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왜 유독 라선시에서 선교사들의 억류사태가 발생하나?
     
1993년 이전까지는 남한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북한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나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합법적인 방북이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서 해외동포들의 방북도 문전성시를 이루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때부터 경제특구로 지정된 나진선봉을 비롯해 북한 영토 내에서 남한과 해외동포 사역자들이 구금되거나 억류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억류자들은 대부분 대북지원이나 구호활동을 하는 기독교 사역자들이었으며 지금도 억류되어 있거나 노동교화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에서 체포된 외국 국적의 해외동포나 남한 국적의 기독교 사역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사법절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북 정보당국이나 보위부에서는 특정인에 대해 의심이 가거나 신고가 접수되면 혐의를 증빙하기 위해 은밀하게 내사를 벌이거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가 혐의가 입증될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면 범법행위 현장을 덮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체포해 신병을 확보한다. 그리고 집중조사를 통해 혐의가 인정되면 이때부터 법적 조치 수순에 들어가는데 그 과정을 보면 대략 ‘체포’-‘제한조치’-‘집중조사’-‘구금’-‘기소’-‘재판’-‘형집행’-‘교화소 수형생활’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서방세계에서는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통 털어서 그냥 ‘억류’라고 표현할 뿐이다. 보위부나 북 정보당국에서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죄목은 간첩행위나 체제전복 혹은 최고지도자를 중상 모략하는 언행들이다. 이러한 혐의들은 심각한 중범죄로 취급당하며 그중에서도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소위 ‘최고존엄 모독’과 관련된 혐의는 무기징역이나 종신노동교화형 혹은 처형 등의 판결을 내린다.
    
북한이라는 국가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실제 인민들의 사회생활면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철학에 무장된 인민들은 대부분 종교에는 관심이 없으며 분단 70년 동안 그런 사회체제로 변모하고 말았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북한 당국은 인민들의 종교를 권장하지도 않고 압제하지도 않는다.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는 타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에게는 제한이 있도록 법제화되어있다.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들이 북 영토 내에 들어와서 북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비합법적, 불법적으로 선교나 포교활동을 하는 행위는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들은 간단하다.

현재 북한은 한국전쟁 정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지속적인 대립 관계에 있는 상황이며 최근 들어서는 더욱 악화되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만큼 기독교 복음 전파를 가장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체제전복 세력으로 간주하거나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 철저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 소속의 선교사가 중국을 경유해 북한에 들어오거나 미국 등 서방세계 선교사가 북한에 들어와 활동하는 경우 대부분 보건, 복지, 의료, 식량 등의 지원과 농어업 지원, 공장설립과 기업활동 등을 통해서 라선시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이후 어느 정도 기반을 닦거나 북 당국이나 관료들, 인민들의 신뢰를 어느 정도 얻는 단계에 도달하면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선교행위에 돌입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결국 발각되는 사태가 꼬리를 물고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때문에 라선시를 정기적으로 왕래하거나 장기체류하는 대북지원자들이나 크리스챤 기업인들은 항상 자신이 보위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하고 항상 자신들을 예의주시하거나 상시적으로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북 당국은 4대 경제특구에서 자본주의 폐단이 유입되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와 정보력을 동원해 체제를 지키고 있으며 의혹이 가는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고 있다. 게다가 라선시에서는 입국한 모든 사역자들의 활약상이 노출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 정보 당국이 자신의 행동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거나 모르는 척 할 뿐이다. 또한 북 보위부나 정보당국은 혐의점이 발견된다고 해서 무대포식으로 체포하거나 억류하지 않는다. 그동안 라선시에서 발생한 억류사태의 사례들을 통해 공통적으로 확인된 것은 무작정 느닷없이 체포하지 않고 혐의가 엿보이면 사전에 서너 차례 경고하거나 알기 쉽도록 주의를 준다. 그래도 끝까지 경고를 무시하는 경우에는 체포와 억류로 이어지는 것이다.

 라선시에서 발생했던 대표적인 억류 사례들
     
북 영토 내에서 선교와 전도 혹은 포교 목적 하에 북 인민들을 대상으로 성경책 종교경전 혹은 이에 따른 전도용 책자나 전단지, CD/DVD 등을 배포하는 행위는 매우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또한 예배시간에 은밀하게 북 인민들을 끌어들이는 행위들은 북 당국에 의해 범죄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즉시 체포되거나 억류조치를 당해 법적인 심판을 받는다. 평소 라선시나 북한 본토를 자주 왕래하는 대북 사역자들이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은 북한에 방문할 때 뿐 아니라 남한이나 해외에 가서도 북한 관련 발언들을 조심해야 한다. 일반교회나 기독교 기관 혹은 교회연합행사나 국내외 선교대회에 초청을 받아 강연이나 간증, 강의, 설교를 할 때 북한 체제나 최고지도자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거나 험담하면 그것이 결국 빌미가 되어 신변에 불리해진다.
     
