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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당 건설 뿌리이자 청년중시의 출발[친절한 통일씨]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90년으로 본 북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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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7  03: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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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년 10월 17일 만주 화전면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되던 당시 모습 그림. [사진출처-조선의오늘]

"우리가 맑스주의의 기치를 들고 인민대중을 조직동원하여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자면 우리 청년공산주의자들의 혁명조직을 먼저 내와야 합니다. 이 조직의 명칭은 그 사명에 맞게 타도제국주의동맹으로 하며 약칭은 'ㅌ.ㄷ'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926년 10월 17일. 15살의 김일성이 만주 화전면에서 항일운동의 기치를 내세우며 한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북한 당과 국가 건설의 기초가 되는 '타도제국주의동맹'. 일명 'ㅌ.ㄷ'가 결성됐다. 일반적으로 '트드'라고 발음한다.

'ㅌ.ㄷ'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1968년 이전까지 북한이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이유로 조작된 이야기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북한은 'ㅌ.ㄷ'결성이 북한 당과 국가 건설의 기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김정은 시대 청년중시와 맞닿아 있다.

결성 90년을 맞이한 '타도제국주의동맹', 'ㅌ.ㄷ'. 일방적인 북한의 주장이든 아니든을 떠나 'ㅌ.ㄷ'를 살펴보는 일은 북한의 현주소를 읽는 근간이 된다. 그리고 'ㅌ.ㄷ'를 모르고 북한을 논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라 할 수 있다.

"조선혁명을 이끌어나갈 새 형의 전위조직"

북한은 'ㅌ.ㄷ' 결성을 두고 '조선혁명을 이끌어나갈 새 형의 전위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현재의 북한 당과 국가 건설의 뿌리가 'ㅌ.ㄷ'라는 의미다.

90년 전인 1926년 6월 중국 길림성 화전시에 있던 독립운동의 산실이던 화성의숙을 다니던 김일성이 자퇴를 결심한다. 화성의숙은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천도교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이 학교의 초대교장은 임시정부 법무부장을 지낸 최동오 선생이다.

이런 학교를 다니던 김일성은 독립운동가였던 부친 김형직과 남한에서 건국훈장을 받기도 한 삼촌 김형권, 외삼촌 강진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집안의 기운을 받은 어린 김일성에게 항일운동의 중요성이 그대로 이어졌는지 여부는 현재의 잣대로 다르게 볼 수 있으나, 여느 독립운동 집안이 그러했듯, 어린 김일성의 항일운동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여튼, 김일성은 화성의숙을 중퇴하고, 1926년 10월 17일 화전시에서 'ㅌ.ㄷ'를 결성한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과 투쟁방법에 회의를 느껴 독학으로 익힌 맑스-레닌주의가 일제강점기 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됐다는 것.

"초기공산주의운동자들이나 민족주의운동자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혁명의 길을 개척할 결심을 품고, 새 세대 청년들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함으로써 앞으로 창건될 우리 당의 역사적 뿌리를 마련하시였다"라고 북한은 설명한다.

그리고 이날은 "종전의 당과 구별되는 새형의 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 창건을 위한 투쟁의 출발점으로 되었다. 강령은 앞으로 창건될 우리 당의 강령의 기초로 되였고, 자주성의 원칙은 우리 당 건설과 활동의 원칙으로 되였으며,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우리 당 창건의 골간으로 되었다"고 한다.

   
▲ 'ㅌ.ㄷ' 조직원들이 비밀독서모임을 자주 갖던 집. [사진출처-조선]

실제 'ㅌ.ㄷ' 결성 당시에 함께한 인물은 최창걸, 김리갑, 리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등이다. 여기에 계영춘, 권태석, 차광수, 최효일, 한영애, 장울화 등이 동참했다.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의 친구인 오동진, 장철호, 강제하, 김보안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의 면면만 봐도, 'ㅌ.ㄷ'는 북한이 주장하는 당, 국가 건설의 뿌리임을 알 수 있다. 최창걸은 정의부 산하 독립군 6중대원으로 화성의숙에서 김일성을 만났고, 1930년 7월 결성된 건설동지사 첫 성원이었다. 

변묵성이 본명인 김원우는 조선혁명군 핵심 성원으로, 해방 후 지방 당, 근로단체, 사법기관에서 복무했고, 맏아들이 정주군 오성리 사무장으로 일한 변훈이다. 차광수는 1927년 김일성과 만난 뒤, 카륜회의, 명월구회의에 참가했고, 반일인민유격대 참모장으로 활동했다. '신의주제1사범대학'에 이름이 붙여졌다.

장울화는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에서 지하사업단 대원으로 활동하다 발각돼 체포됐으나, 진술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북한은 그를 두고 김일성을 대신해 죽었다며 혁명열사로 추대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자손들은 북한에서 대우를 받는다.

