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조선중앙통신> 첫 화면. 통신은 5일 창립 70년을 맞았다. [캡처-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분단 70년 세월이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북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 북한과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매일 수시로 우회경로를 통해 접속하는 매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사는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했듯이, 북한의 당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력한 언론기관인 <조선중앙통신>이 5일 창립 70년을 맞았다. 북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는 명실상부한 언론사인 <조선중앙통신>은 어떤 매체인가.

<조선중앙통신> 창간의 역사와 현재

<조선중앙통신>은 말그대로 북한의 중앙언론기관이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 내각기관지 <민주조선>, 군 기관지 <조선인민군> 등 성격을 분명히하는 매체와 달리, '통신사'라는 말처럼 북한에서 벌어진 다양한 일을 보도하는 언론매체인 것이다. 물론, '관영'이라는 수식어처럼 국가가 관리.감독해, 비판언론이 아닌 홍보.선전언론임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46년 12월 5일 창립됐다. 해방 이후 김일성 주석은 '강력한 보도선전기지' 건설 구상에 따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북조선통신사> 창립을 선포했다. 이후 1948년 10월 공화국 창건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초기 몇 대의 수동식 수신기로 기사를 작성했으나, 현재 컴퓨터와 위성통신체게를 구축해 명실상부한 통신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97년 1월 일본 도쿄지사라고도 불리는 재일총련 '조선통신' 사이트를 개설한 뒤, 2010년 10월 10일 공식 사이트 문을 열었다. 

여기에 북한과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문화, 대외관계 등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엮은 『조선중앙년감』을 매년 발간하고 있다. 1949년부터 현재까지 발행되는 년감은 북한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자료로 가치가 상당하다. 1995년에는 김일성 주석 사망 관련 '특별본'을 따로 펴내기도 했으며, 1998년 제50호에 국기훈장 1급이 수여됐다. 2005년에는 1970년부터 2003년까지의 내용이 CD로 제작됐다.

▲ 김창광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사진출처-조선의오늘]

<조선중앙통신>을 이끄는 '조선중앙통신사'는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사옥이 있다.

여타 북한의 매체와 동일하게 정치적으로 조직지도부, 일반적으로 선전선동부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편집국, △국내보도국, △사진보도국, △대외행사보도국, △국제연대성보도국, △국제정세보도국, △남조선국, △대외보도국, △번역국, △참고통신편집국 등 보도기능부서와 △조사처, △후방처, △대외사업처 등 지원부서가 갖춰있다.

국내보도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내외 활동을 담당하는 '정치행사보도부', 사상을 강조하는 '위대성보도부', 일반 행사를 다루는 '행사보도부', '경제문화보도부'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정세보도국은 '사회주의나라 보도부', '제3세계 보도부', '자본주의나라 보도부' 등을 두고 있다.

번역국은 기사를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해 제공하거나, 해외 언론의 기사를 번역해 자사에 활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조선국은 말 그대로 남측의 기사를 자사에 반영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참고통신편집국은 국제정세보도국과 남조선국 등에서 분석한 자료를 약 18개 등급으로 제작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간부들, 주요 기관에 배포하는 일을 한다. 일명 '백지통신이라는 자료를 별도로 제작해 김 위원장에게만 제공하거나 일부 자료는 통신사 사장, 노동신문사 책임주필, 조선중앙방송위원장 등에게도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를 포함해 약 2천여 명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사장은 김창광, 부사장은 로창덕, 리관삼, 리춘근, 리해룡, 리호규, 림호룡, 박현규, 송봉순, 양영만, 천일, 한성복, 홍현종 등이다. 

이 밖에도 신의주, 해주, 원산, 함흥, 청진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러시아 모스크바, 중국 베이징, 쿠바 아바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10여개 국에 특파원이 나가있다. 

'아시아태평양통신사기구' 회원인 <조선중앙통신>은 1949년 9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첫 기사교류협정을 맺은 뒤, 러시아 <타스>, 미국 <AP>, 일본 <교도통신>, 프랑스 <AFP>, 시리아 <SANA> 등 46개 통신과 기사를 교환하고 있다. 

남측 <연합뉴스>와는 2002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수신계약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연합뉴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위임을 받은 재일총련 <조선통신>과 계약을 체결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에 <연합뉴스>는 <조선중앙통신>과 독점계약을 이유로 일체의 통신 기사 재배포와 전제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연합뉴스>가 계약에 따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전재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유가 있다.

▲ <조선중앙통신사> 창립 70돌 기념보고회가 4일 평양에서 열렸다. [사진출처-조선의오늘]

<조선중앙통신> 5국 2세포.. "당과 정부의 대변기관이자 방조기관"

<조선중앙통신>은 과연 언론의 기능에만 국한되어 있을까. '관영'이라는 수식어처럼 단순 언론기능만 하지 않는다. 북한은 '당과 정부의 대변기관, 방조기관, 보도선전활동의 중심기지'라고 설명한다. 북한의 당과 국가를 대변하지만 당과 국가 건설과 발전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당과 국가의 유일한 공식대변자이며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당 사상전선의 전초전에 서 있는 위력한 보도기관"이라는 성격에 맞게, 김일성 주석과 부인 김정숙, 김정일은 수 차례 <조선중앙통신>을 현지지도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조선중앙통신>의 5국 2세포이다. 국제정세보도국에 속한 5국 2세포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던 1990년 11월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충성편지로 유명하다. "세상이 열백번 뒤집어져도 끝까지 충성을 다하겠다."

이에 김 위원장은 '당의 영원한 동행자, 충실한 방조자, 진실한 조언자가 되라'는 친필서한을 보내, <조선중앙통신> 5국 2세포가 전당의 본보기 세포로 강조하고, '충성의 당 세포창조운동'의 발단으로 마련했다. 당시 친필서한은 김 위원장의 첫 작품이다.

이후 2013년 안호춘 '5국 2세포'의 당세포위원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충성편지를 보냈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은 '사랑에 젖어있는 어머니 목소리..'로 시작하는 노래 '어머니의 목소리'를 답신으로 보냈다.

"1990년대초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가슴아픈 참상을 보면서 어버이장군님께 신념의 맹세를 다졌던 그때처럼 당세포를 경애하는 원수님만을 굳게 믿고 끝까지 따르는 참된 동지, 영원한 전우의 집단으로 꾸리며 어머니당의 사랑과 믿음의 목소리가 당원들의 심장마다에 울려퍼지게 하겠다." 

▲ 지난 9월 1일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기념 <조선중앙통신사> 상보. [캡처-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조선중앙통신> 5국 2세포가 보낸 이런 편지는 단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는 북한체제를 선전하고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의 임무를 맡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조선중앙통신사 성명', '조선중앙통신사 보도', '조선중앙통신사 상보', '조선중앙통신사 백서' 등의 형태로 당과 내각의 입장을 고스란히 밝히는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은 "당의 미더운 종군나팔수답게, 조국의 방방곡곡을 종횡무진하면서 전투적인 취재집필활동으로 대중을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고 <조선중앙통신> 70년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남측 일각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시각에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선전선동 지라시로 치부하는 것과 달리 <조선중앙통신>에 대한 인식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이는 통신이라는 이름만큼이나 북한의 소식을 제때에 알려주는 언론사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객관적이라고 평가한다.

언제인가 남북 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의 소식을 앞다퉈 통신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수정-6일 오전 10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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