특히 대북 사역자들은 직책과 업무의 특성상 강연이나 언론 인터뷰, 방송출연에 자주 노출되기 쉬운데 이때 자신의 발언이 북 당국에 모니터링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자신의 각종 집필활동과 강연 내용들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항상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대북사역을 은퇴하고 회고록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나 보안유지와 언행에 유의하는 것이 좋다.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단골메뉴로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북한 붕괴 예측 발언’과 ‘북 지도자에 대한 험담’ 그리고 ‘북 체제비판’이기 때문에 공개석상에서는 이런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편 대북 사역자들은 북한을 악마화하고 적대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사대주의 수구세력들의 대북관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북을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식견과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대북 사역자들이 실수하는 언행들은 대부분 북한 인민들이 헌법의 의미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유일사상 10대 원칙’에 위반되는 중범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체포되면 사법부나 군법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필자가 여러 차례 방북하면서 파악한 바로는 북 당국은 순수한 차원에서의 개인의 종교생활이나 신앙생활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방북 시 개인적으로 드리는 예배나 기도는 물론 함께 방북한 단체나 그룹에서 드리는 기도생활과 예배활동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북 인민들이 보는 공개된 장소나 인민들을 예배장소로 끌어 들이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으며 인민들에게 직접 전단지를 배포하며 기독교를 전파하는 행위도 강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그동안 라진선봉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억류사례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들 몇 가지만 선별해 경각심을 갖도록 할 것이며 선교전략과 방법상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1998년 6월 나진선봉 지역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돼 3개월(103일간)간 억류된 후 풀려난 미국 LA의 이광덕 목사가 그 대표적 사례에 해당된다. 이 목사의 체포는 미국 국적 목회자에 대한 최초의 억류사태였다. 그 후 2007년 11월 3일 캐나다 시민권자인 김재열 목사가 라선시에 자신이 설립한 치과병원에서 “인민들이 보는 공공장소에서 종교행위를 했다”는 혐의 등으로 억류되었고 이어서 2009년 12월 25일 성탄절에는  “김정일 하야”,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주장하며 방문 비자도 없이 두만강을 무단으로 건너  월북해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43일 만에 석방된 로버트 박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시민권자로서 교포 2세 청년인 그는 평소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상태에서 북 최고지도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이다.
     
또한 2010년 11월에는 미국과 한국 두 곳에 각각 본부를 두고 있는 보수적인 북한선교단체인 ‘모퉁이돌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미국시민권자인 전용수 목사가 북측을 자극하는 공격적 선교 행위로 인해 억류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서 2012년 11월에는 미국의 ‘예수전도단’ 소속 선교사인 미국 시민권자 케네스 배 목사가 종교 활동을 통한 정부 전복혐의로 북 당국에 체포되어 이듬해 4월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 15년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미국인으로는 가장 최장 기간인 2년간의 복역생활을 하던 중 석방되었다.
    
이어서 2015년 1월 31일에는 캐나다 시민권자로서 전문적인 대북사역 활동을 하던 임현수 목사가 라선시에서 평양으로 이동한 후 억류되어 그해 12월 16일 북 최고재판소에서 국가전복 음모 등의 혐의로 종신노동교화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중에 있다. 임 목사는 연락이 투절된 지 6개월 만인 7월 3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중상 모독하고 국가 전복 행위를 감행했으며 이 모든 행적이 범죄 행위임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라는 사죄문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며 억류 사실이 최초로 확인되었다.
   
