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菲德尔•卡斯特罗是一个传奇 (환구시보 사설)
출처: http://opinion.huanqiu.com/editorial/2016-11/9736425.html (2016-11-26 18:23:00 环球时报)
역자: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쿠바 혁명의 영수 피델 카스트로가 현지 시간 11월 25일 저녁 향년 90세로 서거했다. 그는 그 시대의 ‘혁명 영수의 최후의 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때문에 그의 서거는 지난 시대의 회상을 가져왔고 바닷물과 같이 넘쳐나는 평가의 글이 쏟아져 나왔다.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한 차례 중병을 앓은 후 권력을 점차적으로 그의 동생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그의 동생 또한 전우인 라울 카스트로이다. 라울 카스트로는 이미 여러 해 동안 권력을 전면 장악해 왔기 때문에 피델 카스트로의 서거는 쿠바 정계에 충격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20세기를 넘어서 세계 역사적으로 풍운아 중 한 분이다. 그야말로 하나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최다의 암살 기도를 당했지만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소련은 그렇게 컸지만 쿠바는 그렇게 작았다. 그렇지만 소련은 무너졌고, 게다가 소련의 붕괴는 많은 사회주의 국가의 떼거지 붕괴를 가져주었지만, 쿠바는 건재했다. 그는 젊은 시절 초기 무장투쟁을 영도했고, 사회주의를 건설했고, 시장혁신을 지지했다. 그래서 ‘전 경력을 쌓은’ 유일한 영도자이다.

쿠바 인민과 라틴 아메리카 많은 국가의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가이고, 민족독립의 영웅이고, 또한 강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를 추구한 걸출한 전사이고, 전사의 품격을 일생동안 동반한, 그런 위대한 분이다.

그는 젊었을 때 상류층 가정 출신을 배반했고(뛰어 넘었고), 그 후 기존 세계에 대해 칼을 휘둘렀고, 온 청년시대를 갖은 고초를 겪으며 유량했고, 쿠바 인민의 무장투쟁 전개를 지휘했고, 정권을 쟁취하게 되었고, 드디어 쿠바에 사회주의 제도를 건설하였다. 만년에는 국가가 사회주의 경제 모형 갱신을 위한 탐색과 유사 상품경제를 지지하고, 국가경제의 연착륙을 추동해, 쿠바를 라틴 아메리카의 특수 지위에 전면적으로 안착시켰다.

피델 카스트로가 수행한 이 같은 모든 것 때문에 미국은 그를 아주 오랜 시간동안 적으로 여겼다. 서방의 여론은 보편적으로 ‘독재자’라는 모자를 그의 머리에 덮어 씌웠다. 그래서 쿠바와 미국과의 단교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어졌다. 그렇지만 카스트로는 구체적이고 탄력적인 외교 대책을 전개해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승리했고,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수많은 국가의 동정과 존중을 받기에 이르렀다.

카스트로는 민족독립과 국가주권의 추구를 중심에 두었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수호를 이끌었고, 시범을 보였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와 전우들의 사회주의 이상과 열정을 뒤따랐다(感染).

소련 해체 이후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그렇지만 쿠바는 오히려 기본 안정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질서 있게 개혁을 진전시켰다. 여기에서 피델과 그의 후계자 라울의 확고함과 지혜가 잘 구현되었다.

사회주의 사조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지금까지도 광범위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고, 피델 카스트로가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 깃발이 바람소리를 휙휙 내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땅 위에서 펄럭이고 있다.

미국은 냉전기간이든 냉전 이후이든, 라틴 아메리카든 또는 세계각 지든 상관없이, 약소국가를 겨냥해 끊임없이 전쟁을 발동시키고, 수많은 국가의 정권을 전복시켜 왔다. 그렇지만 미국은 쿠바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워싱턴은 수십 년 동안 제재와 공격을 계속했지만 쿠바 사회의 의지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드디어 오바마 정부는 몸을 낮추어 쿠바에게 평화의 상징인 오렌지 가지를 내밀어 양국의 국교를 회복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피델 카스트로가 탁월한 전략가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쿠바는 작은 나라이다. 세계조류를 만들 수 있는 역량도 없었다. 이 정도 규모밖에 안 되는 국가로서는 언제나 자기의 자주와 특색을 확고히 유지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카스트로의 쿠바는 오히려 국가 비전 곧, 나아갈 방향을 연속적으로 탐색하고 실현하였다. 오랜 동안 인민에 대한 복지를 쿠바 사회 통치의 중요위치로 차지하게 했고, 국가사회의 안정, 교육, 의료 등 사회복리는 상대적으로 훌륭했고, 라틴아메리카에 상당히 보편화 되어 있는 마약남용과 폭력범죄가 없다. 경제는 소련 해체 이후 일단의 비교적 어려운 시기가 있었긴 하지만 그 후 혁신의 길을 계속해 모색해서 새로운 국면을 점진적으로 타개해 나갔다.

