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5차 핵시험까지 단행했다. 지난 9일 북한은 자신들의 정부수립일에 맞추어 전격적으로 5차 핵시험을 단행했다. 지금까지 대체로 3년 주기의 시험에서 벗어나 올해 8개월만에 핵시험을 단행한 것이다.

북한의 핵시험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자, 전문가들이 지난 20 여 년 동안 수 많은 논쟁을 벌여왔다. 그러기에 이제는 덤덤할 뿐이다. 또한, 우리의 대북정책 실패에 대해서도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쇠 귀에 경 읽기’ 식의 비판과 똑같은 수사가 반복되는 논쟁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만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의 과정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정보 및 판단의 실패를 넘어, 근본적으로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와 북한에 대한 인식의 재고를 위해서도 반드시 돌아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는 아주 평범한 상식의 거부가 가지고 온 현재의 ‘거대한 실패’가 그것이다.

1999년 페리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북한 정권을 바라보고 대처해야 한다.”

어찌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평범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말은 지켜지지 않는다. 현실은 ‘우리가 바라는 북한’ 혹은 ‘앞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북한’이 압도적이다. 우리는 이를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 개념화한다. 문제는 이처럼 개념적으로 잘 정리되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이러한 희망적 사고가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희망적 사고’를 넘어서는 새로운 논리가 등장한다. 바로 ‘제논의 역설’이다.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아킬레스는 영원히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논의 역설’은 지금까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에 대한 우리 정부 및 군 당국의 전형적인 동원 논리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아직 대기권 진입 기술이 확보되지 않았으니,, 재진입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느니,,, 자세 제어 등의 기술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느니,,, 하면서 그 기술적 수준을 평가해왔다. 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소형화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느니,,,, 미사일 탑재할 만큼의 소형화 및 경량화의 기술은 아직 멀었느니,,,, 등등. 북한의 SLBM에 대해서는 아직 개발이 초기 단계느니,,,,, 잠수함 개발이 멀었느니,,, 등등

이러한 정부와 정보 및 군 당국의 동원논리는 전형적인 ‘제논의 역설’에 다름 아니다. 물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평가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렇게까지 진행해 온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의 진전에 대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의 전망까지 철저한 과학적 계산과 정치적 전략에 기초한 분석이 더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마치 북한이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할 아킬레스인 것처럼 묘사해왔고, 단지 자신들의 필요성에 따라서만 그 위협을 강조해왔을 뿐이다. 현실에 기초한 분석이 아니라 ‘필요’에 기초한 분석을 앞세웠던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자신들의 정보 및 판단 실패에 대한 책임 회피와 북한에 대한 폄훼이다. 이번의 경우에도 드러났듯이, 언제든지 5차 핵시험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핵시험이 단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를 40조의 국방비를 쓰면서도 북한의 핵시험에 대해서는 기상청으로부터 정보를 받는다고 조롱하기도 한다. 결국 정보의 실패이자 동시에 판단의 실패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 대한 폄훼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관련 기술적 진전에 대해 ‘제논의 역설’을 드러냄으로써 북한은 언제나 뒤처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물론, 국민들의 불안을 예방하고 우리의 안보태세를 갖추기 위해 ‘적’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과장은 지양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한 폄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인식과 태도는 결국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무시하거나 혹은 무지로부터 비롯된다. 그 결과 지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SLBM 발사 시험 성공, 그리고 이번의 5차 핵시험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 그들의 기술적 진전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평가밖에는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평양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거나 김정은의 제거 작전과 같은 이미 오래 전에 유행했던 레코드 판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또 다시 강력한 제재를 부르짖고 있을 뿐이다.

엄밀하게 평가한다면, 이번의 5차 핵시험에 이르는 과정은 분명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전략적 인내’ 역시 실패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태도는 이와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적어도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해보고자 하는 움직임과 반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니라 앞으로는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양간을 튼튼히 고쳐야’하는 것이다.

5차 핵시험 이후, 우리 정부를 비롯한 미국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강력한 제재를 공언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역시 북한 규탄 언론성명을 발표하는 등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많은 언론들이 이 과정에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한 것을 마치 북한에 대한 전 세계적인 포위망이 완성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언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한 적이 있는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시험 및 미사일 발사 등에 동의하고 이를 묵인하고 허용한 적이 있는가? 5대 핵강국의 일원으로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이미 예전부터 분명했다. 한반도의 비핵화인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와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라는 최종 목적지에서는 언제나 똑 같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에서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사실, 이러한 언론보도 역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해석된 현실’만을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규탄에는 동참하지만, 대화와 더 창의적 외교를 주장하면서 제재 일변도의 우리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대북 제재 – 더 강력한 제재 – 가 점차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현실은 아니 더 정확히는 이러한 제재의 국면에서 보여주었던 북한의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지금 차분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바로 이 ‘다른 결과’에 대한 원인과 과정인 것이다. 그래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까지의 처방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는데, 처방을 바꿀 생각은 없이 처방의 강도만을 강화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잘못된 처방에서 비롯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 결과 효과가 떨어지는 처방이 남발되었으며, 반면에 북한은 그에 대한 면역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거부한 결과 맞이하게 된 ‘거대한 실패’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우직하게 실패가 예견된 길을 걸을 것인지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연 우리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즉, 대북확성기가 있어서 괜찮은 것일까?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