또한 2015년 4월 8일에는 미 서부 LA에 본부를 둔 민간 구호단체 ‘위트 미션(Wheat Mission)’ 대표로서 왕성한 대북 구호활동을 해온 한국계 미국인 서계옥 권사(미국명 산드라 서) 억류됐다가 보름 만에 석방되어 추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어로 ‘미주 밀알선교단’이라는 단체를 이끌며 수십 년 넘게 대북 지원 활동을 해 온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북 사역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돼 대북 사역의 ‘대모’로 불렸다.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식량, 의류, 신발, 담요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고 장애인 복지회관을 건축하는데도 크게 일조하는 등 북한의 신뢰를 받으며 활동해왔다. 심지어 과거에는 미국에서 북한을 갈 때 서 권사를 통해서 북한비자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북 정보 당국에서는 3월말 방북 시 갑자기 억류했는데 그 혐의를 들어보면 “근 20년 동안 무상기증의 명목으로 조선(북한)에 드나들면서 반공화국 모략, 선전행위에 가담했으며 지난 1998년부터 조선(북한)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하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제작 연출해 우리 조선을 모략해 왔다. 이는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공화국 법을 위반한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죄를 했다. 그러나 공화국 법의 관대성과 산드라 서의 연령을 충분히 고려해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70대 후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북 지원에 헌신한 서 권사는 지병과 고령이라는 이유로 특별 배려를 받고 재판 없이 석방된 것이다. 서 권사가 억류될 무렵 북한에서는 1월 임현수 목사 체포 사건 외에도 2월에는 평양에 상주하던 독일 구호단체인 ‘세계기아원조’의 평양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벨트훙게르힐페’를 추방하는 등 대북 지원단체와 사역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검증작업을 벌이던 시기였다. 서 권사가 결정적으로 체포된 사유들 중에 하나는 비공식적으로 이산가족들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혐의가 발각된 듯했다. 그 후 미국 얼바인 온누리교회를 출석하던 서 권사는 북에서의 억류 충격과 지병으로 인해 이듬해에 LA에서 향년 80세로 병사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미 동부 버지니아주의 박시몬 목사가 설립한 ‘미주북한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김동철 목사가 2015년 10월 2일 라선시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됐는데 그는 이듬해인 2016년 4월 29일 열린 재판에서 ‘국가전복음모’ 등의 죄목으로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또한 현재 북한에는 남한에서 북으로 건너가 억류된 목회자와 선교사들도 여러 명이 있다. 2013년 10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김정욱 선교사가 체포돼 간첩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에 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총회 소속의 김국기 목사와 최춘길도 체포되어 2015년 6월 23일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다.

이번 중편과 하편 방북기에서는 미국시민권 목사 중에 최초로 억류된 남가주의 이광덕 목사를 필두로 전용수 목사와 케네스배 목사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며 이어서 캐나다 시민권자인 김재열 목사와 임현수 목사의 사례를 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은 미국시민권자 김동철 목사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나진선봉에서의 억류사태에 대한 해법과 대안책을 찾고자 한다.

1. 최초로 억류된 미국교포 이광덕 목사
     
미주 국적의 해외교포들이 북한에 억류된 사건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이광덕 목사는 미국인 역사상 최초로 라선시에서 억류되었는데 그는 평소 1970년대부터 LA한인사회에서 한국문화를 미 주류사회에 전파시키고 북한과 중국과의 문화교류에 힘써온 인물이다. 평양 출신의 실향민인 그는 한국전쟁 때 단신 월남한 뒤 60년대 초 도미,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이후 ‘아주문화중심’, ‘고려문화센터’ 등의 단체를 만들었으며 남가주 한인사회에 ‘한국문화회관’을 건립하기도 했으며 그동안 수십 차례 북한을 오가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지원 활동과 투자사업, 문화교류사업 등을 벌여왔다.
     
당시 LA에서 베벌리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던 중 고령으로 인해 은퇴한 그는 대북사역에 올인하며 지난 1992년에는 한국 기독교가 모은 ‘사랑의 쌀’ 800톤을 북한에 전달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으며 96년 12월 나진선봉시 행정경제위원회 김경운 위원장으로부터 고려문화센터 지사 설립과 투자유치권을 위임받을 정도로 북한과 두터운 교류관계를 맺은 인물이었다. 또한 남한 내 기독교 인사들의 도움으로 나진선봉 인근에 국수공장을 설립했던 그가 1998년 5월말 라선시에서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느닷없이 체포된 것이다. 당시 북 공안당국에 여권을 압수당한 채 조사를 받았고 그때부터 8월말까지 무려 3개월간 억류된 것이다.
     
