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

 

  들어가며

  2016년이 저물어 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올해만큼 다사다난했던 한 해는 좀처럼 보기 힘들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리라. 그것은 올해가 그만큼 일상적 시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올해는 일상적 시기가 아니었다. 올해 11월 이후는 특히 그러한데 역사는 이 시기를 무엇이라고 부를까? 아마도 역사는 2016년 11월 이후를 ‘변혁의 시기’라고 부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2016년은 1987년 이래 다시 한 번 변혁의 시기가 된 해이고, 이것이 내년까지 지속되리라는 점에서 올해는 변혁이 시작된 해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모든 변혁의 시기가 그렇듯이 그것은 순간적으로 온 것이지만 동시에 그 조짐은 벌써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단초를 아마도 4월의 총선부터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조짐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총선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붕괴의 조짐은 출발부터 보였다. 국정원 댓글 조작 등으로 정통성 없는 정권이 세월호 참사에서 사악함과 무능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었고, 메르스 사태 등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드러내면서 민심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런 가운데 내부 권력투쟁에 골몰하면서 정윤회 문건과 십상시 등으로 국민의 혐오를 불러일으키더니 드디어 총선 결과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마침내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로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2만에서 시작된 촛불이 200만을 넘기면서 마침내 국회를 압박하여 탄핵을 가결시키기에 이르렀는데 그럼에도 정작 박근혜는 자기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완강히 버티고 있고, 그를 둘러싼 새누리 친박 무리들은 결사옹위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박과 야당 일부가 제3지대 어쩌구 하더니 다소 주춤하고, 친박의 지원을 받아 대선에 출마할 듯하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친박의 몰락으로 잠잠하더니 다시 친박과는 멀리 한 채 제3지대의 추대를 받아 대선에 출마할 낌새를 보이고 있다. 과연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그에 대한 형식적, 내용적 고찰을 해보도록 하자.

  평화시위에 대한 고찰

  올해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진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12월 9일에 있었던 국회의 탄핵 가결이다. 탄핵 가결은 국회가 했지만 이것이 국민의 힘에 밀려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뿐이다. 박근혜에 대한 탄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박근혜 밑에서 총리하던 황교안이 권한 대행을 하고 있다. 수백만의 군중이 추위 속에서 외쳐 댔건만 저들의 반민중적이고 반민족적인 정책은 하나도 철회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하수인들 몇몇이 구속되었을 뿐이다.

  이럴 때 아직도 우리는 겨우(?) 촛불이나 들고 집회와 시위를 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평화적으로 어쩌면 고요한(?) 방식으로. 이거야말로 수구독재권력이 원하는 바 아닐까? 불만을 터뜨리고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라고, 자기만족적인 행위나 하라고 국민들을 조롱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쯤 되면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생기게 마련이다. 그 누구도 폭력시위를 하자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저렇게 뻔뻔스러운 자들에게 평화시위가 가당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은 벌써부터 생기기 시작했고, 8-90년대의 격렬한 시위에 앞장섰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더욱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평화시위는 우리가 채택한 전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평화시위가 국민들이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 쟁취해낸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바꾸어 말해서 평화시위는 저들이 허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되도록 최소한의 침탈밖에 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저들은 군을 동원해서 총을 쏠 수 있는 물리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엄청난 군중이 무장을 하고 저들에 저항할 수도 있다는 점을 광주민중항쟁이 똑똑히 보여 주었다. 저들은 사과탄을 던지고 최루탄을 쏘고 페퍼포그를 뿌려 대며 심지어 지랄탄까지 쏘아 대면서 토끼몰이 식으로 시위를 진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저항을 불러일으키는지는 우리도 알지만 저들도 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한열, 강경대, 김귀정 열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 우리는 최루탄 없는 시위를 쟁취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불로 안 되자 저들은 물로 시위를 진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마저 무력화시킨 것이 백남기 농민의 산화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분의 고귀한 희생과 유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의 결과였다. 이제 저들은 시위대중의 도발이 없는 한 집회와 시위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결국 평화시위는 저들의 침탈을 무력화시켜온 국민들이 쟁취해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평화시위가 계속되는 결과 국민대중이 순치되고 변혁은 멀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변혁을 유혈의 결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유혈은 저들의 도발과 무자비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까마득히 오래 전에 우리는 눈귀입이 꽁꽁 막힌 상태에서 온몸을 던져 저들의 폭력을 이끌어내는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십만 수백만이 모여 마음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행진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굳이 이것을 마다하고 옛날로 돌아갈 까닭이 없다.

  지난 10월말부터 매주 광장에서는 촛불을 들고 단지 박근혜 퇴진만 외친 것 같지만 사실은 엄청난 변혁의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 일상적인 시기에 책을 통해 언론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의 수 십 배 수 백 배 인식의 심화가 변혁의 시기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적인 시위에 의구심을 갖기보다 이 시위의 내용을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한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변혁과 혁명

  지금이 변혁의 시기라면 그것은 혁명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얼마 전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가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는 발언을 하자 국민의 당 박지원 의원, 새누리당 등에서 난리가 났다. 민주적 기본 질서를 해치는 무책임한 발언어리는 것이다. 문 전대표의 발언은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인데 그걸 두고 무책임이니 어쩌니 하는 것이야말로 말꼬리나 잡는 무책임한 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공통점도 있다는 것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혁명을 굉장히 무시무시하게 생각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로 생각하는 ‘혁명기피증’이다. 이러한 생각은 혁명을 유혈사태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물론 혁명은 유혈사태를 동반할 수 있다. 하지만 혁명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혁명 하면 유혈사태를 연상한다. 수구기득권세력은 그것을 이용해서 혁명에 대한 공포감을 사람들에게 심으려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혁명적인 변화는 원하는데 혁명은 두렵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딜레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수구기득권세력에 의해 왜곡된 개념인 ‘혁명’보다 ‘변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변혁은 구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을 수반한다. 그리고 변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또 피할 수만 있다면 유혈사태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제의 법질서를 무조건 준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변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구체제의 법 중 수구기득권세력의 온존을 위해 기능하는 악법이 있다면 그것의 준수를 과감히 거부해야 할 뿐 아니라, 법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도록 분쇄해야 한다.