이 밖에도 오동진, 장철호, 강제하, 김보안 등은 모두 북한 신미리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이러한 인물들이 'ㅌ.ㄷ'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ㅌ.ㄷ'의 결성은 항일운동을 넘어 현재의 북한의 근간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북한이 항일혁명운동이 자신들의 뿌리임을 자부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 'ㅌ.ㄷ' 결성 당시 핵심인물. 강병선, 김원우, 최창걸, 계영춘, 박근원 (왼쪽부터).[사진출처-조선]

90년 전 김일성은 'ㅌ.ㄷ'를 결성하면서 발표한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 글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명실공히 제국주의를 타도할 것을 자기 사명으로 하고 있는 조건에서 그 강령에서는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수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달성할 것을 당면과업으로 내세워야 하며 최종목적으로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할 것을 제기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ㅌ.ㄷ'가 북한이 만들어 낸 신화라고도 주장한다. 1968년 이전까지 북한이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1930년 전후 만주 장춘 서쪽과 회덕현, 이통현 일대에는 이종락의 '길흑농민동맹' 지배 하에 있었고, 이 자체가 반제운동이며, 'ㅌ.ㄷ'라고 불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군의 기치를 만들고, 북한을 건설하다"

'ㅌ.ㄷ'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30년 6월 30일 카륜회의다. 이에 앞서 1927년 8월 28일 베이산공원(北山公園) 약왕묘 지하실에서 'ㅌ.ㄷ'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으로 재조직됐다. 8월 28일은 북한의 '청년절'이다.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이 극심해진 당시 김일성은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간부회의에 참석,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한다. 여기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의 기본노선이 무장투쟁노선'으로 명시됐다.

"평화적 방법으로는 절대로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를 타승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없으며 무장으로 전면적인 항일전쟁을 벌리는 길만이 조선혁명의 진로를 성과적으로 개척하고 일제의 식민지 폭압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하게 정당한 길이다."

그래서 북한은 카륜회의가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 창시된 날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라면, 일부 언론이 'ㅌ.ㄷ' 결성 90돌에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고 보는 것보다 오히려 '카륜회의'에 주목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 북한은 'ㅌ.ㄷ' 결성이 북한 당과 국가 건설의 뿌리라고 강조한다. [자료사진-통일뉴스]

'ㅌ.ㄷ'에서 출발해 공청이 조직되고, 카륜회의에서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주창한 김일성은 해방 전 북한 당과 국가건설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단련육성된 투사들과 함께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혁명가들을 다 망라하여 통일적인 당을 창건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라고 북한은 설명한다.

즉, 'ㅌ.ㄷ' 결성부터 공청을 조직하고 '카륜회의'를 거쳐 항일무장투쟁에 동참한 이들이 북한의 당과 국가건설의 핵심인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는 현재의 북한을 형성하는 데 중요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1945년 10월 5일 당 창건 예비회의를 거쳐 10월 10일 당 창건으로 이어졌다.

'ㅌ.ㄷ', 김정은 시대 '청년중시' 근간이 되다

1926년 결성된 'ㅌ.ㄷ'는 북한 당과 국가건설의 뿌리라는 의미와 함께, 현재 북한 청년중시와도 연결된다. 'ㅌ.ㄷ'는 1927년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으로 확대개편되고, 1946년 '민주청년동맹(민청)', 1964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1996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2016년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결국, 'ㅌ.ㄷ'는 김정은 시대 청년동맹의 사상적 뿌리가 됨을 알 수있다.

90년전 'ㅌ.ㄷ' 결성 당시 김일성은 "신흥청년전위들이 이 장엄한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 새 세대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인 우리들은 조국과 민족을 구원해야 할 중대한 책임감을 깊이 자각하고 슬기와 용맹, 무비의 헌신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부과된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며 반일대중투쟁을 정확히 인도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8월 열리 청년동맹 제9차대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용남 1비서에게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깃발을 건네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ㅌ.ㄷ'는 청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서의 청년의 역할이라는 시대적 상황만 바뀌었을 뿐, 청년의 의미는 김정은 시대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청년들은 선군혁명의 척후대, 조국보위전의 주력부대이다. 모든 청년들은 우리 당의 총대중시사상을 심장에 새기고 조국보위를 가장 신성한 의무로, 최대의 애국으로 간직하여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을 보위하기 위한 투쟁에 용약 떨쳐나서야 한다."

지난 8월 열린 청년동맹 제9차 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청년들을 향한 당부이다. 90년 전 김일성이 'ㅌ.ㄷ'로 '신흥청년'을 중심으로 북한 당과 국가건설을 꾀했다면, 김정은 시대는 '영웅청년'이 나선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을 강조하고 있는 것.

이는 'ㅌ.ㄷ' 결성 당시 함께한 이들이 김일성을 의미하는 '한별 만세'를 외쳤듯,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무장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새시대를 열자는 북한의 현재 모습과 연결된다. 그래서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위한 총돌격전에서 영웅청년의 슬기와 용맹을 남김없이 떨치자'라고 제시된 구호 속에서 북한은 'ㅌ.ㄷ' 결성 90년을 맞아 청년의 역할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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