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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심간부 양성에서 세계일류로[친절한 통일씨] 김일성종합대학 70년으로 본 북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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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2  21: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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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전경. 1일 창립 70돌을 맞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용순, 김양건 당 대남담당 비서, 허담, 백남순 외무상, 오극렬, 최영림 중앙검찰소장, 지재룡 주중북한대사,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김일성종합대학 동문이다.

이들만 두고 보더라도 현재의 북한을 만드는 데 김일성종합대학이 주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학을 세계 일류급 대학으로 만들고자 한다. 10월 1일 창립 70년을 맞은 김일성종합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민족간부 양성기지를 만들라"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의 첫 개교식은 1946년 9월 15일이었다. 여기서 김일성 주석은 "우리에게는 민족간부가 대단히 부족하며 현존한 간부들은 그 수와 질에 있어서 현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방된 조선이 요구하는 민족간부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오늘 이 종합대학이 개교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설립 이유가 바로 민족간부 양성이라는 것.

해방 후 평양에는 평양공업전문학교와 평양의학전문학교 등 대표적인 고등교육기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학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의 국가기틀을 만들고 이끌어갈 간부양성기지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간부양성을 목적으로 한 고등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1945년 11월 17일 조선노동당 북조선분국 조직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새로운 인민적, 민주주의적 교육제도'라는 교육정책의 기본방향이 제시됐다. 그리고 11월 18일 김일성과 교육부문 관계자들은 '종합대학을 창설할 데 대하여'를 발표, 대학기성회를 조직했다. 기성회는 김일성을 고문으로 최용건 위원장, 강윤범 외 8명 위원으로 구성됐다. 

이후 1946년 5월 25일 종합대학창립준비위원회가 조직됐고, 장종식 임시인민위원회 교육국장을 위원장으로 정두현, 신건희, 한설야, 한무, 이정우, 김달현, 이동화, 김택영 등이 활동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대학 조직안, 각 학부, 학과 학생정원, 교사, 학생 기숙사 건물, 1946년도 대학 재정예산안 편성, 대학 과정안, 교수 인원 및 임용방법 등이 결정됐다. 이를 토대로 1946년 7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 제40호 '북조선종합대학창립에 관한 건'이 채택됐다.

"(1)1946년 9월 1일 신학년부터 평양시에 북조선종합대학을 설립하며, (2)평양의학전문학교와 평양공업전문학교는 대학으로 승격해 종합대학에 편입시키고..(6)본 종합대학에 조선해방을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한 조선민족의 영웅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부여하여 '김일성대학'이라 칭함."

북한의 종합대학 설립은 남한의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과 맞물려있다. 1946년 6월 19일 미군정이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을 발표하자 북한도 서둘러 종합대학 창립 결정서를 채택했다는 것. 이는 남북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의 종합대학 설립에 자극을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 김일성종합대학 입구. [자료사진-통일뉴스]
   
▲ 1948년에 준공된 김일성종합대학 교사.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간 대학설립 영향 때문일까.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결정서가 채택된 즉시, 7월 16일 학생모집요강이 발표됐다. 흥미로운 점은 총 7개 학부 24개 학과 중 문학부, 법학부를 제외하고 모두 이공계이다. 심지어 공학부는 8개 과, 의학부는 3개 과로, 1천 5백명 학생 중 450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공계이다.

이는 일제시기에 설립된 평양공전, 평양의전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1946년 7월 8일에 발표된 결정서에는 평양공전과 평양의전을 종합대학에 편입한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준비위에서 활동한 신건희, 정두현이 각각 평양공전, 평양의전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46년 8월 20일부터 25일까지 실시된 입학시험 결과, 예비과와 의학전문학교를 포함해 종합대학에는 총 2천여 명의 학생이 입학했는데, 이 중 162명이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노동당원 460명, 천도교 청우당원 16명, 민주당원 19명, 청년동맹 소속 737명이며, 771명은 소속이 없었다. 자본가 출신 87명, 지주출신 7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노동자, 농민 출신 자녀였다.

북한은 대학의 기틀을 마련한 이들로 '핵 과학 아버지'라고 불리는 도상록, 경제학자 김광진, 농학자이자 북한 1호 박사 계응상, 예방의학자 배영기, 식물학자 임록재 등을 꼽고 있다. 

그렇게 김일성종합대학은 1946년 9월 15일 평양시 룡남산에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실제 개학은 10월 1일로, 북한은 이 날을 대학 창립일로 삼고 있다. 

