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자치부 산하 행정기관인 이북5도위원회가 탈북민 출신을 명예군수로 위촉하는 과정에서 기존 실향민 1~2세대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행정자치부 산하 행정기관인 ‘이북5도위원회’(위원장 백구섭)가 최근 명예시장·군수 위촉과정에서 탈북민을 낙하산 임명하면서 함경북도 일부 군의 기존 실향민 1~2세대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앞서 이북5도위원회는 지난 6월 29일 평안남도 16명, 함경북도 14명 등 제20대 명예시장·군수 91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8월 31일까지 임기가 만료된 제18대 명예 읍·면장과 제3대 동장 911명에 대한 후임 인선도 마무리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함경북도 부령군과 회령군, 함경남도 함흥시 등에서 탈북민 출신 명예시장·군수 임명을 강행하면서 불거졌다.

기존 실향민들이 탈북민 명예시장·군수 거부를 선언하는 등 격렬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함북 회령군과 함남 함흥시 군민회 등에서는 실향민 2세들 중 명예군수나 시장을 추천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탈북민 군수와 시장을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함북 부령군 군민회에서는 신임 군수 위촉을 수용할 수 없다며 두 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부령군 군민회는 명예 군수 선발 기준과 심사과정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예군수 위촉에 대한 규정으로 볼 때 탈북민 군수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3년 임기가 끝난 제17대 면장들이 모든 업무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2015년 8월에 일부 내용이 개정된 ‘이북5도 및 미수복 시·군의 명예시장·군수 등 위촉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명예시장·군수는 해당 이북5도 등의 시·군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하고 통일과업에 열성이 있는 사람 중에서 이북5도 도지사의 추천을 받아 행정자치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경유하여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관례에 따라 고령자인 1세대를 이어 오랜 기간 명예 면장으로 기여해 온 2세대를 명예군수 후보로 추천했다가 낭패를 본 부령군민회는 지난 7월 11일 입장 자료를 발표해 “부령군민과 일면식도 없고 사전양해도 듣지 못한 신임 군수 임명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또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함북도청의 모든 행사에 참여와 협조를 거부하겠으며, 도지사와 신임 군수를 비롯하여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함경북도 부령군민회의 어떤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의 공문. '북한이탈주민의 통일자원화 당부'라는 주석과 괄호 안에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편집-통일뉴스]

이에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는 8월 4일자 공문을 통해 ‘부령군 명예군수 위촉은 관련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된 사안’이며, ‘20대 명예시장·군수 위촉에 있어서 그 동안 활용해 온 시·군민회 추천제와 병행하여 공개 모집 제도를 이북5도위원회 지침으로 새로 도입한 것은 유능한 통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가 담긴 것으로 이미 사전에 공지가 된 사항’이라고 말했다.

또 ‘위촉 후보자 추천과정도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진행’되었으며, 새로 위촉된 탈북민 출신 부령군 명예군수는 부령군청에서 근무한 경력에 따라 연고가 인정되어 위촉된 것이기 때문에 자격요건에도 하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는 “이북도민사회는 1세대 실향민들의 고령화, 2~3세대의 참여 부진 등으로 통일 선도세력으로서의 활력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 북한이탈주민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현재 약 3만명)로 이들에 대한 국가적인 기대 역할도 증대되고 있는 사정 등을 감안하면, 우리 도민사회도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어서 별표 표시 뒤에 '북한이탈주민의 통일자원화 당부'라는 주석과 괄호 안에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는 글씨까지 굵게 표시해 돋보이도록 편집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도민사회에서 활동한 실적이 없는 북한이탈주민을 명예군수로 추천(위촉)한 것도 이러한 차원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이북도민사회, 특히 함경북도가 당면하고 있는 현안 해소 차원의 정책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함경북도에 연고를 두고 있는 사정을 고려하면 우리 도는 더 이상 이들의 도민사회 편입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고령화가 시급한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신청 실향민 1세 중 이미 사망자가 생존자를 넘어선 상황이고 특히 함경북도의 경우 생존 실향민 1세가 2,000명이 안 되는 반면, 지난 1998년 이후 본격화된 탈북민이 2만 명에 육박하는 상황이라서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 지난 6월 29일 열린 이북5도위원회 제20회 명예시장·군수 위촉식. [출처-이북5도소식 제594호]

통일부가 발표한 2016년 8월 말 현재 탈북민 통계에 따르면,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민은 1만8,284명(남자 4,706명, 여자 1만3,578명)으로 전체 2만9,350명(남자 8,630명, 여자 20,720명)의 62%를 넘는다. 바로 옆 양강도 출신의 탈북민 4,042명(남자 1,148명, 여자 2,894명, 13.7%)을 합하면 전체 탈북민의 74%가 두만강과 압록강을 접경으로 중국과 닿아 있는 이 지역 출신이다.

