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 부산가톨릭대 외래교수, 『수령국가』 저자, 전 민주공원 관장


대통령은 참으로 못났지만, 세계정치사는 프랑스 시민혁명에 버금가는 21세기판 시민혁명을 동방의 작은 나라(‘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서, 그것도 가장 ‘평화적인’방법으로 촛불항쟁을 목도하였다. 간디 이후 가장 위대한 비폭력 저항권으로 세계 민주주의의 교본(a text book)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700만 명이 참여한 탄핵정국 1막은 끝났다. 지난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통과가 그것을 증거하고, 그 주역들은 이제 2막을, 1막과는 참으로 다른 셈법들을 갖고 시작하려 하고 있다.

정치권은 탄핵 이후를 내다보면서 개헌과 대선이라는 시간표로(정치공학적 접근),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은 탄핵 이후 시대정신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탁상공론적 접근)를, 국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정상적인’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무엇이 선결과제인지(변증법적 접근)를 광장에서 계속 찾으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장면1: 정치권】

역시나 1막의 끝남과 동시에 2막 시작은 참으로 ‘정치적’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심의 무게를 갖는 민심과 적·아의 구분법은 없어졌고, 오직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합종연횡만 난무하게 될 정치시계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였다. 개헌을 매개로, 시계는 대선에 가 있음을 알린 것이다.

이 프레임에는 여당과 야당, 야당 내의 친문과 반문세력, 제3지대 대망론과 엉키면서 사실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나 나름 꽤 복잡한 셈법으로 출현하고 있는 듯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그렇게 복잡할 수가 없다. 자기세력들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고, 그 비책이 개헌에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차이일 뿐이다.

그 명분의 포장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탄핵정국의 민심을 정치혁명으로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 '87년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또 다른 명분으로 나름 대중적 공분과 함께 꽤 설득력 있는 호소로의 울림이 그것이다(개헌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이라는 개헌논의가 순항할 수 없는 타이밍에 있고, 해서 지금의 탄핵정국 완성은 개헌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적·제도적으로 청산되어야 하고, 개헌은 이후 차분히 시간을 갖고 최고 권력자의 개헌의지와 정치권, 민심이 부합하면서 생산적으로 진행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더해서 여권은 권력재창출의 마지막 보루를 개헌에서 찾고, 이를 위해 친박과 비박은 지금 사생결단하고(비박의 분당은 개헌을 매개로 한 보수세력의 재집권 가능성을 높이고, 선호하는 개헌은 의원내각제인데 이는 지금의 보수세력 입장에서는 권력재창출과 보수세력의 재결집이 가능한 최선의 시나리오로 작용하게 된다), 반면 야권 중 개헌논의세력은 다음과 같은 인물들과 워딩(wording)에서 그 속내가 속속 드러난다.

대선주자로는 안철수, 10월 20일 기자회견에서 "개헌, 7공화국 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하면서 정계복귀한 손학규(제3지대 대권주자), 김부겸 등이 개헌논의에 부정적이지 않고, 워딩으로는 정세균(현 국회의장)이 6월 13일 국회 개원식 연설에서 개헌문제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임기 2년간 주춧돌 놓겠다"하였고, 최근에서는 박지원(국민의당 원내대표)이 12월 1일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국민 70-80% 개헌 찬성”이라는 발언을 했고, 김종인(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도 12월 11일에 "개헌이 촛불민심 보답하는 길"이라 했다. (야권에서) 개헌군불은 이렇게 지펴지고 있는 것이고, 공교롭게 모두 다 반문세력들이자 문재인으로 굳어지는 야권의 대권분위기를 흔들려하고 있다.

