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측이 조용하다. 이른바 외부 세계에서 말하는 ‘도발’ 행위에 나서지 않고 있다. 벌써 두 달째다. 그 이유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트럼프 당선자를 의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남측을 의식한 면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남측에서 9월 하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예의주시’하던 북측은 10월 29일 1차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그 촛불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100만 명을 넘어 220만 명으로 확산되고, 드디어 12월 8일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가결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침묵’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북측은 최근의 침묵 이전에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해왔다. 올해 들어 1월 6일과 9월 9일에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했으며, 2월 7일에는 위성도 발사했다.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0’으로 불리는 무수단 미사일도 여러 차례에 걸쳐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발사를 했다. 게다가 한 달에 한두 차례에 걸쳐 노동미사일 등 탄도미사일을 간단없이 발사해 왔다. 특히, 북측은 전략적 무기의 경우 정세에 관계없이 시험해 왔다. 북측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상중(喪中)인 2009년 5월 25일에 2차 핵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핵실험이든 위성 발사든, 그리고 탄도미사일 발사도 자신의 일정표에 따라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북측이 남측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일체의 ‘도발’을 중지하고 있는 ‘예외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11월 초 남측 군 당국이 “최근 무수단 미사일을 탑재한 이동식 발사차량의 움직임이 포착됐으며 언제든 발사할 준비태세를 갖췄다”며 북측의 미사일 발사를 기정사실화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북측이 최근 위성이든 미사일이든 발사 계획이 있는데, 이를 미루거나 중지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가질 만도 하다. 대신 북측의 대남 비난 보도는 배가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서 남측 당국과 박 대통령을 때릴 재료가 너무나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측의 설전에 대해 게이트 때문에 바빠진 남측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기에 상호 설전이 극대화되지는 않고 있다. 나아가 북측은 설전에 이어 전선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11월 초순 남측의 백령도와 근접해 있는 마합도를 방문해 방어대의 전투동원 준비 상태를 시찰했으며, 12월 1일에는 한 포병 화력타격연습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남조선 것들을 답새겨야 한다(족쳐야 한다)”고 위협 발언의 수위를 높였으며, 게다가 12월 초순에는 청와대를 타격하는 훈련을 참관하는 등 위협 지수를 한껏 높였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내부 발언이고 내부 훈련으로, 예전에도 비일비재했던 일이다.

어쨌든 문제는 북측이 ‘도발’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 달에 두어 번씩 쏘던 탄도미사일마저 왜 뚝 끊긴 걸까? 북측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목도하면서 이전 남북관계에서의 두 가지 이해 못할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나는 이산가족 상봉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2014년 2월과 2015년 10월에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이전대로라면 이산가족 상봉 후 남측은 북측에 식량 등을 지원해주고 당분간 대화가 유지돼 상호관계가 호전됐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북측에 무언가를 줄듯이 하다가는 상봉행사가 끝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입을 싹 닦았다. 이른바 ‘먹튀’를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올해 초 박근혜 정부가 단행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다. 그 이유야 당시 북측의 핵실험과 미사일(위성) 발사에 대한 대응조치 때문이라지만, 개성공단이라는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를 이렇게 단번에 허물지는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북측에 ‘혹독한 대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자해행위’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에서의 ‘먹튀’와 개성공단 폐쇄라는 비합리적인 조치를 겪은 북측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통일대박’이 최순실의 아이디어이고, 개성공단 폐쇄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접해서는 당혹감을 넘어 황당해하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북측은 박근혜 정부를 ‘비정상적인 정부’로 확증하지 않았을까.

남북이 경색관계에 있더라도 북측은 이제까지 남측이 ‘정상적인 상태’이기에 도발을 해도 무력충돌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사일 발사 등으로 수위를 높여왔는데,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고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적인 상태임이 증명돼, 자칫 잘못하면 군사적 충돌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고 판단해서 가만히 있기로 결정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북측의 유일한 방법은 현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다. 위험하면 위험한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말이다. 남측에 여지를 안 주겠다는 것이다. 남측이 오판하거나 핑계를 댈 구실을 주지 않는 것이다. 북측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 발사를 한다면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정부로서는 대형 호재를 맞게 되는 것으로 역습의 빌미를 주게 될 것으로 판단했음직하다. 북측은 정주년인 ‘김정일 5주기’를 맞은 최근에도 어떠한 축포나 도발 없이 침묵을 지켰다. 이 정도라면 북측의 침묵은 예외적인 침묵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침묵이라 할 만하다. 물론 북측은 언제고 ‘도발’을 해올 것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자위권’ 차원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북측이 조만간에 어떠한 ‘도발’을 해온다 하더라도, 그동안 남측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촛불시위→국회 탄핵소추 가결→헌재 탄핵 결정 과정’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는 점에서 북측의 대남 정책이 매우 정교하고 현실적이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