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힘 있는 자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이 타령이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와 순살

한 사람의 일생에 누구를 만나냐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
공주가 순살을 만나지 않았으면 요모양 요꼴이 되지 않았겠지만
어찌 보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이나 보았을지 모를 일
하긴 사가에서 보나 궁궐에서 보나 그게 그거라는 말도 있긴 하더만
어쨌든 그래도 왕관을 썼으니 예사 인연은 아닐 듯
어느날 꿈같이 그 분을 만나 여왕이 되리라 예언을 들었고
그 분의 딸인 순살을 만나서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그 야그를 한 번 해보자
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순살을 좋아했다
골육상쟁인 것 같아 닭고기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순살만 있으면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었다
어렸을 때는 모후께서 직접 순살을 발라주셨는데
닭고기 먹을 때마다 공주가 순살은요 라고 해서
한때 모후는 공주를 우리 순살은요 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예 순살만 있는 치킨이 있으니
공주 그것만 생각하면 입이 헤 벌어질 정도였는데
부왕께서 공주보다 어린 여자와 술 마시며 놀다
의금부 대장의 칼에 맞아 돌아가신 뒤
공주는 궐 밖으로 내쳐지고는 칩거하게 되었것다
쓸쓸하고 분통 터지는 심정이야 이루 말로 다하랴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인이 찾아왔는데
공주가 잘 따르고 궁궐에 자주 드나들던 마법사의 딸인 거라
이전에도 보기는 여러 번 봤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이럴 때 찾아주니 의리는 있다고 여긴 공주에게
그 여인 양 손에 닭고기를 들고 내밀면서
제가 순살만 발라 왔습지요 공주님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아니 이런 센스쟁이가 있나 공주 그만 감동하여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허겁지겁 먹기만 했는데
이름을 묻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이름을 물으니
제 이름은 공주님 좋아하시는 순살이라고 하옵니다
순살 순살이라니 그런 이름도 있나
호호호 그런 이름이 있겠습니까마는
공주마마 원하시면 그리 불러 주시옵소서
그때부터 그 여인의 이름은 순살이 되었것다.
공주와 순살의 진짜 깊은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공주는 순살이 골라 주는 옷만 입었고
순살이 챙겨주는 음식만 먹었다
나이는 공주보다 아래인 순살이
어느 때는 엄마 같고 언니 같았는데
부왕이 거부들 손목 비틀어서 이래저래 긁어 모은 돈과
현찰로만 비밀금고에 남겨 둔 돈까지 해서
돈이라면 쓸데없을 정도로 많은 공주가
콩나물 값도 제대로 모르니 뭐하나 쓸 수가 있나
이럴 때 순살이 그 모든 것을 대신 써주었것다
그때부터 순살이 입는 옷도 달라지고
사는 집도 달라지고 타고 다니는 차도 달라졌건만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가 그걸 알 리가 있나
아니 알고 있어도 자기 말만 잘 들으면 그만인 공주
공주 말을 순살이 듣는 건지
순살이 말을 공주가 듣는 건지
도대체 헷갈리는 상황이기는 한데
공주는 그저 자기 떠받들어주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
부왕도 자기 부하들이 하루가 다르게 부자가 되어 가도
그걸 뭐라 그런 적은 공주가 본 적이 없는 터
어찌 보면 도둑질을 해도 함께 해서 공범이 되는 기분
그리하여 순살은 공주의 안팎 일을 맡아서 하다 보니
공주에게는 순살이 자기 시녀요 집사이고
순살에게는 공주가 말 잘 듣는 꼭두각시였것다
그러던 어느 날 순살이 공주에게 이제 밖에 나가 보시라고
나가서 원대한 꿈을 이루시라고 하니
공주 얼떨결에 부왕의 명예회복을 한답시고
백성들 앞으로 나왔것다
