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석 / 소통과혁신연구소 연구위원

 

신라 때에 여왕이 세 명 있었는데 마지막 여왕이 진성여왕이다. 진성여왕은 신라의 51대왕으로서 48대 경문왕의 딸이자 49대 헌강왕, 50대 정강왕의 누이 동생이다. 정강왕이 죽기 전에 유언으로 자신의 누이를 지목하여 세 번째 여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진성여왕은 즉위 초에는 죄수들을 대사면한다거나 조세를 면제해 주는 등 나름대로 정사를 이끌었다. 그러나 즉위 이듬해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삼국사기> ‘진성여왕 2년’조의 기록을 보자.

“왕이 전부터 각간 위홍을 좋아하며 지내더니, 이때에 이르러서는 항상 대궐에 들어와서 일을 보게 하였고 그에게 명하여 대구화상과 함께 향가를 수집하게 하여 <삼대목>이라 이름하였다. 각간 위홍이 죽으니 시호를 추증하여 혜성대왕이라 하였으며 왕은 이후로부터 두세 명의 미소년을 불러들여 음란한 행위를 하고, 그들에게 국가의 요직을 주어 국정까지 맡기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들이 방자해지고, 뇌물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상벌이 공평하지 못하고 기강 또한 문란해졌다.”

각간 위홍은 진성여왕의 유모인 부호부인(鳧好夫人)의 남편이다. 진성여왕이 즉위하자 부호부인과 그 남편이 정사에 개입하여 국정을 농단하였는데, 각간 위홍은 진성여왕과 내연의 관계였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그리고 최순실 관련 이야기가 연일 신문과 방송을 도배질해오고 있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제기된 데다, 그의 사위인 정윤회와의 관계마저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들의 정사 개입을 통한 국정 농단은 천 년 전 진성여왕 때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과연 국정을 농단한 세력이 정윤회나 최순실 일가 등 몇몇 인사들이었을까?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보면 정윤회나 최순실 등도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어둠의 세력들 가운데 전면 배치된 행동대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보수세력이 집권하는 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된다면 사정은 다르다.

최근의 정국의 흐름을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니 야권은 분열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어둠의 세력은 분주하다. 자신들이 내세운 박근혜를, 그리고 행동대장으로 내세운 정윤회와 최순실을 희생시키더라도 정권교체만 되지 않는다면 좋다는 일념 때문이다.

87년 체제로 대표되는 대통령직선제로는 더 이상 정권유지가 힘들겠다는 판단을 한 어둠의 세력들은 이원집정부제를 전제로 한 개헌카드를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그대로 노정시키면서까지, 국민적 분노를 들끓게 하면서까지 개헌의 물꼬를 트려고 한다.

얼마 전 방영된 바 있는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 보면 ‘무명’이라는 조직이 나온다. 신라 때부터 이어져 왔다는 이 조직은 자신들이 사실상 왕조와 군주를 넘어서서 이 나라를 지배하는 집단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온갖 이권에 개입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으려 한다. 거꾸로 기득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이나 개인은 그 누구라도 제거하려 한다.

지금 대한민국도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무명’과도 같은 세력이 판을 짜려 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 모두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게 나라냐!’는 학생들의 외침에 기성세대의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정국을 돌파하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도가 있다.

그 하나는 혁명적 변화다. 범국민적 분노-그것을 어둠의 세력이 조장하였든 아니든-를 극대화하여 일시에 체제를 바꾸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여와 야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거국내각이니 거국중립내각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광복 직후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준하는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체제를 1년 동안 위태롭게 지속시켜 내년 연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것이다. 그것이 목표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교집합을 극대화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수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87년 6월 항쟁이 민주화를 염원하는 범국민적 항쟁이었다면 지금의 항쟁은 비정상적인 나라를 정상적으로 만들자는 것이기에 그 규모나 참여 정도는 더욱 폭발적일 것이다. 그러니 6월 항쟁 30주년이 되는 2017년 6월까지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한 범국민적 항쟁을 잘 조직해야 한다. 전자냐 후자냐는 그때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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