미 국적의 재미동포가 북한 라선시에서 억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목사가  억류된 주 원인은 간첩혐의였으며 특히 북 보위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이 목사와의 관계를 집중 추궁했는데 북측은 이 목사 자신은 물론 한국과 중국 미국 등에 있는 친지들까지도 안기부와의 관련성을 캐기 위해서 집중 조사를 했다. 어느 날 이 목사가 북한 인민들이 들고 다니는 일종의 식량주머니를 중국화폐 100위안에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북측은 이런 행위가 어려운 식량사정을 외부에 유출시키는 간첩행위로 간주했던 것이다. 또한 그가 LA이민사회에서 한국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알리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한때 청와대 등으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이 목사의 이런 이력도 북 당국에서는 의혹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 목사는 간첩혐의 외에도 북한과 체결한 투자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경제사범 혐의가 추가되었다. 이 목사가 38만 달러에 달하는 장공장과 국수공장 투자계약을 라선시 측과 맺었으나 아무런 통보 없이 계약기간을 위반해 북측에 12만 2000불의 재정적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를 받고 손해배상을 요구받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건은 애당초 장공장과 국수공장을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가 책임진다고 약속해서 북측과 계약을 추진했으나 나중에 김진홍 목사 측에서 번복하며 취소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하며 이 목사가 책임을 뒤집어 쓴 것이다. 결국 이 목사는 북측이 요구하는 금액의 일부를 미국의 가족을 통해 송금하고 나서야 석방되었다. 항간에 알려진 대로 12만 2000 달러 전액을 송금했다거나 거액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평소 북한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도 교류가 활발한 이 목사는 ‘라진고려식품합영회사’ 대표 자격으로 라진선봉에 위치한 국수공장의 노후 설비 교체와 장공장 설립 등을 목적으로 자주 방북했으며 97년 7월부터 라진선봉시 행정경제위원회와 식품회사를 합영으로 운영해 왔다. 이 목사의 혐의 중에 하나는 오랫동안 이산가족 상봉 활동을 벌여오는 과정에서 남쪽에 친지를 둔 북한 주민의 편지를 남측에 전달하기 위해 은밀히 건네받은 것이 단초가 됐으며 그 외 여러 가지 혐의가 될 만한 사안들이 누적돼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 목사의 억류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은 북측과 계약을 할 때는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서명해야하며 일단 계약을 성사시켰을 경우 철저하게 신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할 경우에는 납득할 만한 사유를 북측에 고지해서 일방적으로 재정적, 인적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남측 정보기관이나 중요한 핵심 권력기관과 연관이 있을 경우에는 사전에 미리 고지하여 북측에서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미국 시민권자로서 최초로 라선시에서 억류된 이광덕 목사가 자신이 설립한 ‘한국문화회관’ 설립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이광덕 목사가 미국 남가주의 어느교회에서 자신의 억류시절을 회고하는 간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2. 캐나다 시민권자 김재열 목사의 사건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치기공으로 일하다 뒤늦게 목사안수를 받은 김재열 선교사는 북한 주민에 대한 보건, 복지의료 지원을 위해 1997년 라진에 치과병원에 해당하는 ‘라진구강예방원’을 개원했고 그 후 ‘고려의학병원(고려한방병원)’, ‘산원병원(산부인과)’, ‘창평유치원’, ‘장애인치료센터’ 등의 의료시설들을 연이어 지원 해 오던 중 갑자기 억류되어 3개월 동안 구금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그는 과거 북한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전 재산을 정리한 뒤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해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캐나다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노회와 에드먼튼 제일장로교회 파송 선교사로서 라선시에 파송된 상태였다.
    
파송되기 전부터 북한을 선교지로 정해 놓고 라선시를 드나들며 자신이 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오던 중 북한 당국의 승인과 협조 하에 구강병원을 설립해 라선시 인민들을 대상으로 의료와 교육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왔다. 병원은 2천 3백 평의 대규모 시설이었으며 김 선교사와 함께 일하는 북측의 의사와 간호사도 모두 합치면 100명이나 될 정도였다. 그처럼 헌신적인 의료 봉사 활동에 주력해왔던 그가 2007년 11월 3일 느닷없이 “인민들을 선동해 교회를 세우려고 한다”는 죄목으로 북 보위부에 의해 억류된 것이다.          
    
그러나 평소 북 당국은 김 선교사의 봉사활동과 치과 진료소 설립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며 영주권에 해당하는 ‘거주권’도 발급해주었다.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배려를 해 그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예배 참여 권유 활동을 허락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알고 보니 김 선교사가 억류된 된 단초는 노트북 컴퓨터에서 시작되었다. 2006년 7월 하순 라선시에서 캐나다로 출국하려던 김 선교사는 중국 훈춘지역 쪽에 있는 권하통상구(권하세관)를 통해 출국하기 위해 라선시 쪽에 있는 원정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하던 중 검문검색 과정에서 노트북을 압수당한 것이다. 노트북 안에는 그동안 라선시에서의 다양한 활동내용과 영상물들이 상당수 담겨 있었는데 북 당국과 보위부에서 볼 때 이런 자료들이 북 당국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판단한 것이다.
    
노트북은 압수당했으나 그 후 8월말에 캐나다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라선시에 입국한 김재열 목사는 예전처럼 의료봉사를 하던 중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전격 체포되며 보위부의 집중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노트북에 있던 각종 자료와 영상물들을 확인한 북 정보 당국은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고존엄을 모독하고 인민들을 선동해 교회를 세우려고 했다”는 혐의가 추가되었으며 결국 본인으로 하여금 그런 내용의 자술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이후 자신이 체류하는 호텔숙소에서 석달 동안 구금된 상태로 지냈다.
    
