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힘 있는 자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이 타령이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의 거울

  공주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갖고 있는 특수한 거울이 있었다.
  공주가 학생이던 시절로 가 보자
  어느 봄날 궁궐에 한 마법사가 찾아왔것다.
  부왕에게 초대받아 온 마법사가 마음에 들어
  공주는 따로 불러서 만나기를 여러 차례
  그에게서 거울 하나를 선물 받았다.
  마법사 말하기를 이 거울은 신기한 거울이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대답을 해준답니다
  공주가 하도 신기해서 한번 해봤것다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러니 아 글쎄 거울이 답하기를
  공주님이 이 나라에서 제일 예쁘시지요 하는 게 아닌가
  공주가 사실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오기는 했지만
  거울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들뜰 수밖에
  그런데 마법사가 없을 때 물으면 거울이 대답을 안 하는 거라
  자연히 공주가 마법사를 찾을 수밖에
  궁궐 출입이 잦아진 마법사, 주위의 눈총을 받았는데
  결국 궁궐 출입이 금지 되었것다
  부왕에게 가서 울고 불고 해도 부왕이 안 된다고 하면서
  하지만 마법사를 어떻게 하지는 않겠다는 약속만 받고 말았다
  마법사가 없으니 거울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어디 처박아 놓고 쓰지 않고 있었는데
  부왕이 공주보다 어린 여자 끼고 술 마시던 자리에서
  의금부 대장의 칼에 맞아 돌아가시고
  궁궐 밖으로 내처진 공주
  쓸쓸한 나날을 보내는데 웬 여인이 찾아 왔것다
  그 여인 왈 자기가 마법사의 딸이라나
  외로운 공주와 말벗이 된 그 여인 바로 순살이었다
  순살이 하루는 새끼 마법사를 데리고 왔는데
  자기 남편이니 말하자면 마법사의 사위였던 셈이라
  새끼 마법사도 마법사인 건 매한가지라
  자기 장인처럼 거울을 다룰 줄 알리라 믿고 한 번 해보라 하니
  새끼 마법사 왈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런데 거울이 대답하지 않는 거라
  새끼 마법사 당황하다가 낯빛을 바꾸더니
  예쁜 것보다는 진실한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긴 이제 이 나이에 제일 예쁘다고 해야 뭐하랴
  공주는 진실한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그럴 듯하여
  한 번 그래 보라고 했는데 아 글쎄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진실한 사람이 누구니 하니
  모르는 사람 얼굴만 잔뜩 나오는 거라
  가끔 어디서 본 듯한 얼굴도 있기는 있는데
  자세히는 생각 안 나도 공주가 싫어하는
  입바른 소리 잘 하는 무슨 신부, 목사, 승려
  그리고 부왕이 싫어하는 시만 쓰던 시인들이것다
  그때 새끼 마법사가 주문을 잘못 한 것 같다고 하면서
  거울아 거울아 공주님께 진실한 사람이 누구냐
  그렇게 말하면서 공주님께를 아주 작은 소리로 했는데도
  아 글쎄 거울에는 아무 사람도 안 나타나는 거라
  당황한 새끼 마법사 얼굴이 벌개지더니
  거울아 거울아 공주님께 진실하지 못한 놈이 누구냐
  이렇게 말하니 또 거울에 얼굴이 가득한 거라
  그런데 이게 웬 일이냐 나타나는 얼굴이 모두
  공주 앞에서 아부하는 공주네 붕당 유생들이것다
  이 놈들이 너무 많아서 세기조차 어려운 거라
  그래서 공주가 새끼 마법사에게 말하기를
  그럴 게 아니라 꼭 손 봐야 할 놈 딱 하나만 말하라 하시오
  이때부터 공주는 자기에게 진실하지 못한 불충한 인간을 가려내려고
  거울에게 물어 보았고 거울도 대답을 해주었다.