서방의 선동 기구는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악마화 공격을 오랫동안 진행시켜 왔다. 그렇지만 실제 피델의 영도 하에 있던 쿠바는 결코 극단으로 흐르지 않았다. 대외정책은 아주 오랫동안 온화하고 개방적이었다.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주동해서 원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고 더구나 호전적이지도 않았다. 엉망인 쿠바와 미국과의 관계는 거의 미국의 대 쿠바 강압에서 이뤄진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중국인민의 오랜 친구이다. 일찍 소련시기가 쿠바의 중국관에 한동안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그 이후 피델 카스트로는 중국 사회주의 건설과 개혁개방이 이뤄낸 탄복할 결과를 결코 숨기지 않았고, 두 차례나 일찍 중국에 국빈 방문을 했다. 그는 중국과 쿠바의 견고한 우호관계를 건립하기 위해 탁월한 공헌을 발휘했다. 중국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남겨 놓은 뒷모습은 친절하고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부디 잘 가시기를 바란다.

社评:菲德尔•卡斯特罗是一个传奇
2016-11-26 18:23:00
环球时报

古巴革命领袖菲德尔•卡斯特罗当地时间25日晚上去世,享年90岁。他被广泛看成是那个时代的“最后一位革命领袖”,他的去世也因此会带来时代的回顾,引起潮水般的评说。

菲德尔•卡斯特罗2006年一场重病后就开始把权力逐渐移交给他的弟弟、也是他的战友劳尔•卡斯特罗。劳尔•卡斯特罗已经全面掌握权力多年,因此菲德尔•卡斯特罗的离去不会对古巴政坛带来冲击。

菲德尔•卡斯特罗是一位穿越了20世纪世界历史的风云人物。他是一个传奇。他被暗杀的次数最多,但他活得最久。苏联那么大,古巴那么小,然而苏联垮了,还带走了一大批社会主义国家,但古巴坚持了下来。他领导了古巴早年的武装斗争,建设社会主义,支持市场革新,是唯一“全经历了”的领导人。

对古巴人民、包括对拉美很多国家的民众来说,菲德尔•卡斯特罗是一位革命家、民族独立的英雄,也是不畏强敌追求自由的杰出战士,战士的品格伴随了他的一生。他年轻时背叛了家庭出身,之后向旧世界开刀,整个青年时代颠沛流离,带领古巴人民开展武装斗争,直到夺取政权,在古巴建立了社会主义制度。晚年他支持国家探索社会主义经济模式更新,类似商品经济,推动国家经济软着陆,全面奠定了古巴在拉美的特殊地位。

菲德尔•卡斯特罗所做的这一切使他在很长时间里被美国视为敌人。西方舆论普遍将“独裁者”的帽子扣到他的头上,然而在古美断交的漫长岁月里,卡斯特罗开展务实灵活的外交对策,赢得拉美地区、乃至全世界很多国家的同情和尊重。卡斯特罗围绕民族独立、国家主权的追求和捍卫在拉美地区起了引领、示范作用,他与战友们的社会主义理想和激情感染了很多人。

苏联解体后,很多社会主义国家跟着巨变,但是古巴却保持了基本稳定,一步步走上有序的改革。这也体现了菲德尔和他的继任者劳尔的坚定与智慧。

社会主义思潮在拉美至今有着广泛影响,菲德尔•卡斯特罗到死都是那块土地上猎猎飘扬的一面旗帜。

美国无论冷战期间还是冷战后,无论在拉美还是在世界各地,都针对弱小国家不断发动战争,颠覆了很多国家的政权。但是美国就是拿古巴没有办法,华盛顿长达数十年的制裁也没能击垮古巴社会的意志。最后奥巴马政府屈尊向古巴伸出橄榄枝,恢复了两国邦交。这一事实也反映了菲德尔•卡斯特罗是位卓越的战略家。

古巴是个小国,没有力量制造世界潮流,这种规模的国家常常连坚持自己的自主和特色都不太容易,然而古巴却实现了国家道路探索的连续性。长期以来人们的福祉被放在古巴社会治理的重要位置,这个国家社会安定,教育、医疗等社会福利相对不错,没有在拉美相当普遍的毒品泛滥和暴力犯罪。它的经济在苏联解体后有一段比较困难的时期,但后来也摸索走上革新之路,新的局面逐渐打开。

西方宣传机器长期对菲德尔•卡斯特罗进行妖魔化攻击,然而实际上菲德尔领导下的古巴并不走极端,它的对外政策在大多数时间里温和而开放。它从未对外主动结仇,更未穷兵黩武,糟糕的古美关系很大程度上是美国强加给它的。

菲德尔•卡斯特罗是中国人民的老朋友。苏联时期曾一度影响了古巴对中国的看法,但在那之后,菲德尔•卡斯特罗毫不掩饰对中国社会主义建设和改革开放成就的钦佩,曾两次对中国进行国事访问。他为建立牢固的中古友好关系做出卓越贡献。对中国社会来说,他离去的背影是亲切、难忘的。祝愿他走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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