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육성으로 발표했다. 양복 차림이 눈에 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언제나 늘 마음뿐이였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할 결심을 가다듬게 됩니다. 나는 (중략) 우리 인민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인민의 참된 충복,충실한 심부름군이 될것을 새해의 이 아침에 엄숙히 맹약하는바입니다.”

“인민의 충실한 심부름꾼 되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철저한 구현을 위해 노동당과 당원의 사업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다시 한 번 촉구했다. 그는 “전당에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혁명적 당풍을 세우기 위해 드세게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례적으로 “나는” 이라는 주어를 사용하며 ‘능력’, ‘자책’, ‘맹약’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발언을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거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와 관련,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신이 군림하지 않고 주민을 섬기는 수령, 즉 간부에게는 엄하고 백성에게는 관대한 리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간부와 주민을 분리해 대함으로써 주민의 정치적 동의를 얻으려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2년 공식 취임이후 지속적으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단호히 쳐야 할 주되는 투쟁대상”으로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세도와 관료주의는 김일성, 김정일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인데, 김정은시대에는 여기에 부정부패 문제가 추가돼 지난 5년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를 ‘주적’이라고까지 규정했다.

▲ 김정은 위원장은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와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인민대중 제일주의의 다른 측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해 5월 개최된 노동당 제7차대회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당이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투쟁하여 왔지만 그것이 아직도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며 “세도와 관료주의가 허용되고 용납되면 부정부패가 성행하고 전횡과 독단이 생겨나게 되며 그것이 쌓이면 반당의 싹이 자라게 된다"며 부정부패 근절 강도를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2013년 1월 노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를 열었고, 지난해 말에는 전당초급당위원장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김정일시대의 경제위기와 선군정치 과정에서 형성된 “일군(간부)의 관료화와 귀족화”를 근절하지 않고서는 체제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의 반영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은 한편으로는 ‘관료주의와 부정부패’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반증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을 전 사회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북한은 “민심을 틀어쥐고 나가야 한다”는 표현을 쓴다. 북한은 “민심을 틀어쥐고 나가는 것은 인민의 리익을 최우선, 절대시하고 당에 대한 인민의 지지와 신로를 높여 우리의 정치사상진지를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근본요구”(김용섭, 「민심은 일심단결의 천하지대본」 『근로자』 2016년 9월호)라고 설명한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여론을 반영해 민생정치를 해야 하며 그래야만 최고지도자와 노동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원들을 대상으로 ‘사상투쟁’과 ‘조직적 통제’를 강화하고, 당 간부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엄격한 당적 규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 내부와 외부가 생각하는 ‘민심’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한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민심’과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표방하고, 그를 위해 강력한 사회개혁을 거론하는 것은 북한이 개발과 대외개방으로 나가는데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압축적이고 평이한 내용

▲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36년만에 열린 제7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도 양복 차림으로 나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검은색 인민복이 아닌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착용하고 나왔다. 이례적으로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도 달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1일 새해 첫 행보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부인 리설주와 함께 참배할 때도 양복을 입었다. 북한사회가 ‘비상체제’에서 정상적인 ‘당·국가체제’로 복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27분간 진행된 신년사의 내용은 압축적이고 평이했다.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지난해 5월 7차당대회를 통해 장기적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에 신년사에는 올해 집중해야 할 사항만 압축적으로 담았다. 둘째로는 미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고 남쪽에 새로운 정부가 예견되는 대외변수로 인해 전반적으로 대외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신년사에서는 대외변수를 가급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지난해 당대회에서 정식화한 ‘자강력제일주의’에 기초해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자”를 핵심구호로 내세웠다. 올해가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에서 첫해인 만큼 “5개년전략수행의 확고한 전망을 열고 나라의 경제전반을 보다 높은 단계”에 올려 세우기 위해 경제건설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여러 차례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통해 국방력 강화에서 뚜렷한 성과를 냈다고 평가하고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갈수 있는 위력한 군사적담보가 마련”됐다고 거론한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국방 분야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만큼 올해는 상대적으로 뒤처진 경제건설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김정은 위원장은 '자력자강'을 강조하며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을 다그쳤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의 구체적인 경제과제로는 ‘원료와 연료, 설비 국산화’, ‘전력생산계획 수행’, ‘선진기술 도입을 통한 철생산원가 낮춤’, ‘기계공장 현대화’, ‘원료·자재 국산화’, ‘농업전선 다수확운동’, ‘동해안지구 어구생산기지 조성’ 등을 제시했다. 이러한 언급만으로는 5개년계획의 목표치와 올해 달성목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 내부문건을 통해 추정할 수는 있다.

