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하에서는 제일 약한 자도 제일 강한 자와 똑같은 기회를 획득한다(간디) 

 

 그러나 나는
 - 김남주

 그러나 나는
 면서기가 되어
 집안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했다
 황금을 갈쿠질한다는 금판사가 되어
 문중의 자랑도 되어 주지 못했다

 나는 항상 이런 곳에 있고자 했다
 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인간적인 의무가 있는 곳에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곳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 있고자 했다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근심걱정 잠 안 오고
 춘하추동 사시장철 뼈 빠지게 일을 해도
 허리띠 느긋하게 한번 쉬어 보지 못하고
 맘 놓고 허리 풀어 한번 먹어 보지 못하고
 평생을 한숨으로 지새는 사람들과 함께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고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납세고지서 징집영장밖에 없는

 

 모 고등학교 교문 위에 현수막이 펄럭인다.

 ‘제ㅇㅇ회 졸업생 ㅇㅇㅇ 사법고시 합격  제ㅇㅇ회 졸업생 ㅇㅇㅇ 제ㅇㅇ회 졸업생 ㅇㅇㅇ행정고시 합격’

펄럭이는 현수막 아래를 지나며 이 학교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 자랑스러운 선배님들이 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할까?

 아니면 ‘아, 자랑스러운 선배님들이 나를 위하여 큰일을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할까?

 우리는 다 안다.

 현수막을 건 사람의 뜻을. 그리고 누구나 그 뜻을 읽는다는 것을.

 그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한숨으로 지새고’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납세고지서 징집영장밖에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한 때 고등학교 사회교사를 하며 헌법을 가르칠 때, ‘대한민국 헌법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읽으면서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요즘 ‘건국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10년 전에 ‘건국절’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건국절’이라니? 무슨 말이야?

 “아,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나라가 언제 건국되었다는 말이냐?”

 한 번 내 입이 터지면 ‘건국절’을 말하는 자들에게 댐이 터짓듯 한 서린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아, 정말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을 보고 싶다!

 대한민국엔 ‘면서기가 집안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하고’ ‘황금을 갈쿠질한다는 금판사가 문중의 자랑이 되어 주지 못하는’ 국민이 얼마나 많은가?

 그 국민들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국가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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