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엄미경 통신원 (민주노총 통일국장)

 

▲ 24일 일본 교토시 단바 지역의 망간광산 갱도 부근에서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상 제막식’이 한국의 70여명의 노동자들과 30여명의 재일동포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일본(도쿄) 공항에 8월 23일 10명의 노동자들이 내렸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의 흔적을 찾기 위해, 통역도 없이 낯선 일본 공항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서- 1시간을 멍 하니 앉아 있었던 웃지 못 할 뒷이야기가 엊그제 일 같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들은 3년 만에 역사상 처음으로 가해국인 일본 땅에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상’을 세웠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려내고 소녀상을 건립하기까지 십 수 년을 투쟁해 온 역사에 비하면 매우 늦은 투쟁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그 반성만큼 한국의 노동자들 가슴속에는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가 빠르게 확산되었고 노동자 상 건립을 위한 전국적 모금운동도 힘있게 전개되었다.

‘이것이 노동자들의 힘이구나!’ 새삼 절감했던, 노동자 상 건립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다.

▲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상 제막식 및 합동추모제’ 대표단 오리엔테이션이 23일 교토 로얄호텔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그러나 노동자들의 결의와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세 조건은 만만치 않았다. 일본군‘위안부’라는 치욕의 역사가 헐값에 팔리고 ‘소녀상’ 철거 문제가 한.일간 외교문제로 등장해 있는 정세 상황에서 일본 현지의 ‘노동자 상’ 건립은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될 수밖에 없었다.

제막식 전에, ‘노동자 상’이 무사히 일본으로 도착해야 했고 양대노총 대표단들도 제막식 전에 일본으로 입국한 후에 공식적인 언론보도를 진행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은 결국 일본 정부로부터 입국이 불허되고 말았다.

민주노총 대표자의 불참 속에서도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상 제막식과 우키시마호 침몰 희생자 합동 추모행사’는 힘있게 진행되었다. 오히려 한국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는 반드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의지가 더욱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 우키시마호 침몰 희생자 합동 추모행사에 참가한 양대노총 대표단들.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 '영혼을 달래다'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바다를 향해...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 '말없는 바다'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24일, 우키시마호 침몰 희생자 추모행사에는 양대노총 대표단 70명과 함께 71년 만에 처음으로 오사카 주재 한국 영사관 측도 참가하였다.

2014년 양대노총이 처음으로 이 추모행사에 참가하였을 때, 행사에 참가했던 어느 일본인이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가해국의 국민으로써 미안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 애통한 죽음에 대해 무엇을 하였는가?”

한국의 노동자들이 3년 동안 참가규모가 커지고 지속적으로 참가했던 힘이 결국 한국 영사관 측을 이 자리에 참가하게 한 힘으로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역사를 바로 세우고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힘의 원천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 교토시 단바 지역의 망간광산 갱도를 들어가다.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비밀리에(?) 일본 땅으로 들어 온 ‘강제징용 노동자 상’은 흰 가림천으로 둘러싸여 우리 노동자들을 맞이했다.

24일 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 행사를 끝내고, 2시간가량 달려 온 교토시 단바 지역의 망간광산 갱도 부근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상 제막식’은 한국의 70여명의 노동자들과 단바망간기념관 이용식 관장, 노동자 상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작가, 30여명의 재일동포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상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한 대표단. 좌측부터 민주노총 박석민 통일위원장, 이용식 단바망간기념관 관장,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 노동자 상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작가.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과 민주노총 박석민 통일위원장의 여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단바망간기념관 이용식 관장의 인사말이 진행되었다.

“노동자 상을 보고 있자니 –진폐증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말에 참가자들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죽음 같은 망간광산의 노동의 대가는 진폐증이었다. 이용식 관장의 아버지이자 단바망간기념관 1대 관장인 고 이정호 씨는, 진폐증으로 자신의 죽음이 예고되자 ‘이 곳은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며 전 재산을 들여 단바망간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아버지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일본 보수 우익들의 보복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이용식 관장은 ‘노동자 상’ 건립을 기꺼이 동의해 주었고 기쁘게 받아주었다. 이제부터는 단바망간기념관과 노동자 상을 지켜내는 것은 한국의 노동자들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마무리 공연으로 노동자 상 앞에서 펼쳐진 ‘단일기 독무’.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마무리 공연으로 노동자 상 앞에서 펼쳐진 ‘단일기 독무’는 우리 노동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단으로 얼룩진 이 아픈 역사를 끝내야 한다. 그것이 이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낸 선배 노동자들에 대한 도리이며 미래 사회에 대한 책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 해방과 함께 찾아 온 분단. 그로 인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두 개의 조국을 그리워하며 차별과 탄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상’. [사진-통일뉴스 엄미경 통신원]

민주노총 대표자의 입국 불허는 앞으로의 고난을 예고한 것이다.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는 앞으로 양대노총 노동자들의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보수 우익들로부터 동포들은 더욱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강제징용 노동자 상 건립’이라는 역사적 순간 앞에서, 우리가 감격보다는 더 비장한 결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지면으로나마 동포들께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래서 우리가 하나임을 잊지 말고 함께 가자’는 인사를 드린다.

쉬운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새 역사를 써 가야할 노동자들의 투쟁의 첫 페이지라고 생각할 뿐이다. 또한 노동자 상을 건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조국의 평화와 통일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투쟁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끝으로 아낌없이 많은 도움을 주신 동포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수정-30일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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