사업상 외국에서 라선시를 방문한 장기 체류자가 평소 자신의 호텔이나 숙소에서 주일예배나 각종예배를 드릴 경우 북 정보 당국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으며 문제를 삼지 않는다. 하지만 인민들이 드나드는 공공장소나 공개 장소에서의 예배는 불허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김 목사는 이런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진료하는 치과 공간에 딸린 임시숙소에서 북 의료진들과 인민들이 드나드는 가운데 예배를 드린 것이 발단이 됐다. 이와 관련해 북 당국은 평소 김 목사에게 여러차례 지적을 했으나 이를 무시하며 공개예배를 강행하자 결국 법적인 제재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대해 북측 관료들은 라선시를 방문한 캐나다 영사에게 아래와 같이 자신들의 입장을 항변하기도 했다.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데 여러 차례의 경고를 무시한 김 목사님의 처신은 그 수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간첩행위 같은 심각한 반체제 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잘못을 시인하기만 하면 곧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결코 종교탄압의 측면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전적으로 김 목사님이 우리 공화국의 원칙을 무시한 것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당시 캐나다의 한인교단과 노회, 에드몬튼 지역 연합교회 등은 그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구금 직후인 12월부터 대사관과 영사관에 팩스와 이메일을 보내는 등 구명운동을 진행해 왔고 캐나다한인회총연합회는 토론토, 오타와, 밴쿠버 등 11개 지역 캐나다 한인회장들이 서명한 진정서를 연방정부에 보내 억류 문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구금 직후인 12월 20일 결국 캐나다 영사가 라선시를 직접 방문해 김 목사를 면담했고 이듬해 1월 둘째 주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다시 방북해 김 목사와 40분에 걸친 면담을 했다. 결국 2008년 1월 23-25일까지 리프먼 캐나다 대사가 라선시를 방문해 김 목사를 면담하고 북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재발방지를 약속한 1월 26일, 구금된 지 85일 만에 석방되어 본국으로 출국했다.

▲ 캐나다 김재열 선교사가 설교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자신이 설립한 치과병원에서 공개예배를 드린 혐의로 억류되었던 김재열 선교사. [사진제공 - 최재영]


3. ‘모퉁이돌 선교회’ 소속  전용수 목사 사건
      
미국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에 아내와 1남 1녀를 두고 있는 전용수 목사(영어명 Eddy Jun)는 평신도로 신앙생활하던 중 나성순복음교회에서 장로로 임직받고 다시 얼바인 소재 베델한인교회로 옮기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2000년대 초반에 베델한인교회를 떠나 가까운 곳에 본부를 두고 있는 ‘모퉁이돌 선교회’를 통해 공산권 선교사 훈련을 받은 후 중국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중국 현지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다시 라선시를 오가며 다양한 선교활동을 펼치는 북한선교사가 되었으며 선교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라선시에서 농기계 생산공장인 ‘나선변강뜨락또르’ 공장을 운영해왔다.
    
전 목사는 평소 중국에서 정기적으로 수입한 뜨락또르(트랙터)를 라선시 인민들에게 기증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공장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들에게 대우도 매우 잘해주어 라선시에서 신망이 높았다. 그러나 라선시 당국으로부터 거주권을 받지 못한 전 목사는 중국 훈춘에 셋집을 얻어 생활하며,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라선시를 왕래하며 사업을 운영해왔는데 이는 북 당국이 미국 국적의 신분을 지닌 전 목사의 장기 체류를 부담스러워하여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평소 전 목사가 라선시를 방문하면 체류하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며 대부분 중국에서 자신의 업무를 봤다.
     
또한 전 목사가 라선시에서 트랙터 공장을 차리며 북측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북측은 이윤의 30%를 기증할 것을 요청해 명시하기도 했다. 그 후 중국 산동성과 천진시 등지에서 18마력에서 최고 90마력짜리 트랙터를 한 달에 100여대 가량을 라선시로 반입했으며 이때마다 전 목사는 북측과의 약속대로 트랙터 중에서 30%는 북측에 기증했고, 나머지 70%는 판매를 했으며 트랙터를 정비하거나 수리를 해주는 사업도 병행해왔다. 이 트랙터 공장은 평소 북측 노동자 50여명을 고용했는데 그들에게 급여와 대우도 잘해주어 매달 50kg의 식량을 무상으로 나눠주거나 계절별로 옷을 사주기도 했다. 또한 1인당 월급을 인민폐로 120원을 지급하는 등 다른 기업들 보다 대우가 남달라 라선시 간부들 자녀들이 많이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 목사는 선교전략 차원에서 트랙터 공장을 운영했던 것이며 그 이면에는 선교회의 방침과 전략에 의해 움직였던 것이며 이로 인해 2010년 11월 전격 체포된 것이다. 그가 체포되자 북측은 처음에는 그의 혐의를 밝히지 않은 채 기소할 방침이라고만 밝혔으나 곧 이어 “미국인 전용수가 조선에 들어와 반공화국 범죄행위를 감행해 지난해 11월 체포됐으며 해당 기관의 조사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조사 과정에서 심한 구타를 당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북 당국은 “조사 결과 전용수가 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중략) … 본인도 자기의 범죄행위에 대해 솔직히 인정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전 목사의 체포와 동시에 중국 조선족 동포 두 명도 체포되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은 거의 3년 동안 전 목사와 함께 동거동락하며 함께 일했던 조선족 동포였다. 이들도 라선시로 입국하자 전 목사와의 관련성과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집중 조사를 받았으며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북 당국은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두 명을 다시 중국으로 추방했다. 당시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억류중인 전 목사도 심한 구타를 당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선뜨락또르공장’은 잠정 휴업 상태에 들어갔으며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위부가 밝혀낸 것은 ‘모퉁이돌 선교회’가 추구하는 지하교회 활동에 대한 혐의점이었다. 전 목사가 소속한 선교단체는 국내외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대북 선교활동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입체적인 지하교회 운동과 북한말로 번역된 성경책 반입사업에 주력하는 단체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이 단체는 자신들의 선교활동을 외부에 홍보하고 국내외 교회들로부터 재정 후원을 받기위해 컬러판으로 매월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고 있었다. 이 잡지는 우편물이나 인편으로 전 세계 안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져있는 상태에 있는데 보위부에서는 잡지를 통해 이 단체가 북한 영토 내에 이미 점조직으로 넓게 퍼져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집중 취조했던 것이다.
    