   
▲ 1948년 10월 김일성종합대학 새교사 준공식에 참석한 김일성.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주의자가 되라"

김일성종합대학은 1960년부터 변화를 맞는다.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이 1960년 9월 1일 입학했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유일사상체계가 구축되던 시기에 김정일의 입학으로 대학의 인재육성 목표가 바뀌었다.

1949년 12월 첫 졸업식에서 김일성 주석이 '선진과학기술과 애국사상으로 무장한 민족간부가 되라'던 당부는 김정일의 입학으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사명으로 삼는 대학으로 변모했다.

   
▲ 대학 재학시절 김정일. [자료사진-통일뉴스]

1961년 9월 1일부터 1964년 3월 30일까지 재학 중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은 수령님의 대학, 당의 대학이다', '대학생들 속에서 혁명적 세계관을 튼튼히 세워야 한다', '실습을 통하여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더욱 공고히 하자'는 등의 김일성종합대학의 방향과 학생들의 역할을 제시했다.

그리고 1962년 4월 15일 '김일성동지 현지교시연구실', '조선노동당역사연구실'을 개관하면서 유일사상체계를 구축하던 북한 당과 국가 건설과 궤를 같이 했다. 이는 대학의 모든 교육.연구 사업의 목적이 '당적 사상 체계'를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1963년 4월 18일 김일성 주석의 '대학의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 발표로 △당 조직생활지도체계 확립, △세포의 전투적 기능 강화, △교무부총장을 참모장으로 하는 교육행정지도체계 수립, △보여주기제도 확립, △주입식 교수로부터 깨우쳐주는 교수에로 전환, △대학관리 및 후방공급사업 개선, △상점, 농장, 식료공장 등 자체후방기지 축성 등 대학은 당에 충실하고 유일지도체계에 충직한 간부를 양성하는 기지화됐다.

이는 1968년 9월 1일 혁명사적관 개관, 9일 김일성 동상 제막, 1974년 7월 22일 김정일 혁명사적관, 1968년 12월 '위대성 도서'라는 시리즈로 김일성, 김정일 관련 책 출판, '김일성 혁명역사' 과목 개설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대학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로 나가라는 당의 지시로 '천리마대학 칭호 쟁취',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등에 학생들이 투입되기도 했다.

결과, 1980년대 김정일 후계체제가 구축되면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 대거 간부로 발탁됐다. 현재 북한 당, 정 부부장급 이상 고위간부 중 약 17% 이상이 이 대학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이 북한의 대표적인 간부양성기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북한 당 중앙위 정치국은 1984년 9월 14일 '김일성종합대학사업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를 발표해, 김일성종합대학 중심 고등교육 강화와 간부육성을 꾀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학 육성목표의 변화양상은 학부 변화에서도 읽을 수있다. 대학 설립 초기 공학, 의학이 중심이었던 데서 1948년 역사문학부가 신설되면서 사상교육 강화의 움을 텄다. 역사문학부는 1949년 역사학부, 조선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로 나뉘는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 투철한 사상성에 기반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중심 인문사회계 대학으로 바뀌었다.

   
▲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 [자료사진-통일뉴스]

"세계 일류대학으로 만들자"

김일성종합대학 설립 70년은 북한 당, 국가, 사회를 움직이는 간부육성이 주요 목표였음은 두말할 수없다. 김일성 시대 민족간부 육성의 목표는 김정일 시대 김일성주의자를 양성하고 유일지도체계에 충실한 사상가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변화해왔다.

그리고 김정은 시대, 대학은 세계일류대학으로 나아갈 것으로 요구받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27일 '주체혁명의 새 시대 김일성종합대학의 기본임무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서한을 보냈다.

서한은 "김일성종합대학은 민족간부 육성의 중심기지이며 주체과학 교육의 최고 전당"이라며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주체적인 교육사상과 이론, 탁월한 영도의 승리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당과 혁명에 충실하고 높은 실력을 지닌 혁명인재들을 더 많이 육성하며 첨단과학연구 성과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힘있게 추동함으로써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위업 수행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할 성스러운 임무"를 주문했다.

"수령의 대학으로서의 혁명적 성격과 본태를 변함없이 고수하고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대학으로 강화발전시키는 것은 주체혁명의 새시대 김일성종합대학 건설의 총적 방향이다."

