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뉴욕의 세계무역 센터와 워싱턴의 국방성 건물에 대한 끔찍한 테러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크게 놀란지 3주일이 되었다. 당초 분을 못 이겨 당장에 라도 무자비한 응징의 철퇴를 가할 것 같던 미국의 기세도 다소 수그러들면서 차츰 냉정과 이성을 되찾고 있다.

사실 세계 유일의 최강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힘과 부의 상징물들이 불의의 테러 앞에 순식간에 맥없이 무너지거나 파괴되고 6천을 웃도는 인명피해를 입었으니 미국의 조야가 어찌 머리끝까지 화가 나지 않았겠는가. 부쉬 대통령은 즉각 이 사태를 "전쟁"으로 규정하고, 국제테러의 근절을 그의 행정부의 핵심과제로 선포하는 한편, 테러의 배후조직은 물론 그 비호국까지도 단호히 처단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미국 주도하의 반 테로 국제동맹체제의 구축을 제창하면서, 모든 나라는 이에 동참하여 미국의 편에 서던지 아니면 불참하여 미국의 적이 되던지 양자택일할 것을 요구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월포비츠 국방차관 그리고 라이스 안보보좌관등을 위시한  강경파 인사들도 서로 뒤질세라 강성발언을 서슴치 않으면서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켰다. 이에 따라 의회는 물론 일반국민들도 "하느님,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이 "천인공노할 범법자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외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도처에서 좋은 일만 하고 다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악인들은 미국이 잘사는 것을 시기하여 테러를 자행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지난 세기에 칠레, 코스타리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멕시코, 니카라과, 파나마 등 나라에 빈번히 쳐들어가거나 숨어들어 가서, 정부전복, 지도자암살, 요인납치, 내정간섭 등을 자행한 내막은 잘 모르고 있다.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에 보복한다고 리비아를 폭격하고,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 폭파범들을 응징한다고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에 미사일 75발을 퍼부은 것도 다 악인들을 응징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만 알고 있다. 또 아이티, 소마리아, 보스니아, 코소보 및 월남 등 남의 나라의 내전에 간섭하여 융단폭격, 네이팜탄투하, 고엽제살포 등으로 숱한 양민을 학살한 것도 잘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주도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게 했으며, 그후 네 차례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전쟁과 평화협상과정에서 군사적으로는 물론, 정치, 외교, 경제적으로 항상 이스라엘 편에 서서 아랍제국에게 막심한 손실과 원한을 안겨주었다. 또 이해가 엇갈리는 아랍제국들을 서로 이간시키는 정책으로 중동의 석유이권을 자의로 농단해 왔다. 미국인들은 이런 일도 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당한 나라 사람들이 볼 때 미국은 그들의 평화와 주권과 존엄과 생계를 앗아간 나라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들의 억울함을 이해해 줄려는 기색도 안 보인다. 그러니 빼앗긴 자로서 빼앗은 자에 대한 분노가 솟구칠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다. 그러니 결국 테러라는 마지막 수단에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테러는 폭력이며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 문명사회의 원칙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테러를 응징하고 근절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전쟁은 분쟁의 강제적 해결방법이다. 평화적인 협상이나 교섭으로 해결이 안될 때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즉 전쟁이다. 전쟁은 결국 힘의 대결이니까 강자가 약자를 이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기더라도 승자에게 도덕성이나 정당성이 없으면 그 이긴 것으로 분쟁이 최종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빼앗기고 억울한 자가 분노표출의 최후수단으로 감행한 테러에 대한 응징이나 보복의 방법으로 택한 "전쟁"은 결국 또 하나의 테러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빼앗긴 자의 원한과 분노는 오직 달래는 것으로만 풀어줄 수 있는 것이다.

부쉬 대통령은 공직생활 불과 7년의 경험을 가지고 백악관에 입성한 인물이다. 그는 특히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취임 8개월 동안 그는 미국패권 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인물들을 주위에 모아 놓고 그들이 짠 정책을 여과없이 수용하여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를 강행하여 전세계를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의 참사를 당하여서는 예의 초 강경 발언에 박차를 가하여 사태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강경책이 반드시 능사는 아니며 이슬람 세계의 대미원한의 원인도 분석하고 반성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심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또 정부내에서는 온건파인 파월 국무장관의 위상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 한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면 미국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우선 미국은 시기와 규모는 알길 없지만 반드시 한번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집중적이며 맹렬한 보복성 군사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그리고는 국제협조의 형식을 빌어 장기적인 탈레반 압살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부쉬는 이런 상황의 전개를 차기대선에서의 승리를 통해 재집권의 꿈을 실현하는데 유리하도록 조절하고자 할 것이다. 또 테러응징을 빙자한 "전쟁"의 수행은 미국의 거대군수산업의 이해와도  맞물려 어쩌면 초기의 타격을 겪은 후 경제호황을 가져옴으로써 미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비가 1991년에 겪었던 것처럼, 전시의 인기상승이 반드시 부쉬의 대선승리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보다 끄는 것은 북.미관계의 전망이다. 미국은 아직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부쉬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 뿐 아니라 국제테러를 지원하는 모든 나라를 상대로 반테러 전쟁을 수행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에 부임한 주한 미대사 허바드는 테러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대화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미국이 과연 북한의 머리에 "테러지원국"의 모자를 씌워 둔 채 마주앉아 대화 할 수 있을 것인지, 모자를 벗겨주고 대화할 것인지, 아니면 그 모자를 핑계삼아 대화를 기피할 것인지 주목해 볼일이다.     

또 미국은 그 동안 세계정세의 변천에 따라서 해외주둔 미군의 주력을 구라파에서 아시아로 옮겨 올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기화로 파키스탄 혹은 다른 어떤 아시아 국가에 미군을 장기간 주둔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장차 아시아, 특히 중국을 제압하고 나가서는 세계재패의 꿈을 실현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속셈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북미관계의 전망과 아시아에서의 상주미군 증강문제는 주한미군의 장래 문제와 더불어 우리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장차의 번영과 사활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예의주시하고 냉철히 판단하여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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