  그럭저럭 세월이 지나 여왕의 자리에 오른 공주
  새끼 마법사를 은밀히 가끔 만나면서 거울을 활용해 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거울이 공주에게 진실하다고 한 인간이
  공주가 대국에 갈 때 따라갔다가 젊은 처자를 희롱한 거라
  그리고는 헐레벌떡 혼자 본국으로 돌아왔다는데
  공주가 거울에 다시 물어 보아도
  분명히 공주에게만큼은 진실하다는 것이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비리 혐의를 받고 자살한 거부가 있었는데
  그 인간이 뇌물을 준 이름을 적어 놓은 치부책을 남겨 놓았것다
  그런데 거기에 공주네 붕당, 그것도 공주파들만 주루룩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영의정
  부왕 때부터 충성을 바친다고 했던 늙은 도승지
  그 밖에도 이름이 나오는 인간마다 공주파였던 거라
  이를 어쩌나 하고 거울을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거울이 이렇게 공주에게 안 좋은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주네 붕당에서 유생 대표를 하던 인간이
  공주에게 진실하다 하여 오래 곁에 두었는데
  지가 좀 힘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어쨌는지
  공주의 말을 부정하면서 까불어 대서
  거울에게 물어보니 공주에게 진실하지 못하다는 거라
  공주가 배신자로 낙인찍고 쫓아 버린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새끼 마법사가 궁궐에 들어와서
  전하 주변만 보시지 말고 궐 밖으로 눈을 돌리시옵소서
  전하를 따르는 척하면서 흑심을 품는 자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전하가 망하기를 바라는 자들이 엄청나게 많사옵니다
  그런 자들을 색출하는 데 거울을 쓰셔야 할 것이옵니다
  공주는 부왕의 몰락을 봤고, 부왕이 하던 일도 보고 배운즉
  무슨 말을 하는 것인 줄 대번에 알아차렸것다
  거울아 거울아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자 누구냐 하라는 말이지
  역시 전하는 진정 부왕의 후계자이시옵니다
  그 말에 공주 흐뭇해져서 한 번 말해 봤것다
  거울아 거울아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인간이 누구냐
  아니 그런데 이 말을 하자 거울 속이 깜깜해지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뭔가 반짝이는 데 아니 이런
  야밤에 촛불 들고 육조 뜰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것다
  그런데 공주 눈에는 영락없는 개 돼지 들이렷다
  나를 망하라고 하는 건 개 돼지밖에 없구만
  새끼 마법사가 손뼉을 치며 바로 그렇사옵니다
  그러니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들을 잡아야지요
  이렇게 한번 물어보시지요
  거울아 거울아 내가 망하라고 하는 놈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놈들이 누구냐
  공주가 그렇게 해봤것다
  그런데 그것도 만만치 않은 수였다
  전하 이것을 도승지에게 주시어
  살생부를 작성하라고 하시옵소서
  도승지는 젊어서부터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나 있은즉
  명단을 잘 간추려서 정리해 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도승지를 불러서 하명을 했는데
  늙은 도승지가 가져온 살생부에는 세 부류가 있었것다
  당장 의금부에 잡아넣어야 할 레드 리스트
  이들에게 주던 지원을 끊고 압박을 주어야 할 블랙 리스트
  항상 의금부 관리들로 사찰하게 할 옐로우 리스트
  공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망하라고 개 돼지를 조종하는 놈들한테
  무슨 지원을 했기에 그것을 끊는다는 말이요
  전하께서 문화를 융성하게 하신다고 하여
  환쟁이 풍각쟁이 글쟁이 소리꾼 들에게 돈냥을 푸셨는데
