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하이데거) |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지난 주말에 광화문에 갔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의미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구명조끼 아래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우리들은 지나가며 속으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로 와서 ‘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엔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들은 단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겐 ‘세월호의 아픔’이 없다.
‘하나의 몸짓들’은 단지 성가신 그 무엇일 것이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소위 ‘지도급 인사들’에게 분노한다.
그들은 왜 그리도 염치가 없을까?
그들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많이 불러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눈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몸짓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속으로 되뇔 것이다.
‘몸짓(개돼지)들이 왜 저리지?’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그들이 ‘우리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주말마다 꽃을 피운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꽃’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