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백만 촛불이 일렁이는 광장에 나가 보라. 힘 있는 자와 가진 자에 대한 억눌린 자와 없는 자의 조롱이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재치로 얼마나 번득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공주타령이 무엇을 풍자하는지는 병신년 마지막 두 달을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으리라.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세상을 바꾸기 싫어하는 자의 변명일 뿐이다. 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되 글은 세상을 바꾸는 데 매우 유력한 하나의 구실을 할 수 있다. 이 글 역시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와 도둑들

  공주가 육조 앞 뜨락에 나온 건 어느 맑은 날 한낮
  궁궐 뒷산과 그 밑의 대궐문을 바라보며 공주가 섰것다
  궁궐 뜨락에서 바라보던 저 산 이제는 멀리서
  좀더 크게 바라보게 되었구나
  그 동안 지난 세월이 꿈만 같다.
  꿈 많던 소녀 시절 그 분을 만나
  여왕이 될 거라며 쓰다듬어 주실 때
  황홀한 마음에 그 날이 오리라 여겼더니
  이 뜨락에서 왕이 되어 즉위식을 하였건만
  이 뜨락에서 개 돼지들이 촛불 들고 난리를 치더니
  드디어는 권좌에서 내려오고 의금부에 하옥되었더라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더니
  이건 뭐 권불오년도 안 되는구나
  앞에는 재판관들이 앉아 있고
  왼쪽에는 포도청에서 깡패 잡던 율사가 검찰관이 되었다는데
  오른쪽에 앉아 있는 변호인들은 서로 싸우기 바쁘구나
  네가 몸통이다 아니다 내가 깃털이다 한다던데
  아 순살은 어디 있나 늙은 도승지는 어디로 갔나
  아 저기 순살도 있고 늙은 도승지도 있네
  문고리 잡고 있던 승지들도 보이고
  소가 병들었는지 병든 소인지 하던 실세 승지도 보이네
  거부 손목 비트는 데 앞장선 승지
  삐딱한 광대들 명단 만들어 혼내 주려던 판서 참판들
  공주 말 듣고 수십억냥을 낸 거부들도 있고
  그 중 순살 딸에게 몇 십억냥짜리 말도 사주고
  몇 십배의 돈을 더 번 거부가 단연 눈에 띄는구나
  얼굴은 보았지만 누군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순살 말에 따라 왔다 갔다 하던 이들도 여럿 보이고
  공주의 젊음을 지켜 주느라 애쓴 의원들 의녀들도 보이는구나
  이들 모두 공주의 은덕으로 호의호식 호가호위 한 자들이언만
  지금은 포승에 묶인 채로 공주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구나
  공주는 이제부터 뭐라고 해야 하는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재판관이 공주부터 하나하나 이름과 신상을 묻것다
  공주를 부르니 공주 대답하기를
  과인의 이름은 공주고 주소는 대궐 안 편전이요
  그러자 대뜸 검찰관이 끼어 들것다
  죄인은 이젠 왕이 아니니 과인이란 말을 쓰지 마시오
  재판관이 인정합니다 과인이란 말 쓰지 마세요
  아니 저런 쳐 죽일 놈들이 있나
  부글부글 끓지만 묶인 몸이 되었으니 어찌하리
  검찰관이 공주의 죄를 읊기 시작하것다
  공주의 죄는 도둑질한 죄 도둑질을 열거해 보면
  첫째, 세금 도둑.
  둘째, 국민연금 도둑.
  셋째, 일자리 도둑.
  넷째, 봉급 도둑
  다섯째, 쌀값 도둑
  여섯째, 중소기업 도둑.
  일곱째, 대학 합격 도둑.