 【장면2: 민심】

지금도 탄핵정국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치권이 대선정국으로 관심사를 이동시키려 하는 프레임을 짜려 하지만, 민심은 탄핵정국 2막을 여전히 Ver2. 탄핵정국으로 이어가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2막은 탄핵을 넘어 대통령 ‘구속’과 함께, 해방 후 ‘반민특위’해체로 좌절되면서 기생충처럼 질기게 온존해온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적폐청산’으로 그 항로를 분명히 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단순히 대통령 퇴진이라는 정치공학적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헬조선’, ‘이게 나라냐?’, 𔃹포세대’, ‘갑질사회’, ‘흙수저·금수저론’, ‘新유신체제’, ‘최순실정부’, ‘재벌공화국’등이 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그 근본원인을 인식해내었기 때문이다.

그 길잡이가 역설적이게도 헌법 제1조 1항과 2항에 대한 실천적 자각과 이해에 있었다. 선열들의 목숨값으로 얻어낸 대한독립이었지만, 반민특위 해체로 말미암아 일제잔재세력들을 청산하지 못한 그 적폐가 인적으로 제도적으로 공고화되면서 남겨진 유산으로 인해 작금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여 탄핵정국 2막 또한 포스트 탄핵정국으로 인식되어지고, 그 방향으로 한국적 적폐의 그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민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민심과 정치권은 탄핵정국 1막 이후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 시선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야권은 투트랙(Two-track) 전략으로 탄핵정국 그 이후를 이어가려 하고, 민심은 좀 다른 방향으로 그 대의를 표명하려 하고 있다. 빗대어 표현하자면 ‘대통령 하나 하야시키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가했나?’이다.

먼저, 야권은 여·야·정 협의체와 개헌특위 구성을 통해 정국안정과 개헌주도 및 대선승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속셈이었지만(track, 1), 정치적으로 볼 때 개헌논의와 조기대선은 비례할 수 없게 되어있다. 탄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불명확하게 되고, 여·야의 이합집산을 통한 진보·개혁민주주의세력의 집권가능성은 그 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가 여전히 촛불민심에 편승해가는 것인데(track, 2), 이 편승은 대선이라는 시간표에 초점을 맞추는 그 순간 정치적 제스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버렸다. 이유는 그것을 탓할 수는 없으나 촛불민심과의 동행목적이 자기정당과 대권후보들의 잠재적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 참여해지게 되고, 그렇게 되어서는 즉, 민심의 요구를 정확히 읽고 이를 정치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보다는 권력재창출의 수단으로 민심을 이용하려 하는 욕구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반면, 민심은 여전히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도 청산되어야할 박근혜체제의 연장이고, 비례해서 황교안 권한대행체제와는 협치와 국정파트너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물러나야할 적폐체제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의 바탕에는 대한민국 광복 이후 청산되지 못했던 적폐들이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가장 적나라하게, 실체적 진실로 총합되면서 그 요구가 박근혜 퇴진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대한민국이 대개조되는 방향으로의 ‘국가(사회)’대청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바탕하고 있다.

그런 만큼 촛불은 대통령 퇴진으로만 꺼질 수 없으며(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권후보의 사회개혁기구와 사회대청소 발언은 민심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내었다 하겠다. 다만, 그 진정성이 보다 더 잘 표현되기 위해서는 아래에 표현되어 있는 대권주자가 가져야할 자질론에 맞게 구체화되어져야 할 것이다), 정치권의 정치공학적 접근은 반드시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철저히 외면당하게 되어있다. 이는 미국 대선에서의 샌더스가 일으킨 돌풍이자 트럼프가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 민심은 여전히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도 청산되어야할 박근혜체제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새누리당은 논외로 치더라도 정치권과 특히 야권과 민심은 서로 이렇게 동상이몽하면서 정말 불안한 동거를 유지하고 있다. 같음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공통분모만 있고, 다름은 ‘적폐청산 대(對) 개헌 및 대선정국’으로의 시각적 분화가 분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민심의 요구에서 확인받은 시대정신과 향후 대한민국이 나아가가할 방향에 대해 그 성찰적 고뇌와 해법에 몰두해야 할 전문가 집단들과 지식인들의 방황 또한 참담하다.

