한 것 같단다
으아 너무 너무 좋아서 당장 판서를 시켰것다
그리고 승지도 시키고 다시 판서도 시키니
그 여자 판서 신기록을 몇 개씩 세우며 좋아라 했는데
늙은 도승지와 더불어 블랙리스트 만들었다고 의금부에 갇혔더라
아아 이제 공주는 어찌 될 것인가
공주를 왕위에서 내쫓는 재판이 진행 중인데
물러설 공주가 아니었다
무조건 오리발 아니면 방해 공작을 생각하는데
공주의 닭머리로는 뭐가 잘 안 떠오르는구나
지연 작전을 쓰라고 새끼 마법사가 전통을 넣어서
그걸 하면서 버텨 나가려니 잠이 안 올 수밖에
올 겨울 들어 최강 한파라는 밤을 꼬박 새우고
해가 중천에 뜰 때 부스스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켜니
웬 아줌마가 옥리들한테 끌려 나오면서 소리 소리 지르고 있더라
이게 누구인가 순살이 아닌가 아 보고 싶은 순살
그런데 순살을 보자 공주 갑자기 잊어버렸던 것이 생각났다
새끼 마법사인지 병든 소 승지인지 누군가가
공주에게 오늘 뭐를 하라고 했는데 그게 가물가물
내시를 불러서 물으니 기자를 만나는 일이란다
기자회견은 공주가 싫어하는 것
이것들이 옛날과 달라서 갑자기 뭘 물어 보니
공주 뭘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때로는 잘못 말해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터
그런데 내시가 걱정 마시란다
오늘 기자를 만나는 일은 인터뷰라고 하는 것으로
아무도 몰라 텔레비전의 기자가 한 명 와서
물어볼 것도 미리 알려주고 뭐라고 말할지도 다 알려준단다
그렇지 그렇지 바로 그거다 역시 새끼 마법사는 똑똑하다
그리하여 밤중에 그 기자와 만나 인터뷰라는 것을 했는데
간만에 하고 싶은 말 다하니 속이 시원한지라
한숨 푹 자야지 했는데 오늘도 잠이 안 오네
아직도 긴 밤이라 새벽이 되어도 캄캄한 창문 밖을 보니
궐문 앞에 웬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다
화들짝 놀라서 토요일이면 몰려오던 개 돼지들이
이제는 평일에도 몰려 왔는가 싶어 불안 불안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백미터 앞이 아니라
궐 안에까지 들어온 듯하여 내시를 불러 물으니
잠 못 드는 공주님 안부 물으러 왔단다
그렇다면 공주님을 사랑하는 모임의 할배 할매인가
오늘 인터뷰에서 칭찬 좀 해줬더니 그새 몰려 왔는가 보다
요즘 그들이 여기저기서 개 돼지들과 맞서 싸운다고 하던데
하긴 그들도 개 돼지는 매한자기이기는 하다마는
그런데 내시 말이 그들이 아니고 그냥 백성이란다
백성들이 이 새벽에 왜 왔을꼬 하고 의심도 들었지만
아무튼 기특도 하구나 그래 고맙다고 전하여라 하면서
아직 자기 인기가 살아있음을 실감하고 흐뭇했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잠못 드는 공주 어서 주무시라고
수면제 한 알씩을 드시라고 가져 왔단다
그렇다고 저리 많이 올 필요는 없다고
몇 알만 받고 돌려들 보내라고 하니
기어이 모두 주어야 한다고 안 간단다
궐문 앞에서 백성들이 소리쳐 하는 말
오늘 밤도 주무시고 내일 낮도 주무시고
내일 밤도 주무시고 모레 아침도 주무시고
주무시고 주무시고 주무시고 주무시고
그대로 주무신 채로 궐밖으로 나가셔서
의금부로 직행하시는 것이 백성들 소원이라고
그래야 태평성대라고 했다는데
이 말을 들은 공주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 뒤 공주는 잠을 잘 잤을까 여전히 잠 못 이룰까
믿거나 말거나 아주 먼 나라의 오래 된 이야기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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