  여덟째, 대학 학점 도둑
  아홉째, 열째 하고 가는데
  더 이상 공주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구나
  장안의 거부들만 빼고는 백성이 죄다 도둑질을 당했으니
  아니 장안의 거부들도 손 비틀리고 공갈 협박당해서
  무서워 억만금씩 내었다니 이들도 피해자라
  온 국민이 당한 셈이기는 한데
  허나 장안의 거부들과는 짬짜미로 뭔가를 주었으니
  이들 역시 공범이라
  공범이 하나 둘이 아닐 터
  도둑질로 억만장자가 된 순살 일가야 말할 것도 없고
  그들과 한 통속이었다가 은근히 싸웠다가 하며
  공주를 쥐락펴락한 늙은 도승지
  이들을 도와준 육조의 벼슬아치들
  공주 죄를 알고도 모른 척하고
  그저 잘 돼간다고만 한 공주파 붕당 고관대작들
  진짜 나쁜 도둑은 도둑 잡으라고 앉혀 놨더니
  도둑질을 지켜 주는 개가 된 의금부 벼슬아치들
  그들을 장악하고 조종한 병든 소 승지라는 놈
  늙은 도승지와 함께 항간에서 법비라고 한다던데
  이렇게 보니 단군 이래 최대 규모 떼도둑인 거라
  검찰관이 열을 내어 이야기하는 동안
  공주는 그저 멍하니 뒷산만 바라보았것다
  재판관이 검찰관의 공소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공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늘은 심정이 복잡하니 가까운 시일에 소상히 말씀드리지요.
  검찰관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죄인은 이제 그럴 권한이 없소.
  이게 뭐 피고인 기자회견하는 자린 줄 아시오
  재판관이 인정합니다. 인정하냐 안 하냐만 말하세요.
  공주도 열이 받아 한마디 했것다
  나는 한 치의 사심도 없이 사익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라를 위해서 공익을 위해서
  그러자 검찰관이 말을 자르며
  공익을 위한다며 순살 일가를 위해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서 일감 만들어 주었단 말이요.
  거부들 돈 뜯어다 퇴임 뒤 쓰려고 해외로 빼돌리고
  순살 말 듣고 멀쩡하게 일 잘하는 사람 쫓아내고
  능력도 경험도 없는 사람 낙하산으로 앉히고
  배가 침몰해서 수백명이 빠져 죽는데
  내 얼굴에나 관심을 갖고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돌리는 것이 나라 위한 일이요
  공주 흔들리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 나라를 위하고 공익을 위해 한 일이오
  검찰관이 됐다며 손을 젓더니 이상입니다 하고는 제자리에 앉는다.
  다음으로 증인 채택을 한단다.
  첫 번째 증인으로 나온 아줌마.
  공주보다 나이는 어린듯한데 아줌마는 확실하다.
  하긴 공주도 순살의 관리가 없었으면 할머니로 보였을 나이긴 한데
  이 아줌마 공주를 쏘아보는데 공주 레이저보다 더 센 거라
  공주 어쩔 줄 몰라서 아 몰랑 하고 있는데
  저 년은 밥그릇 도둑만이 아니라 목숨 도둑 진실 도둑입니다.
  저 년이라니 저 년이라니 공주 바들바들 떠는데
  남쪽 먼 바다에 배가 빠졌을 때 7시간 동안 어디 가서
  생떼 같은 우리 자식들 눈앞에 보는 데서 수장시켰고
  진실이 무언지 알려고 만든 특조위마저 방해한 저 년
  천벌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아아 남쪽 먼 바다에 배 빠진 일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트 무엇이라 하던데
  아 맞다 트라우마 공주의 트라우마다
  하지만 니들이 그 맛을 알아. 7시간 뿅 간 맛을.