“우리 당이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목표를 점령하면 주체104(2015)년에 비하여 경제의 모든 구조가 개선되고 주체성과 자립성이 더욱 강화되며 경제강국건설의 돌파구인 식량문제와 전기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주영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 과학적이며 현실적인 전략」 『근로자』 2016년 9월호)

북한이 2020년까지 식량과 전기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5개년 전략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식량과 전기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는 과거에 제시된 것 외에 특별한 방안이 제시돼 있지 않다.

북한은 지난해 일부 협동농장에서 식량생산계획을 초과달성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농사는 아직도 당이 바라는 높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해 내부적으로 식량 생산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했다(리재식, 「당의 농업정책관철에서 군당위원회가 힘을 넣은 문제」 『근로자』 2016년 8월호).

다만 포전담당제의 전반적 도입, 실적위주의 인사(예를 들어 안악군당위원회의 경우 부장과 부부장을 리당위원회 간부로 임명하거나 실적을 낸 기술간부를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등용하는 등 실적 위주의 인사를 통해 덕성협동농장 등에서 2배 이상의 수확량을 달성했다고 한다)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다.

지난해 북한이 식량을 비롯해 과일, 버섯, 채소생산과 수산업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

남북관계에서 ‘자주통일의 대통로’ 다시 언급

▲ 통상 ‘대통로’는 고위급회담이나 정상회담을 이야기할 때 사용됐다. 2015년 8월, 남북간 군사적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2+2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려 8.25합의를 도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신년사에서도 7.4공동성명 발표 40주년과 10.4선언 발표 1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거론하며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자주통일의 새시대"라고만 표현했다는 점에서 좀 더 진전된 언급을 내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통상 ‘대통로’는 고위급회담이나 정상회담을 이야기할 때 사용됐다. 물론 신년사에 고위급회담 등 새로운 제안은 담겨 있지 않다. 한미합동훈련 중단, 상대방을 자극하는 비방‧중상 중지, 무력증강 책동 중단 등 지난해와 거의 동일한 요구만 나열돼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당의 외곽기구로 알려져 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내각 산하로 옮겼고, 내각에 ‘민족화해교류협회’도 신설했다. 형식적으로 보면 내각 주도로 당국간 회담과 민간 교류를 진행하려는 준비작업을 마친 셈이다. 즉 어느 때 대화 카드를 내놓을 지, 성사가 될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내각의 공식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당국대화를 제의하고, 신설된 민족화해교류협회를 통해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북과 남사이의 첨예한 군사적충돌과 전쟁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통일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사이에 당국대화가 열리게 될 경우 정치,군사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남북간 당국대화 재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각 정당,단체들과 해내외의 각계각층 동포들이 참가하는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실현하고, ‘거족적 통일운동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자고 제안했다. 당국대화가 열리지 않더라도 북한이 각계각층의 교류를 제안하면서 ‘대화공세’로 나올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행정부를 거론하지 않은 채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할 용단”을 촉구했다.

이와 같은 신년사의 내용을 볼 때 북한은 2월말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독수리훈련’을 전후해 ‘남북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충돌과 전쟁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수립’을 명분으로 고위급회담을 제안할 수 있겠지만 국내 상황을 고려해볼 때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북한은 지난해 핵과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험을 잇따라 공개적으로 진행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있다고 공개한 점을 감안하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전후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할 수도 있다.

반면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 접촉을 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국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윤곽이 드러나기 전에는 북·미관계 개선 혹은 협상 가능성의 문을 닫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될 때까지는 정세를 관망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발언과 한미합동군사연습의 규모 등을 보고 정책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를 자주 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놓는 매우 의의깊은 해로 되도록 그 무엇인가를 하여야 한다”고 언급한 점에 주목하면 ‘그 무엇인가’를 위해 5월 이후에는 적극적인 대화공세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 남북관계도 한미합동군사연습,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시험 등 변수가 많아 상당 기간 대화국면보다는 강경 대립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보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북한의 선택이 더 중요한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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