북 당국이 전용수 목사 억류사건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했는가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카터는 북측 지도부에  전용수 목사의 석방을 정중히 요청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에 대해 당시 카터 대통령은 자신의 재단에서 운영하는 ‘카터센터’ 사이트에 방북 보고서를 올리면서 북측에 의해 차갑게 거절당한 사실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나는 평양을 방문한 첫날 인도적 차원에서 ‘에디 전(전용수 목사)’을 석방해 달라는 서면요청서를 박의춘 외무상에게 전달했으나 다음 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당신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나 라선시 보위부에서는 트랙터 공장 운영 외에 이미 전 목사의 은밀한 지하교회 활동과 성경 반입 활동 전략에 대해 이미 경고한 바 있으나 이를 무시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다가 결국 체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조사과정에서 자신들이 파악한 실태보다 의외로 넓게 확산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던 것이다.
   
한편 전 목사가 체포되자 그의 가족들과 소속한 선교단체에서는 카터 전 대통령과 미 의회 관계자들에게도 구명을 요청했으며 당시 오렌지 카운티 지역의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는 친한파 의원 에드 로이스(현 하원 외교위원장)에게 도움을 약속받기도 했다. 그 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조사를 마치고 억류 상태에 있던 전 목사는 북 당국으로부터 가족과 전화통화를 허용 받는 등 완화된 분위기에서 억류생활을 보냈으며 미국의 요청에 따라 전 목사를 석방하기 위한 스웨덴 외교관들은 전 목사를 무려 8차례 면담했으며 계속해서 다각도로 노력한 결과 2011년 4월 27일 미국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가 직접 방북해 북 지도부에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교섭을 벌인 결과 이튿날인 4월 28일 억류된 지 6개월 만에 전격 석방됐다.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보수적인 선교단체가 추구하는 ‘민족 복음화’와 ‘예수 민족화’라는 극단적인 신앙관과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그릇된 선교개념에서 비롯됐다. 이런 식의 방법은 통일을 이뤄야 할 우리 민족 전체 공동체에게 유익하지 못하다. 대한민국은 개신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 불교, 유교를 비롯해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사회이며 통일의 주체는 다양한 종교를 믿는 모든 이들이 해당된다. 통일지향적인 관점에서 볼 때 타종교도 함께 공유하고 동참하는 원칙이 있어야 하며 제국주의적 선교나 외재적 접근방법이 아닌 내재적 관점에서의 북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 2011년 5월 28일, 미국 시민권자인 전용수 목사가 석방되어 대북 인권특사 로버트 킹(왼쪽)과 함께 평양을 떠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모퉁이돌 선교회’소속의 전용수(에디 전) 선교사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4. ‘예수전도단(YWAM)’ 소속 배준호(裴埈皓) 목사 사건
    
2012년 11월 ‘종교활동을 통한 정부전복’ 혐의로 라선시 보위부에 체포된 케네스 배(Kenneth Bae) 선교사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2013년 4월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2년만인 2014년 11월 9일 석방되었는데 이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인으로서는 가장 최장기간인 735일간의 억류기록이다. 이 사건을 표피적으로 볼 때 단동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배 선교사가 관광목적의 외국인들을 인솔해 라선시에 입국했다가 체포된 것으로만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는 남한의 유명한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초대감독이자 mbc청룡팀을 이끈 배성서 감독이다. 배 감독은 평북 영변이 고향인 실향민이었기 때문에 평소 부친의 영향을 받은 배 선교사는 성장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비전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배 감독은 영남대학교 야구감독 시절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유명해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실제 배경이 된 인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1968년 8월 1일 한국에서 태어난 배 선교사는 당시 홍정길 목사가 개척한 남서울은혜교회 중등부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1986년도 18세의 나이로 미국에 이민을 떠났다. 그 후 오레곤 주립대학과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커버넌트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장로교(PCA)에서 강도사 직분을 받고 남침례교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2005년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 DTS를 통해 중국에 전도여행을 하던 중 북한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아 2006년 로렌 커닝햄 목사를 통해 중국 대련으로 파송을 받게 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는 2006년 미국의 ‘예수전도단(Youth With a Mission 이하 YWAM)’이라는 선교 단체에서 중국으로 파견한 선교사 신분이었다. 예수전도단에서 운영하는 국제적인 선교프로그램인 ‘제자훈련학교(Disciple Training Schools)’를 중국에서 운영하기 위해 파견된 실무자였던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일반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필요한 선교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로 보면 된다.
    
