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부석사 불상 ‘인도청구 소송’(대전지방법원 제12민사부, 부장판사 문보경)이 본격적인 증인신문에 들어갔다.

20일 오후 2시 대전지방법원 230호에서 열린 증인심문의 쟁점은 부석사 불상의 약탈 여부, 약탈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제적 추세와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었다.

이날 증인심문에 증인으로 나선 이는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 저자인 김경임 전 튀니지대사와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였다. 증인심문은 김경임 대사부터 시작하여 각각 1시간씩 진행되었다.

▲ 서산 부석사 불상 ‘인도청구 소송’ 첫 번째 증인심문에 증인으로 나선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좌측)와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 저자인 김경임 전 튀니지대사(우측).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쟁점1. 서산 부석사 불상은 약탈당했나?

김경임 대사는 이 사건 불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묻는 원고(부석사) 측 소송대리인(법무법인 우정)의 질문에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당면 문화재 환수 문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문화재 반환문제의 지평을 확대하고 문화재 반환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으로 보아 큰 관심을 가져왔다”고 밝히며, 이 과정에서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김 대사는 불상의 약탈 근거를 “불상의 복장유물에 의해 부석사의 원소유권 확인”하였고, “고려사는 왜구가 서산을 최소 5번 침구했으며, 왜구는 대부분 대마도인임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외에는 서산과 대마도의 교류를 보여주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저서에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대사는 “기쿠다케 쥰이치 규슈대학 명예교수는 대마미술에서 ‘왜구의 한 집단으로 생각되는 고노씨가 창건한 대마도 간논지(觀音寺, 관음사)에 고려 부석사 불상이 존재하는 것은 왜구의 불상의 일방적 청구가 있었음을 추정케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고, “일본 미술사가 헤이다 히로시도 ‘대부분 화상으로 파손된 대마도의 조선 불상들의 유출은 평상이 아닌 사정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어 일본 학자들도 대마도에 봉안된 경위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의 일본 학계에서 위상을 묻는 피고(대한민국) 측 변호인의 물음에 대해 김 대사는 “대마도는 일본에서도 변방에 속하기 때문에 대마도 불상은 일본 학계에서 주된 관심사는 아니기 때문에 연구 자체가 희소하다”고 답했다.

두 번째 증인심문에 나선 이상근 대표도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매년 1회정도 대마도 관음사 현장 방문을 했는데, 대마도 관음사 표지석에는 불상의 소재지를 서산 부석사가 아닌 경북 영주 부석사로 소개하고 있다”며, “이것은 불상의 소재, 제작지역에 대한 중요한 오류로 만일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하였다면 있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는 불상의 약탈 증거다”고 말했다.

쟁점2. 약탈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제적 추세는?

약탈문화재에 대한 국제적 사례와 그 처리결과를 묻는 원고 측 소송대리인을 물음에 대해 김 경임 대사는 “과거 파리소재 유네스코 한국대표부에 근무했을 당시 문화재 문제에 관해 많은 회의에 참석하여 문화재관련 문제에 관한 기본적 연구를 했으며, 1995년 로마에서 개최된 불법반출된 문화재에 관한 유니드로와 협약의 성립을 위한 준비회의에 한국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고 밝히며, “문화재 약탈과 도난은 제1,2차 대전을 겪으며, 국제범죄의 하나로 성립했으며, 약탈, 도굴, 도난당한 불법 문화재는 반환하는 것이 국제법과 국제관행이다”고 답변했다.

이어 김 대사는 “단, 불법을 입증하는 문제에 관해 각국의 법과 관행이 일치하지 않고, 관련 국제법이 미미한 점이 문화재 반환의 실제적 장애가 되어왔지만, 최근 국제법이 없거나 애매한 현실에서 문화재 반환은 법적 차원에서보다는 학술적, 도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문화재는 그 예술적, 미적 가치보다 그 문화재가 태어난 시대와 장소 제작자들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중요시되고 있고, 이러한 이유로 불법성이 명확하게 인정되지 않은 경우에라도 문화재의 원장소 반환의 타당성이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치약탈 문화재와 원주민의 종교적 성물은 무조건 반환하는 것이 관행”이고, “문화재 분쟁에서 거증책임은 청구자가 아닌 현재의 소유자인 피청구자에게로 넘어가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마도 관음사 관할)나가사키현은 1973년 불상을 나가사키 현 문화재로 지정했는데, 웹사이트에 ‘고려의 부석사를 위해 조성되었음을 복장물에서 나온 결연문에서 알 수 있는데, 일본에 전래된 경위는 불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며, “피청구자의 거증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쟁점3. 약탈문화재 환수에 정부의 입장과 태도는?

김경임 전 대사와 이상근 대표, 두 증인의 공통된 불만은 약탈문화제 환수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태도였다.

이상근 대표는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도 정부는 식민지배와 피해에 대해 사과나 배상을 받지 못하고 일본 측이 주장하는 합법적 한일합방, 내선일체 주장을 수용함으로 문화재도 약탈이 아닌 ‘이동’이라는 주장에 반박하지 못했다”며, “북관대첩비, 조선왕조실록, 경복궁자선당 유구, 조선왕실의궤 등의 반환운동 사례에서 볼 수 있다시피 주요 문화재의 반환에는 현지 교민, 민간단체 등이 앞장섰고, 정부는 ‘조용한 외교’를 주장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 대표는 “‘불상 재감정 조사단’에 참관이라도 시켜달라고 요청하였지만, 답변조차 거부한 채 재검정 조사에서 배제시켰다”며 소극적인 당국의 태도를 질타했다.

김경임 전 대사도 “해외 문화재 조사와 환수를 전담하는 기구로서 ‘국외소재 문화재 재단’이 있지만, 재단에서는 ‘무조건 환수’보다는 ‘현지 활용’에 초점을 두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재단이 문화재의 불법반출을 확인하기도 전에 ‘현지 활용’ 운운하는 것은 일본이 말한 대로 일본이 소유한 한국문화재는 정당한 수단으로 취득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어 김 대사는 “이는 국민 대부분의 정서와 맞지 않고, 사실에도 맞지 않는 것으로서 재단의 이러한 입장은 서산 부석사 불상의 문제해결을 선도해야 하는 재단의 본연의 의무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 밝혔다. ‘국외소재 문화재 재단’에 대해 이상근 대표도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는 “재단은 지난 9월 26일, 27일 ‘일본소재 한국문화재의 연구와 활용’이라는 포럼을 주최했는데, 초청된 일본 학자 중에는 부석사 불상을 왜구에 의한 약탈물로 추정한 규슈대학 명예교수 기쿠다케 쥰이치 교수가 포함되어 있었다”며, “재단은 쥰이치 교수를 초청하면서 현재 정부가 피고로 되어 있는 부석사 불상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쥰이치 교수를 이번 재판의 증인으로 요청한 상황이자만, 재판 출석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중요 증언을 듣기 위해 재단 측에 쥰이치 교수와 인터뷰 주선을 요청했지만 불가하다고 답변 받았다”고, “재단은 쥰이치 교수의 언론 인터뷰도 거부하고, 심지어는 국회의원의 면담요청 마저 거부했다”며, 재단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꼬집었다.

▲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온 재판 관계자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이날 재판은 대부분 원고(부석사) 측에서 증인 심문에 나섰고, 피고(대한민국) 측은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다음 재판기일은 12월 1일 오후 2시이고, 김현구 전 서산문화원장과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이 증인으로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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