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이 경상대 교수가 17일 '2016 대북지원 국제회의'에서 북한의 시장이 꾸준히 확대되어 지금은 '불황타령'이 나올 지경이며, 유통업, 부동산개발업이 활기를 띠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383곳 정도의 공설시장과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비공식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시장은 지난 2003년 북한의 종합시장 개혁 이후에는 그 이전 지붕과 매탁(賣卓)을 간신히 갖춘 농민시장 단계를 지나 지붕을 확장, 연결한 건물형태로 발전하는 등 진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평양시 기준으로 주택 매매가가 5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 신의주와 평성, 혜산·회령·온성·무산·라선과 청진, 국내 곡창지대를 배후로 한 사리원 등 역내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계층화와 네트워킹화가 진전되는 특징도 확인되었다.

정은이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2016 대북지원 국제회의’에서 ‘북한주민생활의 변화상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북한은 시장의 발전으로 인해 상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 이미 넘쳐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은이 교수에 따르면, 19개 구역과 3개 군으로 이루어진 평양시에는 각 구역과 군마다 1곳 이상씩, 총 31곳의 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또 북한 전체 행정구역으로 보면 24개 시에 평균 4~8곳, 138개 군에는 각 1곳 이상, 그리고 21개 구역에 각 2곳 등을 포함해 총 383곳의 공설시장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 운영하는 ‘공설시장’에 대한 집계일 뿐이고 이른바 ‘골목시장’·‘메뚜기 시장’ 등 ‘비공식시장’은 공설시장의 최소 2배 이상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정 교수는 각 지역 탈북자 심층면접 조사와 구글어스(Google Earth)에 나타난 누적 변화 등을 종합해 이 같은 현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 가운데 최완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의 사회로 맨 왼쪽 바카티어 맴베토브 국제적십자연맹 베이징 재난관리생계분야 담당관, 린다 르위스 미국친우봉사회 중국.북한사업단 대표, 최 대표 오른쪽으로 정은이 경상대 교수,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시장의 진화는 계층화와 분업화를 낳고 있는데, 평양시의 경우 잘 사는 구역인 서평양, 그중에서도 모란봉구역·중구역 등 이른바 봉평양 지역의 주택가격이 10만 달러(약 1억원)을 호가하는 반면, 동평양 등 기타 지역의 주택가격은 1/5에 불과한 2만 달러로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또 신의주를 중심으로 중국 선양, 칭다오, 단둥 등을 거쳐 가전제품이나 화장품, 자동차, 기계부속 등 고가 상품이 거래되고 있으며, 다시 평양과 가까운 평성 시장을 통해 전국 옷 가공 및 도매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옌벤(연변), 투먼 등 중국 동북3성 지역을 통해 신발이나 천, 트럭 등 저가 상품이 혜산·회령·온성·무산·라선 등 국경도시로 유입되고 있으며, 인근 청진은 수산물도매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황해도 곡창지대를 배후로 하는 사리원은 쌀과 지역 농·토산물 도매 거점으로 안정화되고 있으며, 이렇게 등장한 평성, 청진, 사리원, 함흥 등 전국 도매시장들 사이에 품목과 가격, 품질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물류 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각 지역 도매시장간의 네트워킹화와 대량 물류이동이 가능하게 된데에는 도로사정과 운송수단의 개선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과거 ‘승리25’로 물자를 운송했을 때에는 1.5톤 정도의 물류밖에 운송이 불가능했지만 무역회사 단위 또는 개인 단위에서 5~10톤, 나아가 20~30톤에 이르는 중국산 트럭을 수입해 운송업에 진출하면서 획기적으로 유통량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운송업 부문이 발달하면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순천탄광에서 함흥, 청진으로 나가는 1급 도로와 인근 평성에서 순천탄광으로 들어가는 1급 도로 주변에는 대형 트럭을 대상으로 한 ‘개인 기름장사’들이 진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1년 운행으로 트럭 1대를 살 수 있을 만큼 고수익이 나는 운송업은 이동 중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전화보급과 창고업의 등장 등 관련 부가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운송업의 발달은 상품의 대량유통이 가능하도록 해 상품 가격을 하락시키고 전국 어디서나 동질의 상품에는 동일한 가격이 형성되도록 함으로써 가격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했다.

특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평양과 신의주, 혜산의 쌀 1kg 당 가격 차이가 거의 없어지는 효과를 낳기도 했고 지역별 환율 변동 차이도 줄었다.

▲ 정은이 교수는 이날 '북한주민생활의 변화상에 곤한 고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 교수는 100% 외화가 거래되는 운송업, 기름장사, 무역업 등 비공식 시장의 수익률이 높아지자 내화(內貨)를 거래하는 공설시장 등 종사자들이 덩달아 이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소비재 시장은 종전에는 수익률이 10~20배에 달했으나 지금은 20%대로 떨어지면서 ‘불황타령’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새롭게 눈을 돌리려는 사업 영역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이 부동산 개발업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행군 시대에 빈집을 파는 현상이 나타난 이래 2000년대 접어들어 시장의 확대와 부의 재분배를 경험하면서 이후 지금까지 주택가격의 상승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09년 말 화폐개혁이 단행된 이후부터 단층집을 저층아파트로, 저층아파트를 고층아파트로 개발하는 중국의 초기 주택개발 유형과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서 환율과 쌀값, 경기에 따른 단기등락도 나타나는 등 역동성을 보이고 있다.

특징적인 변화는 단순 주택 매매가 아니라 대규모 투자를 동반하는 부동산 개발이 이뤄진다는 것.

골조형태로 판매하는 중국식 칭수이팡(淸水房)은 분양가에 버금가는 인테리어 비용 때문에 실제 주택가격을 두세 배 높이는 요인이지만 최근 북한의 아파트 건설에도 유사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또 고층아파트의 로열층은 더 비싼 가격에 미리 사가는 현상도 빈번하다. 다만, 전기 사정이 여의치 않은 북한에서는 고층아파트의 저층부가 로열층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 교수는 신의주 채하시장의 경우처럼 새로 개발된 주거단지를 중심으로 재래시장의 위치가 통째로 바뀌고, 청진시 포항구역 아파트 개발의 경우 원주민이 거주하던 ‘땅집’을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면서 광장을 건설하는 등 철거 전후 지가 상승과 개발 브로커의 출현을 짐작하게 하는 상황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부동산 개발 등 대규모 투자에 자금을 대던 ‘돈주’가 무역일꾼 등이었다면, 2010년 이후로는 토지를 대는 국토사업소, 건설을 담당하는 건설·설계·건축사업소, 분양을 진행하는 인민위원회 도시경영과 등 관료들로 대체되고 있어 건축 소요시간도 단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북한에서 통용되는 부의 기준이 ‘어떤 음식, 어떤 옷, 어떤 가전제품을 소비하느냐’였던 것에서 ‘어떤 집에 살고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며,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지면 사람은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바꾸려고 한다”는 말로 북한의 변화를 설명했다.

▲ 정세균 국회의장이 '2016 대북지원 국제회의'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프리드리히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 경기도와 국회 남북관계개선특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국제회의는 ‘북한의 변화상과 향후 개발협력의 방향’이라는 주제로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공개회의와 오후 글래드호텔 비공개회의, 그리고 18일 오전 경기도 북부청사 특별간담회 일정으로 진행된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북한의 사회경제적 변화 및 지원환경 분석을 통해 대북지원의 분야별 지원 우선순위를 도출”하고 “국내외에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알려내고 대북지원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며, “국내외 대북지원 주체간의 협력과 기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