먼저 부왕의 고향으로 가니 열화와 같은 함성
우쭐해진 공주 이제 여왕이 되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그 분 순살의 아버지 말이 자꾸 떠올랐어라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공주가 마침내 여왕이 되던 날
공주 곁에서 그 순간을 함께 한 순살
식탁 위에 순살이요 소파에 앉은 순살이라
순살의 첫마디가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정승 판서에 내시 궁녀까지 다들 전하라고 부르는데
순살만은 그 뒤로도 꼭 폐하라고 하는 거라
이러니 공주가 순살을 안 좋아할 수가 있나
공주는 순살을 매일 매일 보고 싶었고
주말이면 궐에 들어와 승지들 집합시키고 회의를 하는데
공주더러는 오라는 말도 없이 순살이 진두지휘를 했다
공주는 오히려 맘 편하게 텔레비전 볼 수 있으니 좋아라 했는데
공주가 보기에는 순살이 공주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듯
요즘은 왕이 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시하에 다녀야 하는 해괴한 상황인지라
공주는 아주 어린 시절을 빼면 궁궐에서만 살아서
시장통을 다니면 냄새가 나서 못 견딜 지경
자연히 억지로 다니는 시늉만 해야 하니
그렇지 않아도 모르는 세상 물정 더욱 모르는데
순살이 세상일을 요것조것 다 알려 주었고
공주는 순살 말만 곧이곧대로 들었것다
그래서 공주는 순살이 원하는 거면 뭐든지 해주고 싶었것다
하루는 초상화 두 장을 가지고 와서는
아주 나쁜 놈들이니 당장 모가지를 치시라고
누구냐고 물으니 예조 참찬들이란다
순살의 딸 새끼 순살이 말을 좀 탔는데
말 타기 대회에 나가서 준우승인가 했다는 거라
준우승만 해도 얼마나 잘 한 것인가 그런데 순살은 그게 아닌 모양
순살은 당연히 우승이라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그 때문에 심판들이 포도청에 끌려가 조사까지 받으니
예조가 그것에 대해 감사를 했다는 것
그 감사가 마음에 들지 않은 순살
이 감사를 주도한 예조 참찬들을 찍은 것인데
순살이 찍고 공주가 그냥 믿으니 찍힌 사람만 죽어날 판
공주 그 길로 예조 판서를 불러서 이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모가지를 날리라고 하니 예조 판서가 어이없어 했지만
공주 앞에서 티내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
그 뒤로도 순살은 새끼 순살 말을 사달라고 하라고 하고
새끼 순살 친구 아빠가 작은 회사를 하는데
거부들한테 일감 주라고 하라고 하고
그것도 나중에 보니 순살이 명품 핸드백 시계 등을 받은 건데
공주는 아무말 않고 무조건 팔 걷어 붙이고 나섰다
거부들이 미적대면 호조 담당 승지와 함께 만나서
공주만의 레이저를 쏘아대며 공갈을 쳤던 것
그렇게 설치고 다니던 순살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
드디어 국정 농단이라는 말과 함께
외부로 행실이 퍼져 나갔것다
그러나 초점은 어디까지나 순살의 남편인 새끼 마법사와 십상시들
이때 나라가 발칵 뒤집혔지만 공주는 오로지 순살만 걱정
아침마다 내시와 승지를 보면
그런데 순살은요 라고 하는 말을 오랜만에 하기 시작했것다
다행히 순살은 그냥 넘어가는 듯했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다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
한 번은 승지 하나이 슬쩍 놓고 간 보고서에
이 나라 권력 서열 1위가 순살, 2위가 새끼 마법사, 3위가 새끼 순살
그리고 넷째가 공주라는 것이 아닌가
공주의 진노가 궁궐을 들었다 놓을 지경이 되었것다
이때는 이미 사람들 눈을 피해 궐을 드나들던 순살
개구멍으로 들어와서는 무릎을 꿇고
폐하 억울하옵니다 폐하와 저를 갈라 놓으려는 수작이옵니다
달구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공주 마음이 약해져서
이런 백성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다 개 돼지 같으니
그러고는 순살에 대한 무한애정은 지속되었것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순살이 한 건을 했다
공주의 상왕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며
