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힘 있는 자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이 타령이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와 복면

  공주는 요즘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임금 권한이 정지되어 있으니 할 일이 있나.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폼 잡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런 일을 못 하게 되어 버렸다.
  순살이라도 있어야 같이 수다라도 떠는데
  그럴 사람도 없다.
  승지 하나가 공주더러 책을 읽으라고 주고는
  유생들한테 공주는 요새 책 읽으며 소일한다고 했다는데
  사실 책이라는 것은 공주와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것
  그것만 쳐다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한데
  그걸 읽고 시간을 보낼 수가 있겠나.
  그런데 토요일만 되면 공주가 심심할 일이 없다.
  공주 눈에는 개 돼지인 것들이
  촛불을 들고 대궐 100미터 앞까지 와서
  공주더러 하야 하라고 외쳐 대니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무서워졌다가 했는데
  해가 바뀌고 추워지면서 슬슬
  호기심도 생겨나는 것이었다.
  승지나 내시한테 미행 한 번 해보자고 하니
  펄쩍 뛰는 것이었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시어야 합니다.
  그래서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는 거라
  갑자기 복면 생각이 나서 내시에게
  복면을 쓰고 나가면 어떠냐 하고 해보니
  내시가 그저 자기를 죽이고 가시옵소서 라고만 하는구나
  사실 공주는 어릴 때부터 복면을 싫어했다.
  복면이라고 하면 ‘오페라의 유령’처럼 나쁜 사람들이 쓰는 것 아닌가
  하지만 복면을 쓰는 사람 중에는 일지매도 있고, 각시탈도 있는데
  사람들이 이들은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공주는 이들도 싫어한다
  일지매는 의적이라고 하는데 도둑이면 도둑이지 뭔 말라죽은 의적이냐
  사람은 다 지 타고난 복과 노력으로 살아가는 건데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열심히 노력하여 모은 재산을
  왜 빼앗아 가지고 게으르고 가난한 놈들에게 준다는 것이냐
  그게 강도지 다른 게 강도냐
  어려서부터 부왕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이야기다.
  그래서 공주는 일지매만이 아니라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이라는 자들을 다 싫어하는데
  각시탈도 역시 싫어한다
  각시탈을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히 말하기 그런데
  아무튼 독립운동이니 하던 것들
  다 배가 불렀거나 아니면 뭘 모르는 놈들이 하던 것이라고
  부왕에게 누누이 들어왔던 터
  그런 까닭으로 복면을 싫어했지만
  기실 공주는 복면을 쓰나 안 쓰나 마찬가지이다.
  어려서부터 이리저리 바꾸는 얼굴을 부왕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낮에는 막걸리 마시다 밤에는 시바스리걸을 먹고
  청렴결백한 얼굴로 근엄하게 있으면서 궁궐에 비밀금고를 두고
  그렇게 살아온 부왕
  공주가 감정을 민낯으로 드러내면 호통을 쳤다
  반백년 넘게 그렇게 살아온 실력으로
  남쪽 먼 바다에 배가 빠졌을 때
  재빨리 달려가서 슬픈 표정을 짓고
  백성들 앞에서 눈물방울까지 보였었다.
  아! 그런데 그게 안 통하는구나.
  이것들이 배가 침몰할 때 어디 가서 무엇했냐고 난리가 아니냐.
  이렇듯 이러저러한 이유로 공주는 복면을 싫어하지만
  진짜 싫어하는 까닭은 또 다른 데 있었다.
  공주가 왕이 된 뒤 뭐 되는 일이 없었다
  공주더러 부정하게 왕이 됐다고 떠드는 놈들이 있고
  남쪽 먼 바다에서 배가 침몰한 일은
  결국 오늘 공주의 왕권이 정지되는 원인이 되었것다.
  뿐만이 아니었다. 전염병이 도는데 걷잡을 수가 없었고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만 갔다
  퇴임 뒤를 생각해서 돈도 모아야 하는데
  이건 뭐 당장 쓸 돈도 거두어들이지 못할 판인지라
  순살에게 물으니 거부들을 위해 법을 바꾸잔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쓰고
  아니 사실은 마음에 들고 고분고분한 사람은 쓴다는 것이다.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자르며
  이것도 사실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놈들을 자른다는 것이다.
  품삯을 나이가 들수록 깎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부자들이 마음껏 활개치는 세상
  그 세상에서는 얻어먹을 것도 많아질 것이렷다.
  그러면 천한 것들도 좋아라 할 것이라 여긴 공주
  자기도 진작 그렇게 됐어야 한다고 생각해 와서
  그 법을 만들라고 육조에 지시를 했건만
  웬 반대하는 놈들이 그리 많은지
  그 또한 원활하게 되지 않는구나
  그것 때문에 계속 심기가 불편해 있는 중에
  순살이 말하기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단다
  그리고 오늘의 문제는 역사를 잘못 배워서란다.
  바른 역사를 잘못 배워서 백성들 혼이 비정상이 된 것이란다.
  자기는 만백성의 어머니라고 날마다 다짐해온 공주
  여왕이 되길 간절히 원해서 됐는데
  되는 일이 없는 것은 바른 역사들을 못 배워서 그렇구나.
  역사책을 죄다 불태우고 새로 쓰는 것이다.
  아니 부왕 때 쓰던 역사책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다짐을 하고 새로운 역사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이 모든 것을 반대한다고 천한 것들이 만민공동회를 열었것다.
  이것들이 궁궐로 쳐들어온다기에 수레로 벽을 만들어 막았는데
  밧줄과 쇠파이프를 들고 수레를 뒤집으려 하는구나
  게다가 아 글씨 이 놈들이 복면을 쓰고 있더란다.