그러면서 △전국적인 사회과학부문 원격교육 거점화, △지적제품 생산지기 확대, △국제학술토론회 정기적 개최, △'김일성종합대학 학보'의 세계적 학술잡지화, △외국인 유학생 및 재학생 유학 확대 등을 제시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숭고한 정신과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선군혁명의 믿음직한 골간이 되라!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위대한 당, 김일성조선을 세계가 우러러 보게하라!"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은 김정은 시대 김일성종합대학의 세계일류대 목표와 맞닿아 있다.

   
▲ 창립 70돌 기념우표[자료사진-통일뉴스]
   
▲ 김일성종합대학 2010년 5월 현황.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종합대학 약사

1945년 11월 3일 김일성, '종합대학을 창설할 데 대하여' 노작 발표
             18일 대학기성회 결성 (고문 김일성, 위원장 최용건, 위원 강윤범 외 8명)
1946년  5월 25일 종합대학창립준비위원회 조직 (위원장 장종식, 위원 정두현, 신건희 등)
          7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 40호 '북조선종합대학창립에 관한 건' 채택  
          9월 15일 김일성종합대학 개교식
         10월 1일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선포 (7개 학부 24개 학과, 1천5백명 학생)
                    대학도서관 개관
1947년  5월       대학인쇄공장 조업, 연구원 개원
          7월       <대학신문> 창간
1948년  2월       야간대학 창설
          9월       통신사범대학 창설
                    경제사범학부, 역사문화부, 물리수학부, 화학부, 생물학부 학부개편
                    평양공업대학 창설(공학부, 운수공학부 통합)
                    평양의학대학 창설(의학부 개편)
                    원산농업대학 창설(농학부 개편)
        10월 10일 새 교사 준공식 (부지면적 6만m², 총건평 1만 2천653m²), 생물과학관 개관
1949년  9월       경제학부, 법학부, 역사학부, 조선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 지리학부, 
                     교육학부, 물리수학부, 화학부, 생물학부 학부개편 
         10월       역사박물관, 지리박물관 개관
         12월 28일 제1회 졸업식 (졸업생, 물리수학부 19명)
1950년 한국전쟁 시기, 평남 순천군 백송리에 토굴학교로 이전
           6월 27일~28일 학부별 전선탄원궐기모임 개최
                30일        제2회 졸업식 (졸업생 271명)
           8월   2일 '대학호' 군기헌납 궐기모임 개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으로 조직된 '8.15부대' 구성
1951년   7월       특설예비과 설치 (500명 입학)
1952년   4월  3일 내각결정 64호 '김일성장학금' 제정
          12월  5일 제3회 졸업식 (졸업생 253명)
1954년   8월       본교사 복구, 새 학년도부터 교육실시, 1호 기숙사 복구
          11월       도서관 복구
1955년   7월  1일 김일성, '전후 대학교육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하여' 과업 제시
1959년   4월 15일 '김일성원수 혁명활동연구실' 개작
1960년   8월       역사학부, 조선어문학부, 경제학부, 법학부, 외국어문학부, 물리수학부
                      화학부, 생물학부, 지리학부 학부개편
1960년  9월   1일~1964년 3월 30일 김정일, 경제학부 재학
1968년  9월   1일 혁명사적관 개관
                 9일 김일성 동상 제막
1968년 12월       '위대성 도서' 편찬
1972년  4월  7일 김일성 훈장 수훈
1974년  7월 22일 김정일 혁명사적관 개관
1970년 10월 20일 천리마대학칭호 쟁취
1975년 12월  7일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궐기
1976년 10월  2일 2중천리마대학칭호 쟁취
1984년  9월 14일 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서 '김일성종합대학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1985년  9월 25일 3대혁명붉은기칭호 쟁취
1986년  9월 25일 김일성훈장 수훈
          10월 24일 2중3대혁명붉은기칭호 쟁취
1998년  8월 25일 혁명사적관 김일성훈장 수훈
2013년 10월   1일 김정일 동상 제막
                  9일 교육자살림집 준공
2016년   9월 27일 김정은, '주체혁명의 새시대 김일성종합대학의 기본임무에 대하여' 서한
           9월  30일 창립 70주년 중앙보고대회 개최

김일성 현지지도 107차, 교시 9백여 회
김정일 현지지도   27차, 교시 2천여 회
김정은 현지지도    2차

[자료정리-통일뉴스]

(수정, 11일,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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