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민중은 스스로를 해방시킨다(체 게바라)


 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               
 - 파블로 네루다

 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
 하구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이 매력적인 유성,
 호텔마다의 물결치는 발들,
 성급한 오토바이 주자들,
 바다로 달리는 철로들,
 폭주하는 차륜을 타고 달리는 엄청난 부동자세의 여자들.
 매주일은 남자들과, 여자들과
 모래에서 끝난다,
 무엇 하나 아쉬워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산으로 올라가고,
 의미도 없이 음악을 틀어 놓고 마시고,
 기진맥진해서 콘크리트로 다시 돌아온다.
 나는 토요일마다 정신없이 마신다,
 잔인한 벽 뒤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를 잊지 않고,
 죄수의 나날은 이미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엇갈리고, 내달리는, 웅성거림은
 바다처럼 그의 주변을 적시지만,
 그 파도가 무엇인지를 그는 모른다.
 야아, 이 분통이 터지는 토요일,
 제멋대로 날뛰고, 소리 소리 지르고,
 억병이 되게 마시는,
 입과 다리로 철저하게 무장한 토요일-
 하지만 뒤끓는 패들이 우리들과 사귀기를
 싫어한다고 불평은 하지 말자.


 김남주 시인께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네루다의 시 ‘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를 조용히 읊조리셨다.

 우리는 숨죽이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1990년 가을이었다.

 10년 동안 감옥에 계시다가 나오신 선생님.

 “소는 그런 좁은 곳에 10년을 가둬놓으면 죽지만 사람은 살아 나온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람에겐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정신’.

 90년대가 지나고 21세기가 오며 우리는 절망에 빠졌다.    

 우리는 항상 주문을 외웠다.

 ‘부자 되세요!’

 ‘무엇 하나 아쉬워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고,/종잡을 수 없는 산으로 올라가고,/의미도 없이 음악을 틀어 놓고 마시고,/기진맥진해서 콘크리트로 다시 돌아온다.’

 이렇게 부자 흉내를 내며 살았다.

 ‘나는 토요일마다 정신없이 마신다,/잔인한 벽 뒤에 감금되어 있는/죄수를 잊지 않고,/죄수의 나날은 이미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죄수들’의 이름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드디어 ‘모든 죄수들의 이름을 뺀 국정 역사교과서’가 등장하려했다.

 ‘야아, 이 분통이 터지는 토요일,/제멋대로 날뛰고, 소리 소리 지르고,/억병이 되게 마시는,/입과 다리로 철저하게 무장한 토요일-’

 우리는 절망했다.

 ‘88만원 세대’‘삼포 세대’‘헬조선’...... .

 하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빛나는 법이다.

 ‘새로운 천국을 건설한 사람은 누구나 먼저 자신의 지옥에서 필요한 힘을 얻었다.(니체)’

 우리의 가슴에 하나하나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끓는 패들이 우리들과 사귀기를/싫어한다고 불평은 하지 말자.’

 ‘뒤끓는 패들과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나 ‘뒤끓는 패들이 우리들과 사귀기를 싫어한다고 불평한 사람들’의 가슴엔 별이 뜨지 않을 것이다.

 토요일 한낮, 햇빛이 세상 가득 빛난다.

 해가 지면 오늘 밤에도 ‘헬조선의 지상’에서는 별이 하나 하나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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