  화가 난 공주 어전회의에서 이제부터 복면 쓴 놈들 다 잡아들이라고 하면서
  아라비아의 도적떼들이 그러지 않냐고 말했것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럴 듯한 비유인 듯하여 흐뭇했는데
  아 그만 발음이 잘 안 돼서 아이에스라는 도적떼를
  알쓰라고 해서 백성들이 킥킥대고 흉을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 속이 시원해지나 보다 했는데
  복면 쓰는 것만으로는 잡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구나
  그것도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이 법도 반대편 붕당의 합의 없이는 만들기 어려울 터
  백성이 주인인 척해야 하는 세상 정말 힘들구나
  이래저래 속이 상한 공주 어전회의만 열면 성깔을 부렸것다
  그 뒤로 이리저리 하여 왕권이 정지된 공주
  웬일인지 지금은 자기도 복면 쓰고 한 번 나가보고잡은데
  드디어 결심한 공주 내시를 밀쳐 내고
  편전 바깥으로 뛰쳐 나갔것다
  내시와 근위병들이 화들짝 놀라서 따라 나오는데
  벌벌 떠는 내시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를 연발하는 거라
  이전 같으면 이 말이면 하던 것도 중단했던 공주
  몸매 관리라면 금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고
  그래서 몸매 관리를 도와주는 운동 조련사를 종3품까지 올려줬것다
  어디 그뿐인가 이 얼굴 이 피부 유지하느라
  전국 방방곡곡의 야매란 야매는 다 찾아서 궁궐로 들였는데
  하지만 계속 되는 헛발질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서 어차피 망가진 몸
  걱정말라고 한 뒤 복면을 그럴 듯한 것 잡아 쓰고
  순살이 드나들던 개구멍으로 슬며시 나가
  대궐 앞 100미터에서 하고 있는 만민공동회에 끼어 들었것다
  웬 고래 같은 것을 든 무리들도 있고
  저마다 촛불과 뭔가 쓴 것들을 들고 있는데
  으악 공주 하마터면 소리를 칠 뻔했다
  몇 년 동안 못 먹을 걸 자꾸 먹어서 그런지
  맞지 말아야 할 걸 주구장창 맞아서 그런지
  공주 요즘 자꾸 까먹는 버릇이 생겨서
  그게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남쪽 먼 바다에서 배가 빠졌을 때
  죽었다던 애들의 엄마 아빠라고 하는 자들
  이곳으로 몰려와서 한참 동안 있었지
  어디선가 봤었는데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웠었다
  그런데 그 자들이 지금 앞에 서 있는 것 아니냐
  다시 눈을 돌려 보니 공주 이름을 쓰고 즉각 퇴진하고 구속하라는데
  이건 또 뭐냐 공주가 틀림없는 인형이렷다
  늙은 도승지 병든 소 승지 그리고 거부들 모습도 보이는데
  이 모두 포승줄에 묶인 인형이 되어 있구나
  공주 기가 막혀서 큰 숨 한 번 몰아 쉬는데
  마이크 든 이가 소리치자 모두들 따라하는구나 
  노동개악을 저지하자 라고 하고
  역사 반란 중단하라고 하는데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주도 같이 해야 할 듯하여
  따라서 했더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라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공주는 즉각 퇴진하라
  공주를 즉각 구속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재벌 총수 구속하라
  이런 말들은 차마 따라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기만 하는데
  대궐은 너네 집이 아니고 역사는 너네 가족사가 아니다
  이런 글씨가 쓴 팻말을 들고 있는 처자도 있더라
  이게 무슨 말이냐고 내시에게 물으니
  황공하옵니다만 연발하것다
  그때 갑자기 마이크 잡은 자 하나이 큰 소리로
  여러분 백성을 너무 사랑하셔서
  이제 그만 일하고 언제든지 쉬게 만들어 주겠다는
  공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라고 하지 않는가
  공주님 이리 와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노동개악 중단하고, 역사반란도 포기한다 라고요
  또 즉각 퇴진해서 적폐를 청산할 수 있게 하겠다고요
  뇌물로 잡수신 것 다 토해 내겠다는 말씀도 빠뜨리지 말고요
  공주는 복면 쓰고 있는 자기를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했지만
  원체 사람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박수받기 좋아하는지라
  손을 번쩍 들고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갑자기 근위병들이 둘러싸면서
  전하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어서 바삐 피하시옵소서
  이러는 것이 아니냐
  그러더니 갑자기 군중들이 험악해지면서
  공주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세 번 외치더니 몰려오는데
  놀란 공주 마구 소리쳤것다
  물대포는 어딨느냐 최루탄은 어디 갔냐
  사과탄 지랄탄은 다 무엇에 쓰고 있단 말이더냐
  그러면서 도망치다가 답답해서 복면을 벗으려고 했는데
  그만 안 벗겨지는 복면 때문에 얼굴을 죄다 뜯어 놓고는
  그 때문에 궁궐에서도 복면 쓰고 있게 되었다는데
  그때 군중 속에서 나온 말이
  복면이나 민낯이나 그게 그거이니 써 봤자 아니겠어
  이런 말을 공주가 들었는지는 모르겠고
  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나도 진작에 공주인지 알아 봤지
  복면 밑에 턱 있는 데 바늘 자국이 있잖아
  아 지워지지 않는 바늘 자국이여
  공주가 무사히 대궐로 다시 들어갔는지
  백성들에게 잡혀 의금부로 끌려갔는지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데
  아무튼 아주 오래 된 옛날에
  아주 머나먼 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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