  이 자들이 은혜도 모르고 전하와 부왕을 조롱하고 있사옵니다
  조롱 조롱이라고 했소 이 놈들을 당장 잡아들이시오
  전하 그러기에는 그런 놈들이 너무 많사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백성이 주인인 척 해야 하는 세상인지라
  눈에 안 띄게 시나브로 이들을 처단하셔야 하옵니다 
  으아 이런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있는가
  공주를 조롱하는 자들을 목멱산 지하 감방에 데리고 가서
  코떨도 뽑고 고춧가루도 멕이고 전기고문도 해야 하는데
  그걸 그냥 두고 보면서 돈냥이나 주던 걸 끊으라니
  하지만 백성이 주인인 척 하는 세상이라니 참을 수밖에
  임금 권한이 정지된 지금 공주 가만 생각해 보면
  그때 도승지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군대라도 동원해서 이 놈들을 모조리 물고를 낼 일이었다
  지금도 군대를 동원하라고 시위하는 할배 할매들도 있다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는 어쩐단 말이냐 손봐줄 놈이 산처럼 많으니
  순살은 의금부에 갇혀 있으니 묘수를 물어 볼 수도 없고
  꿩 대신 닭이라 하지만 늙은 도승지도 제 코가 석 자라는데
  또 다른 닭이 있기는 있것다 닭이라 불리던 공주
  그러나 그 머리에서 사실 뭐 나올 게 있겠는가
  아 그러던 중 내시 하나이 다가와서 은밀히 하는 말
  전하 이럴 때 새끼 마법사에게 묘수를 들으시옵소서
  아 내가 왜 새끼 마법사를 잊고 있었단 말이냐
  이럴 때면 공주 스스로도 닭이라 불릴 만하다고 생각했다가도
  아니지 아니야 내가 누군데 그까짓 것들이야 다 나를 위해 있는 법
  내시를 보내서 새끼 마법사에게서 이 난국을 타개할 수를 듣고 왔는데
  새끼 마법사가 몇 자 적은 것과 포장된 작은 상자를 보냈것다
  상자를 열어 보니 아 반가운 거울이 아니더냐
  그 동안 내가 왜 이 거울을 찾지 않았던가
  하긴 순살도 늙은 도승지도 이 거울을 싫어했었지
  새끼 마법사가 쓴 글을 보니 바로 이러했것다
  전하 거울을 향하여 이렇게 외치시옵소서
  거울아 거울아 나를 살리려면 누구를 처단해야 하느냐
  그리한 뒤 무술하는 호위 군관을 자객으로 보내시면 되옵니다
  공주가 그 말을 듣고 거울에게 물었것다
  거울아 거울아 나를 살리려면 누구를 처단해야 하느냐
  그런데 거울이 대답이 없는 거라
  그러다가 거울 속에 또 수많은 사람이 나오는 거라
  화가 머리끝까지 난 공주 거울을 패대기 치려다가
  이것밖에는 잡을 줄이 없어 다시 또 다시 외쳤는데
  그러다가 한번은 나를을 나라를로 잘못 말했것다
  거울아 거울아 나라를 살리려면 누구를 처단해야 하느냐
  아 그랬더니 거울이 반응이 달라지기는 하는데
  앞면이 흐려지면서 땀을 비질비질 흘리는 거라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아서 애간장 타는데
  그 인간 하나만 말을 해다오 하나만 제발 말을 해다오
  거울아 거울아 딱 하나만 처단할 인간을 말해 다오
  공주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울부짖듯 말을 했것다
  거울아, 거울아...
  거울이 응답을 하려는지 마구 흔들리고
  거울 잡은 공주 손도 함께 와들와들 떨렸는데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공주가 눈을 살며시 뜨고 거울을 쳐다 보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질렀것다
  궁녀들이 달려오고 내시가 달려오고 승지들도 달려오고
  저게 누구냐 저게 누구냐
  거울 속에서 싸늘하게 웃는 사람
  아아, 그 사람은 바로 공주 자신이었던 것이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공주가 거울을 내팽개치고는
  궁을 돌아다니며 기괴한 웃음을 웃었다는 말도 있고
  사흘 밤낮을 울고 의금부로 끌려 갔다는 말도 있고
  거울이 대답해 준 대로 되었다는 말도 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아주 오래 된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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