반면, 1988년부터 2016년 8월 31일까지 통일부가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13만 892명으로 이중 생존자는 6만3,152명, 사망자가 6만7,740명으로 사망자 수가 생존자 수를 앞섰다.

전체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함경북도 출신 탈북민과 달리 실향민 생존자 6만3,152명 중에서도 함경북도 출신은 3.1%인 1,985명에 불과하다.

주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는 1998년 이후의 상황과 전선을 가로지르며 남하해야 했던 1950년 전쟁시기의 차이로 인해 실향 1세대는 가장 적고 탈북민은 가장 많은 불균형한 특징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함경북도에서 먼저 나타났을 뿐 앞으로 이북5도 전체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며, 따라서 이북5도위원회의 성격과 역할, 탈북민과의 관계 설정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북5도위원회가 2012년부터 청사 내에 북한이탈주민지원센터를 설치해 탈북민지원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설립근거인 ‘이북5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4조(관장사무) 2항 나호에서 ‘북한이탈주민과 이북도민의 교류사업지원’을 명시한 것 외에는 탈북민과 관련한 사업에 대한 어떤 규정도 없다.

앞으로 이북5도위원회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현재의 이북5도위원회 설치 법령에 의거해서는 모든 활동이 ‘조사 연구업무’와 ‘월남 이북5도민 및 미수복 시·군의 주민의 지원 및 관리’, '이북5도 등 향토문화의 계승 및 발전', '이북도민 관련 단체의 지도 및 지원' 등에 국한되어 있다.

▲ 함경북도 제20회 명예시장·군수. [출처-이북5도소식 제594호]

이북5도위원회는 지난 1966년에 명예시장·군수제를, 1969년에 명예읍·면장제를, 2010년에 시 단위 명예동장제를 실시해왔다.

이북5도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제 20대 명예시장·군수 위촉 과정에서 탈북민 3명이 처음으로 뽑혔으며, 명예읍·면·동장 위촉 과정에서는 3년전 5명에 불과하던 인원이 이번 제18대에서는 19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중에서도 함경북도는 명예군수가 2명, 명예읍·면·동장이 13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것은 함경북도가 부령군민을 설득하기 위해 발송한 공문에서 ‘북한이탈주민의 통일자원화 당부, 대통령의 지시사항’ 운운한 것이다. 이북5도위원회 운영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함경북도의 설명처럼 탈북민은 가장 많고 실향 1세대는 가장 적은 함경북도의 현실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과 행정기관의 지도적 자리에 탈북민을 낙하산으로 임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부령군민회 한 관계자는 “군민회가 탈북민을 수용해 제대로 이 사회에 정착하도록 하자는 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30대에 탈북해 한국사회에서 10년 정도 생활한 탈북민 군수에게 군민으로서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이 관계자는 “이북5도위원회가 우려하는 ‘1세대 실향민의 고령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2~3세대의 참여 부진’은 정부의 통일의지와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활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단정할 일만은 아니”라며, “뿌리와 성장 환경이 다른 나무는 한 화분에서 자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탈주민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과 ‘이들에 대한 국가적인 기대 역할도 증대’되고 있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사려 깊은 고민이 필요하며, 섣부른 통합 시도는 이질성만 두드러지게 확인할 뿐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이북5도위원회는 67년전인 지난 1949년 2월 황해도, 평안남·북도와 함경남·북도 등 이북5도 지사를 임명하고 그해 5월 이북5도청을 서울시 중구 북창동 소재 구 서울시경 자리에 개청한 것을 연원의 뿌리로 두고 있으며, 법적 근거는 1962년 1월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함으로써 마련됐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