재단인가 하는 것을 만들었는데
사실 공주도 원하는 바였으니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장안의 거부들 손목을 비틀어 무려 800억 냥을 모은 것
순살이 아무리 힘이 세도 거부들이 손목을 비틀리겠는가
공주의 뜻에 따르는 호조 담당 승지가 한몫 했다는데
공주가 만든 특별 감찰관이 이 냄새를 맡았것다
특별 감찰관이 뭐하는 사람이냐 하면
종실 사람들이나 왕의 측근들 비리를 조사하는 관리인데
공주는 자기 주변에는 조사받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공주 특유의 황당한 착각을 하고는
이것을 왕이 될 때 공약으로 내걸고는 처음 만들었것다
그런데 그 특별감찰관이 순살을 향해 칼끝을 겨누다니
공주 아침마다 승지 내시들에게 순살은요 라고 물었것다
처음에는 순살보다 공주 동생 문제가 불거지고
병든 소인지 소가 병든 건지 아무튼 실세라는 승지 문제가 불거지더니
마침내 순살이 만들었다는 거시기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 시작
그 날부터 공주는 순살 때문에 노심초사 하루가 여삼추였는데
순살이 문고리 잡고 있는 승지들을 통해 힌트를 주기를
특별감찰관이 조사 내용을 퍼뜨렸으니 의금부를 시켜 조사하라는 것
조사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그것을 퍼뜨린 것이 죄라는 것
그리하여 사표를 내게 만들어 버렸는데
그러던 어느 날 대형 폭탄이 터지고 말았것다
순살이 가지고 놀던 테블릿 피시라나 뭐라나 하는 것이
방송국을 하는 유생들 손으로 넘어갔다는 것
거기에 순살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야그들이 수두룩한데
공주가 한 연설을 순살이 만들었고 뜯어고치고
심지어 어전회의 승지회의 등도 다 순살 말대로 했다는데
이 일로 공주더러 하루 빨리 하야하라는 말들이 퍼지니
공주 화가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순살을 찾았것다
그때 순살은 먼 나라로 나가서
거부들에게 뜯은 돈으로 화려한 호텔이란 것을 짓고
거기서 새끼 순살 말 타는 것 보면서 즐기더라는데
공주 화가 나서 당장 순살을 들어오라고 했더니
역시 개구멍으로 들어온 순살
공주를 보자 허리는 굽혔으나 싸늘한 표정이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공주는 순살의 저 표정만 보면 오금이 저려 왔것다
공주도 한 레이저 하는데
왠지 순살만 보면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마냥 허둥지둥
순살이 달구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폐하 저는 오로지 폐하만을 위해 이리 했사옵니다
바다 건너 가도 다 폐하의 것이온즉
폐하와 저를 갈라 놓으려는 음모에 속지 마시옵소서
공주 그 말이 그럴 듯하여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시가 달려들어오면서 큰 일 났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 궐밖에 수없이 몰려 왔사옵니다
아니 누가 수없이 왔다는 말이냐
묻는 말에 답을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내시
공주가 궐 밖을 비치는 씨씨 티브이라냐 뭐라냐
그런 것을 들여다 보니 이런 개 돼지들이 아니더냐
공주 눈에는 영락없는 개 돼지들인데
그때 궁궐을 지키는 경호대장이 뛰어 들어오면서
전하 빨리 피하셔야겠사옵니다. 상황이 급하옵니다
도대체 저것들이 왜 몰려들었단 말이냐
자기들도 순살 맛 좀 보자고 달려들고 있사옵니다
순살 맛이라 공주와 순살의 눈이 마주쳤것다
별 수 없이 순살이 개 돼지들을 피해
드나들던 개구멍으로 빠져 나갔는데
아뿔싸 개 돼지 들이 개구멍을 미리 알고 지키고 있구나
아 둘러싼 개 돼지들을 보니 손에 손에 촛불을 들었네
뭐 저런 개 돼지 들이 다 있나
개구멍을 빠져 나간 순살은 개 돼지에 잡혀
한참을 끌려 다니다 의금부로 가서 갇히고
공주는 그 날부터 궁궐 밖으로는 못 나가고
의금부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아주 먼 옛날 먼 나라의 이야기.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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