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공이 되라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실하다(임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유토피아가 들어있지 않은 세계지도는 들여다 볼 가치가 없다.”

 우리는 항상 ‘다른 곳’을 향한 꿈을 꾼다.

 그래서 항상 ‘지금 이 곳’을 떠난다.

 평생 방랑하다 한 생(生)을 끝낸다.

 죽을 때 얼마나 슬플 것인가!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며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하고 노래한 백석 시인.

 백석 시인은 한 평생 나타샤를 찾아 헤맸다.

 오늘 같이 하얀 눈이 온 세상을 가득 덮은 날은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속으로 조용히 읊조리게 된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없는(u) 땅(topia)’이다. 

 그럼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 말아야 할까?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인간의 꿈을 담는 공간을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말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말 그대로 ‘다른(hetero) 땅(topia)’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곳이다.

 부모님의 영(令)이 미치지 않는 곳.

 나만의 꿈이 펼쳐지는 세상.  

 또한 수호지의 ‘양산박’ 같은 곳이다.

 절대군주 천자의 통치와 관료, 귀족들의 횡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

 그야말로 ‘인의(仁義)’가 살아 있는 곳이다.

 소설가 홍명희도 ‘임꺽정’을 쓰며 일제에 강점당하지 않은 세상 ‘청석골’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임꺽정’을 다 읽은 날 그 자리에 오래도록 붙박혀 있었다.

 ‘아, 좋다! 이 땅이...... ’

 그야말로 ‘법열’에 젖었었다.

 이 땅엔 주말마다 다른 세상이 열린다.

 ‘광화문’에서 뻗어 나오는 촛불 빛이 온 세상을 다 밝힌다.

 꽁 꽁 언 세상을 다 녹인다.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이 땅에 다시 진실이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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