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석 / 소통과혁신연구소 연구위원

 

2002년 9월 29일~10월 14일 부산아시안게임 때이니 14년 전의 일이다. 당시 검찰은 공식 참가국인 북한에 관하여 “인공기 게양은 조직위원회, 본부 호텔, 프레스센터, 선수촌, 참가국 대표자 회의장 등 5곳에서만 허용되며, 그 외 장소와 온라인상에서 내국인이 인공기를 사용하거나 게양하는 행위는 모두 금지된다”고 밝혔다.

검찰의 으름장에 부산아시안게임 공식 홈페이지에서조차 인공기가 사라졌다. 참가한 44개 나라의 소개란에 유일하게 북한의 인공기만 빈칸으로 남게 됐다. 대회 기간, 인공기가 펄럭이면 남한의 사회체제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라도 한다는 것이었을까? 인공기 게양을 금지할 것이라면 북한의 대회 참가 자체를 불허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는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이후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은 한반도 정치 기상도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1997년 대선 직전에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측에 무력시위를 구걸한 이른바 ‘총풍사건’의 이회창 후보가 두 번째 출마한 2002년 대선국면에서 드러낸 같은 법조계, 검찰의 반북대결 도발이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민족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고 노련하게 추진한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누수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 한 달 전인 2002년 9월, 참으로 희한한 일도 있었다. 상암경기장 남북 국가대표급 축구대회에서는 정반대의 화해협력 독촉 사건이 있었다. 한나라당 탈당 이후 창당한 한국미래연합의 박근혜 대표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정몽준 의원에게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고 화를 내고, 또 ‘붉은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치자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했다”.(정몽준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 2002년 5월 11~14일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비밀 단독 면담하고 돌아와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 “약속들을 가능한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등의 소감을 밝힌 이후의 일이었다. 

그 때 ‘통일조국’을 외치라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는 친박세력을 앞세워 야권 대선주자들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에 대해 연일 색깔공세를 퍼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한지 4년 동안 ‘통일대박’을 외쳤지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편승해 개성공단마저 폐쇄하고 한반도를 전쟁접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최순실-미르재단-케이스포츠재단으로 드러난 측근 비리를 덮고 보수세력을 결집하여 재집권을 이루기 위해 또 다시 ‘종북소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제1야당의 비주류로 소외된 채 또 하나의 소수야당으로 연명하던 그 시절에는 단지 자신의 존재감 부각과 세력 확대를 위해 민족의 화해와 교류협력을 팔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7.4남북공동성명으로 7천만 동포를 흥분시키더니 곧바로 남북대결과 유신독재로 질주한, 그래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 겨레의 꿈을 이용하다가 민족을 배신한 아버지 박정희와 너무나 똑같은 궤적을 밟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2007년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2005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에 합의하고도 미국이 이를 훼손하는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북한자금 동결이라는 경제제재를 가하자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대응하는 날카로운 긴장상황에서 정말 어렵게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10.4선언을 발표했으며, 이어 11월 16일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여 남북관계 발전에 안간힘을 다 할 때였다. 그런데 불과 4일 후, 11월 20일 미국의 대북압박의 일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여 남북관계에 차질을 빚어야 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이 ‘내통’이고 ‘반역’이란 말인가? 가정하여 중국 주도의 유엔이 한국에 미국흑인인권결의안 찬성을 요구한다면, 중국이 전체 무역의 1/4을 차지하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사전 협의로 기권했을 것이다. 그것이 한미 우호관계도 유지하고 중국의 압력도 극복하는 외교전략이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보편적 외교정책도 이러한데, 하물며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발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온 겨레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남과 북이 사전 사후 긴밀히 협의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런 견지에서 볼 때, 남이 북에게 사전에 의견을 물었느냐, 사후에 결정을 통보했느냐는 논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북협력보다 한미동맹, 민족공조보다 외세공조를 앞세우고 자주성에 기초한 호혜평등의 국제관계를 두려워하는 분단 71년간의 고정관념이자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구보수세력의 술책에 굴종하는 태도일 뿐이다.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들어서자 색깔공세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수구세력이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정권교체이다. 뒤가 구릴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설령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뒤가 구린 사람들은 기를 쓰고 정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저들의 살 길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불통과 독선으로 전 국민의 정신건강을 해치더니 마침내 전가의 보도처럼 상투적인 안보위기 조장과 결합된 색깔공세에 매달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색깔공세가 강화된다는 것은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둘러싼 공방전이 색깔론 시비로 번지고 있는 데는 국면전환이나 선거전술로 색깔론만한 것이 없다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인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해당사자인 문재인 전 대표의 느슨한 대응도 한 몫 하고 있다. 색깔론에 대한 대응은 단지 대통령이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반세기 이상 엄청난 피해를 보았던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요구라 할 수 있다.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가) 사실상 북한과 내통을 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이처럼 극단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 이유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특히 친박세력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송민순 회고록에 대한 참여정부 인사들의 반박은 들어볼 필요도 없다. 참여정부와 박근혜 정부, 양쪽의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장수 주중대사조차 지난 16일 “나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고 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실관계가 불확실한 회고록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데는 지난 대선 때 톡톡히 재미를 본 NLL 논란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하겠다’고 발언하였다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였다. 설마 그런 전근대적인 색깔론에 표심이 흔들릴까 하였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선거가 끝난 뒤 NLL 포기 발언이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버스 떠난 뒤였다. 눈에 불을 켜고 있어도 부족할 판인데 사람들은 벌써부터 우병우니 최순실이니 미르재단이니 하는 단어를 망각하기 시작한다.

색깔론은 분단의 찌꺼기를 먹고 살며 망각이라는 생명수로 되살아난다. 색깔론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못하게 하려면 분단을 해소하든지 아니면 국민이 망각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이 한 일을 똑똑히 기억해내는 국민이라야만 독선과 불통의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통일의 문을 더욱 빨리 열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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