또한 배 목사는 2008년에는 전략상 ‘단둥 완방 여행 컨설팅’이라는 외국인 투자기업을 단둥시에 개설했고, 2011년 10월에는 ‘사람, 문화, 자연을 사랑하며’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네이션스 투어 (Nations Tour)’라는 여행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나진선봉만을 전문으로 여행하는 관광여행사로 특성화했다.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지역에 사무실을 차린 배 목사는 자신의 여행사를 통해 방북할 때마다 선교 활동을 위한 사업을 진행했다.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 북한 투어를 시작한 그는 당시 외국인들이 드나들며 24만 명이 거주하는 나진선봉지역을 자신의 선교사역지로 구별하며 열정을 부은 것이다.

그는 라선시에서 공식적으로 영어도 가르치고, 장마당 출입도 했으며 산에 올라가는 것도 허락 받았고, 아이들과 어울려 운동하는 것도 허락을 받을 정도로 북 당국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배 목사가 억류되기 한 해 전인 2011년 12월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행한  55분가량의 강연을 보면 그가 어떤 대북 선교관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수께서 내가 북한을 잇는 ‘경로(channel)’가 되길 원하신다. 올해 북한에 들어가는 단기 선교단에 몇 차례 참여할 것이다. 나는 이미 중국에 문화교류 회사를 운영 중이다. 북한 주민들을 가르치거나 먹이고 보살필 외국인들을 그동안 많이 확보했다. 많은 이들이 북한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어느 동료 선교사를 통해 북한에서의 선교활동에 관해 처음 소개받았으며 여행사 일을 통해 내가 할 일을 탐색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다면 벽이 훨씬 더 빨리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지난해부터 나진과 선봉지역을 통해 관광객 차원에서 외국인 입북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그가 2011년 북한에 들어가기 전 남긴 서한을 보면 YWAM과 연계해 중국 땅에 기독교 대학인 ‘열방대학’을 창립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서한에는 “우리는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파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 선교활동을 위한 작업을 모두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새 캠프를 개설할 예정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문서의 마지막에는 중국 내 YWAM 책임자로서 배 목사가 직접 서명하기도 했다. 이후 배 목사는 “서방세계와 북한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23번에 걸쳐 투어를 하던 중 억류사태의 발단이 된 18번째 입국을 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외장하드가 발견된 것이다.
    
외장하드에는 그동안 미국 등에서 만든 동영상들과 지난 6년간 발송한 선교편지, 선교활동 영상물들이 들어 있었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꽃제비)를 촬영한 것 등이 다수 들어 있었다. 이런 자료들은 충분히 북 당국을 자극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북 정보 당국으로 넘겨져 하드에 담겨진 자료들이 불온한 것이라고 판단한 북 당국이 집중 조사를 벌이기 위해 그가 입국 시 체포했고 그 과정에서 실제 여행사 대표가 아니라 선교사라는 신분이 밝혀지면서 심문이 더 확대되었고 다양한 포커스로 취조가 이뤄졌던 것이다.

결국 여러 혐의가 발견되면서 기소를 당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혐의는 ‘여리고 작전’이었다. 여리고 작전은 개신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서 구약성경 ‘여호수아서 6장’에 나오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내용을 삶에 적용한 것이다. 여리고성 같은 난공불락의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정성을 보이면 한 순간에 성이 무너진다는 상징적인 행사인데 배 목사는 이 여리고작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학생들을 라선시에 입국시킨 혐의를 받은 것이다. 북측에서는 오해를 살만한 행위였던 것이다.
    