다음의 한 인용문이 이를 증거하고 있는데, “시대정신을 논하는 학회가 열렸다. 발제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하며 백가쟁명을 벌였으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이 딱히 없었다. 보다 못해 사회자가 방청객을 향해 물었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러자 누군가가 "정신없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날 학회의 결론은 '정신없다'로 끝났다(국제신문, 2016-12-16)]고 한다. 여기에서의 확인처럼 전문가(지식인)들은 시대정신을 읽어낼 학문적 능력도 고뇌도 없어 보인다. 

민낯도 이런 민낯이 없다. 국민들의 존재이유가 되어야 할 국가는 엉망이고, 정치는 실종되고, 시대정신은 방황하고, 한반도 정세는 표류되는 이 참담한 상황. 이러한 상황이 처해졌는데도 여전히 정치권은 대선에만 집착하고, 지식인과 전문가집단은 시대를 읽어낼 힘과 능력도 없이 그렇게 제도화와 정치화되고, 전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위의 언급-‘헬조선’, ‘이게 나라냐?’, 𔃹포세대’, ‘갑질사회’, ‘흙수저·금수저론’-등으로 확인받은 국가적 말기증상에 대해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여기에다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의 팽창화, 미·중의 세계패권 다툼,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북한의 핵무장화 등은 조선말기 국운이 다했을 때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한 작금의 상황 또한 어떻게 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
 
위 물음과 고뇌에 대해 각급의 주체들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각자의 제자리에서 제 본문을 다하고, 치열한 모색을 하여야 한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탄핵민심을 이용하려 하지 말고 정치적으로 수용하는 참정치의 길로, 지식인과 전문가집단들은 시대정신과 국가비전을 읽고 제시해낼 힘과 능력 있는 난장을, 재벌은 급변하는 세계와 동북아정세하의 상생하는 기업구조와 경영혁신을, 정부는 ‘국가답게’시스템과 그 위상을 회복하는 길로 접어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민심에 부합하는 ‘민심에 대한 예의’이자 최소한의 도리이다. 특히 정치일정상 좋든 싫든, 또는 조기든 정상적인 12월 대선이든 대선일정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상부구조로서의 정당과 대선주자들은 다음과 같은 몸과 마음가짐으로 그 예를 다해야 한다. 
 
첫째,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라는 박근혜식 자괴감(?)대신, 정당으로서의 존재이유와 본인이 왜 반드시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을 이것만은 반드시 고쳐놓겠다는 국가개조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국민들 앞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설득도 해내어야 한다.
 
둘째, 대권주자로써 시대정신을 읽어낼 그 힘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대강으로 제시해보면 ⅰ)한반도 평화시대를 개척해낼 정치적 식견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ⅱ)‘이게 나라냐?’, ‘헬조선’에 함의되어 있는 절망에 대해  전면적인 국가개조의 방향과 상, 그 내용을 소유하여야 한다. ⅲ)‘흙수저·금수저론’논란에서 확인받듯이 정상적인 민주제도와 민생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확실해야 한다.
 
셋째, 여권은 촛불민심을 맞불집회로 만회하려는, 혹은 보·혁구도로 왜곡하려는 꼼수대신 보수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건강한 노력이, 대권주자 모두는 보수와 진보의 통합정치를 실현할 힘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관점에서 대의를 가슴에 품고 시대정신을 심장에 새기면 극우와 극좌를 배제하는 능력도, 7ܪ남북공동선언과 6䞋와 10ܪ선언의 공통분모와 연속성도, 재벌경제와 국민경제가 상생할 방안도, 대의민주주의 보완재로서의 광장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적폐청산의 국민적 합의도, 개헌과 제7공화국의 시작도, 19세기식 정쟁이 아닌 21세기 정치의 방향과 내용도 분명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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