  그건 송로버섯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송로버섯, 공주의 내시라도 되겠다는 자가 붕당 대표가 되어
  너무 기뻐서 샥스핀 등과 함께 오찬을 했던 요리
  서쪽 어느 나라에서는 900그램에 1억 냥 넘은 적도 있고
  지금도 500그램만 되어도 150만 냥이 넘는다는 것
  이 맛은 아무도 모른다 이거 먹었다고 떠들어 쌓는 놈들 땜시
  몰래 몰래 감춰 놓고 먹었지만 그러니까 더 맛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맜있는 것을 위해 공주는 외출을 했던 것
  공주 이럴 때 괜히 말해봤자 손해만 본다는 것은 체득한 바
  두 번째 증인이 나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다.
  어디서 봤는데 누구더라. 앗 부왕과 맞짱 뜨다 감옥에 갇혔던 인간.
  저 늙은이가 아직 살아 있네.
  이 노인네 왈 공주가 대를 이어서 도둑질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낮에는 막걸리 마시고 밤에는 딸보다 어린 계집 끼고
  먼 바다 건너 온 시바스 리가루 마시고
  청렴한 척 하지만 죽을 때 보니
  궁궐 비밀금고에 9억냥이나 현찰로 넣고 있던 인간.
  그런 지 애비를 나라의 영웅 만든다고
  역사책도 바꾸고 섬나라 오랑캐와 손을 잡고
  오랑캐에 아부하던 매국노들 신분 세탁 해주는 역사 도둑 나라 도둑
  아아 이러려고 왕이 되었던가
  순살이 말대로 군대 동원해서 싹쓸이 할 걸 그랬나.
  그럴 때마다 정승 판서들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지금은 백성이 주인인 척해야 하는 시대라고
  그래서 참았더니 이제 이 꼴이 되었단 말이냐
  세 번째 증인이 나온다.
  공주처럼 죄수복을 입었다.
  어라 죄수가 증언을 하네.
  알고 보니 공주가 잡아넣은 인간
  일꾼들 모임에 영수라나.
  맞다 그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기는 했다
  그래서 복면도 금지하고 아라비아 테러법도 만들고 했는데
  이 인간 하는 말이 지금까지 도둑보다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나.
  소매치기라. 무슨 말인지.
  지금까지 싸워온 백성들의 공을 소매치기하는 도둑놈들이 있단다.
  이쯤 되면 공주의 아둔한 머리도 빨리 움직인다.
  그리고는 육조 뜨락 주변에 둘러선 사람들을 재빨리 훑어 본다
  공주네 붕당이지만 반대파이었던 인간들
  반대 붕당인데 항상 공주와 거래하고 싶어했던 인간들
  먼 나라에 가서 한 자리 하고 임금 자리를 노리는 반장어
  이들이 소매치기를 할 거란 말이지
  그렇다면 이들이 나를 풀어 줄 것인가
  아니 어쩌면 이들은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이런 짱구를 굴리고 있는데
  어느덧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하자
  뜨락에 모인 사람들이 촛불을 하나 둘 드는구나
  공주 눈에는 아무리 봐도 개 돼지에 다름없는데
  셋째 증인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다시는 이 땅에 임금이 없는 날이 와야 할 것입니다
  임금 없이 백성이 진짜 주인이 되는 사회
  그러자 뜨락에 가득찬 개 돼지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공주는 모르는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
  똑같은 소리로 외친다
  아니 이것들이 언제부터 이런 노래를 배웠단 말인가
  권력이 백성으로부터 나오다니
  이거야말로 왕조를 부정하는 반란 아닌가
  재판관 검찰관 반란이 났소 당장 재판을 중지하시오
  재판관도 검찰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어느 누구도 공주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공주만 속 상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재판장이 재판 중단을 선언하고
  포졸들이 공주를 다시 묶어서 호송차에 싣는구나
  그 뒤 공주는 어찌 되었을까
  멀리 법국의 단두대처럼 망나니가 춤을 췄다고도 하고
  아직도 의금부 감옥에 들어가 앉아 있다고도 하고
  너그러운 백성들이 이도인지 저도인지로 보내
  부모님 추억이나 먹고 살라고 했다고도 하는데
  아주 먼 옛날 먼 나라의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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