결국 그의 죄목은 형법 제60조(국가전복 음모죄)에 따라 반공화국 적대범죄 행위 혐의가 확증되어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 시작했다. 당시 북측이 주장한 배 목사의 혐의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배준호는 지난해 11월 3일 모략 선전물을 가지고 나선시로 입국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 기소됐다. 2010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반공화국적인 종교활동으로 우리 제도를 붕괴시킨다는 소위 ‘예리코(여리고)작전’을 직접 계획하고 그 실현을 위해 학생 250여명을 관광 목적으로 나선시에 들이 밀었다. 배준호는 또한 모략선전의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해 ‘디에크의 밀착취재, 북한을 가다’, ‘15억 중국, 그리고 지구상 마지막 폐쇄국 북한’을 비롯한 여러 편의 반공화국 동영상을 수집, 제작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공화국 정권 붕괴에 나서도록 적극 부추겼다. 배준호는 국제예수전도단의 선교사로 지난 6년 동안 중국에 모략 거점을 세우고, 공화국 인민과 중국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반공화국 강의’로 우리 정부를 붕괴시키려고 시도했다. 재판심리 과정에서 배준호는 자기의 범죄사실에 대하여 전부 인정했으며, 그의 범죄는 증거물들과 증인들의 증언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었다. 그의 범죄는 사형 또는 무기노동교화형에 해당하는 엄중한 범죄이지만 본인이 자기 범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한 것을 고려하여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한다.”

15년을 선고받고 외국인 특별교화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던 배 목사는 훗날 석방된 후 자신이 유일한 죄수였고, 30명의 간수들과 함께 지냈다고 증언했다. 1주일 중 6일 동안 콩 심기를 하거나 농사를 짓고 혹은 땅을 파는 노동을 했는데 3개월이 지난 후 몸무게가 27kg이 빠지며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 가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방북시 평양국제친선병원에 근무하는 배 목사의 담당 주치의인 서미옥 의사와 간호사를 서너 번 만난 적이 있었으며 그들을 통해 배 목사의 근황과 건강상태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국가행사 기간에는 외국에서 방문한 해외동포들을 위해 호텔에 위생실을 설치하는데 이때 이들이 필자가 투숙한 호텔을 담당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의 노동교화형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근면하고 성실한 사회인으로 변화받기 위해 교양을 받는 곳이다. 살인, 강도, 절도, 강간 등 일반 형사범과 사기, 횡령 등 경제사범 가운데 형량 2년 이상의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들에게만 노동교화형이 선고된다. 배 목사가 억류된 후 한국과 미국등 서방세계에서는 그를 위한 석방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였으며 교회신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그의 부모 형제를 비롯한 가족, 친지들의 기도와 노력들이 있었으며 17만 명의 서명운동 그리고 교화소로 전달된 450 여 통의 편지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한다. 드디어 2년 째 되던 2014년 11월 어느 날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화소를 찾아와서 그를 데리고 가면서 석방이 됐고 마침내 미국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미군 기지에 무사히 도착해 가족들과 상봉했다.

▲ 수감된 케네스 배 목사가 외부인 접견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필자가 평양을 방문해 만났을 때 촬영한 케네스 배 담당 주치의 김명옥과 담당 간호사의 모습. 이들은 평양국제친선병원 소속이며 이 병원에 입원한 배 목사를 정기적으로 치료했다. 국가행사 기간에 해외에서 방문한 동포들을 치료하기 위해 호텔에 마련된 의무실에 파견 나오기도 한다.[사진제공 - 최재영]

 

▲ 케네스 배 선교사가 노동교화소 내부에서 일하기 위해 밭에서 일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케네스 배 선교사가 사용하는 교화소 내부 모습(2013. 7. 3). [사진제공 - 최재영]


진정한 북한선교는 실천과 행함이다
   
올바른 선교는 선교 당사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이해를 통해 그 민족에 대한 선교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선교는 사고(consideration)의 대상이기보다 ‘실천과 행함(Acting & Doing)’이다. 나를 비움으로써 상대를 채우고, 내가 주림으로 상대가 배부름이 되고, 내가 주는 것으로 상대가 풍성해지는 삶 자체가 선교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선교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북한 인민들에 대한 문화와 상황 이해를 통한 정서의 교류와 소통이다. 70년간 단절된 대화를 다시 이어가기 위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상대에게 무한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일반 인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도 부정적이며 기독교를 비롯한 일반 종교에 대해서는 미신처럼 인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직도 반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지원 사업을 가장해 점령군식 선교를 목적으로 라선시를 상대하는 것은 북에 대한 기독교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심어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행위이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와 해외 한인교회들은 종교적 욕망과 목표를 잠시 내려놓고 라선시 경제특구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에 주력하고 북한 당국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북한과 미국이 화해와 협력을 하는 관계가 되도록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동안 전쟁을 경험한 남한의 올드 세대의 목회자들은 아직도 공산주의는 무신론이며 반종교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며 ‘공산주의는 악마’라는 공식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원칙적, 체험적 반공주의를 극복하고 넘어서야만 통일의 길목에 진입할 수 있다.
     
북한은 악의 세력이므로 도와줘서도 안 되고 대화 자체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보다 북한을 동반자의 입장에서 어려운 부분을 인도적으로 돕고 경제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이 조국통일과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 조국통일은 북한선교의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훗날 그 자체를 통해 북 인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선교적 과제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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