  민주변혁에서 민족민주변혁으로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변혁이 시작된 상황에 접어들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기층민중운동조직이나 시민운동단체 어디에서도 이 시기가 변혁의 시기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상황을 이끌어가지는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대중의 열기에 뒤늦게 끌려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변혁의 조짐은 4월 총선에서부터 보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의 변혁의 성격을 보여줄 상징적인 사건은 올해가 시작되던 1월 1일에 있었다. 이 날 대학생 20여 명이 일본대사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그렇게 파급력은 크지 않았는지 몰라도 우리 사회의 변혁이 어떠한 지향점을 갖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한 사건이었다.

  우리 현대사를 통해 볼 때 민주변혁은 반드시 민족민주변혁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것은 이 사회의 수구독재가 외세와 그 추종세력을 위한 권력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들은 우리 사회의 민족자주를 쟁취하려는 일체의 행동을 억압하게 되고, 우리 민족의 이익이나 명예를 훼손하는 일에 대한 반대 행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왔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 특히 청년학생들과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은 민주적 공간이 열릴수록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2015년 12월 말. 박근혜 정부는 어처구니없게도 일본과 ‘불가역적인’ 위안부 협상을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한일정상회담까지도 안 할 정도로 대일 강경자세를 보이던 박근혜 정부가 아주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하였는데 그것이 그들의 본색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드 배치의 졸속 결정에 이어 탄핵이 임박한 시점에까지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일사천리로 체결해 버렸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반민족적인 행태는 이들의 태생부터 규정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변혁은 반드시 이들의 반민족적인 행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투쟁의 양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변혁의 지향과 변혁에 대한 저항과 방해

  엄청난 규모의 집회와 시위를 통해 퇴진을 압박했건만 박근혜는 아직도 버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조직적인 반격까지 시도하고 있다. 그 시도는 범죄행위에 대한 전면 부인 등 재판에 대한 대응에서부터 제도정치권 내외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시기를 변혁의 시기라고 본다면 이들이 하는 행태는 변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후안무치한 행태는 국민 절대 다수에게 외면당하고 있고, 심지어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이렇게 발버둥 쳐 봤자 그들이 올봄에 말했듯이 한방에 훅 갈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 친일파들이 해방정국에서 대다수 국민들에게 부정을 당했음에도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언제든지 극소수가 되어버린 수구세력도 그들을 밀어 주는 외세가 있는 한 갖가지 방법을 통해 되살아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변혁을 위해서도 이번 시기에 이들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변혁에 대해 저항은 하지 않지만 사실상 방해하는 무리들도 있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비박과 보수야당의 상당수들이다. 이들과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구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이들과 같은 언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 같이 박근혜의 탄핵을 외치고 즉각 퇴진을 외친하다고 해도 이들은 언제든지 변혁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 아니 지금도 이들 중 상당수가 그러한 언동을 하고 있다. 변혁이 무르익어 가는 내년이 되면 이들과 변혁 지향 세력의 갈등은 첨예화될 가능성이 높다.

  변혁 지향 세력과 변혁 방해 세력의 차이를 형식적인 면에서 본다면 변혁 방해 세력은 말로는 국민의 힘, 촛불의 힘 어쩌구 하지만, 사실상 제도 정치권의 일정에 따라서 현 국면에 대응하려고 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주요 일정은 대선, 개헌 등이다. 이들은 정국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정치는 자기들이 하는 것이고, 국민 대중은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식이다. 물론 제도 정치권의 일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혁 지향 세력은 정치 일정을 감안하고 활용하되 대중의 힘을 통해서 이 국면을 돌파해 나가려고 한다. 변혁의 시기에는 그것이 가능하다.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 가결을 만들어낸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지금까지의 촛불 시위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내용적으로 보면 변혁 지향 세력은 대중의 힘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그리고 변혁에 알맞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도 민중생존권을 저해하는 일체의 정책을 모두 폐기하려고 한다. 노동개악 등이 그러하다. 나아가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상황이 민족민주변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알고, 민족자주와 평화를 위한 내용을 담은 요구를 주요한 것으로 내세운다. 사드 배치 반대, 위안부 협정 철회, 한일군사정보협정 파기, 국정역사교과서  발간 취소, 개성공단 원상회복 등이 그렇다. 변혁을 방해하는 세력은 현실적 조건이나 정치 일정을 이유로 이러한 요구들을 불철저하게 다루려 한다.

  친박이냐 비박이냐, 새누리냐 야당이냐, 더민주냐 국민의 당이냐.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이것이 어느 정도 정치세력의 성격을 보여주기는 한다. 하지만 변혁의 시기에 그것은 이합집산 합종연횡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말이 확연히 다를 수도 있다. 생각부터 그렇게 요동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 변혁의 시기에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이냐, 아니면 변혁에 저항하거나 사실상 방해하는 세력이냐의 구분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맺는 말

  2016년도 저물어 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아직 두 번의 대규모 집회가 남아 있다. 현 상황은 헌법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내년으로 연장되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혁의 열기가 내년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뜨겁게 정국을 달구어 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할 때 우리가 어떠한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우리는 2016년 말부터 2017년에 걸친 시기가 변혁의 시기임을 깨닫고, 이것에 저항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기의 의사와 달리 방해하는 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에 진정으로 기여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변혁을 지향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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