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
분노가 터져서 책을 썼다(사마천) |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브레히트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나와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는 19세 소녀가 있다.
그 아이가 처음 공부하러 왔을 때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제 안의 ‘내면 아이’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요.”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야, ‘내면 아이’ 같은 게 어디 있냐?”
그녀는 몇 년 동안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낯설고 힘겨웠단다.
그래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상담을 받으며 항상 울고 있는 자신의 ‘내면 아이’를 알게 되었고 그 아이의 울음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창 꿈으로 부풀어 있어야 할 19세 소녀가 ‘어린 시절’ 때문에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과거는 없어! 현재가 힘들어 기억 속으로 도피하는 거지. 현재가 즐거워 봐. 누가 옛날 생각을 해?”
그 아이는 시를 읽고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며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촛불 시위에도 참가하며 씩씩한 소녀가 되어갔다.
우리는 사는 게 힘들면 ‘옛날엔 참 좋았는데.’ 라든가 ‘그때 그렇게만 안 되었어도.’ 하면서 ‘과거’를 불러낸다.
‘과거’는 얼마나 만만한가!
그러나 사실은 ‘현재’밖에 없다.
‘과거’ ‘미래’란 생각일 뿐이다.
고통은 오로지 ‘현재의 고통’일 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고통도 ‘사회적 고통’이 있을 뿐이다.
‘내면 아이’는 ‘헬조선’에서 느끼는 ‘내 탓이오!’일 뿐이다.
한 때 ‘내 탓이오!’가 유행하더니 ‘화를 다스리는 법’이 유행을 했다.
우리는 끝내 참지 못하고 광장으로 나왔다.
‘분노는 영혼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분노가 없는 사람의 마음은 불구이다.(T. 플러)’
‘내 탓이오!’와 ‘화를 다스리는 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구로 만들었던가!
‘내면 아이’까지 불러내 우리 마음의 불구를 받아들이게 했던가!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못생겼다 욕한다.’
구부러진 나무들인 우리는 이제 ‘헬조선’을 향해 분노를 터뜨릴 줄 알게 되었다.
‘분노의 함성’이 우리 모두의 영혼을 맑게 할 것이다.
그 아이도 이제 맑은 영혼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녀의 눈앞에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뚜렷이 보일 것이다.
‘헬조선’에서 제 정신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스스로 자책하지 말자.
우리 분노의 힘으로 ‘헬조선’을 ‘헤븐조선’으로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